[후타카마] 마음의 소리
알파오메가AU
-너무 힘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카마사키 선배?
카마사키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가쁘게 움직이느라 벅찬 숨이 터져 나왔다. 후배의 건방진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마사키는 구석에 놓인 드링크를 집었다. 꼴깍, 선배의 목울대가 연신 오르내리는 것을 후타쿠치는 빤히 쳐다보았다.
쿨럭, 쿨럭.
급하게 들이마시다 사례가 걸렸는지 카마사키가 기침을 했고, 후타쿠치는 그런 선배의 등을 토닥여줄 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제 앞에 서 있는 선배의 곳곳에 시선을 두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위를 타는 카마사키는 그만큼 땀도 많이 났다. 시합을 할 때도 수시로 땀을 닦아줘야 할 만큼이었다. 3세트까지 진행된 연습게임은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2세트를 따낼 수 있었다. 연습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그 상대방이 꽤 실력 있는 학교였고, 무엇보다 3학년의 의지가 대단했다. 꼭 이 시합을 이기겠다는 결심이 표정에 표정과 몸짓에 드러났다.
선배들은 필사적이었다. 첫 인터하이이며, 마지막으로 전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그들은 평소보다 연습량을 늘리고 후배들을 다그쳤다. 고작 부활동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선배들의 모습에 몇몇 후배들은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납득하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 1년, 2년 동안 몇 차례 기회가 있는 그들과는 달리 3학년은 이번 인터하이를 끝으로 부활동을 그만둔다.
후타쿠치는 그런 3학년의 심리를 알았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했다. 숱한 시합을 겪으며 승리에 집착하고, 패배에 좌절하는 엿 같은 기분을 후타쿠치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카마사키 선배만큼 절실하게 매달려본 적은 없다. 떠오른 공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떨어지려는 순간을 후타쿠치는 끝까지 열을 다해 쫓지 않았다. 등 뒤엔 그들의 팀원이 있고, 공이 바닥을 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의 포지션에 충실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마사키 선배는 다르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떠오른 공인 것처럼 열을 다했다. 바보처럼 공을 줍고, 공을 때리고, 공에 맞섰다. 바보 아니야, 그냥 연습게임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 않나, 후타쿠치는 마음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오메가주제에 알파들의 판에 끼니까 그렇지.
후타쿠치는 거친 숨소리와 땀냄새, 그리고 옅게 풍기는 오메가 특유의 향기를 맡았다. 열성 오메가라고 했나. 카마사키는 베타에 가까울 정도로 오메가의 성질이 약하다고 들었다. 그뿐 아니라 일반적인 오메가의 외형을 두고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오메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80이 훌쩍 넘는 키,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팔과 다리의 근육과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 몸의 어디를 만져도 탄탄하게 감겨올 법한 피부는 퍽 보기 좋았지만 그것도 알파의 관점에서 볼 때다. 알파의 밑에 깔리는 오메가가 이렇게 크고, 단단할 필요가 없었다. 하다못해 베타였다면 오메가 특유의 외형과 성질에 빗대어 하나, 하나 손가락질 받지 않았을 것이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가 공공연히 남자 오메가이기 때문에 차별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겠지, 누구도 저 사람을 오메가로서 품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형편없는 오메가. 그게 카마사키의 위치였다.
-필사적으로 해서 이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거다.
그러나 카마사키는 누구의 앞에서도 당당했다. 팀의 구성원의 대다수가 알파와 베타인 가운데, 매니저를 제외하고 오메가는 카마사키 뿐이었다.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베타가 공존하는 무리에는 누가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파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고 베타의 앞에서 오히려 등을 피고 다녔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곧게 뻗은 등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바보 같아.
-뭐, 너는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말이야.
카마사키는 끝까지 후타쿠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스쳐 지나가며 후타쿠치의 어깨를 독려하듯 움켜쥐었다. 마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타쿠치가 안쓰럽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스치듯 코 끝에 닿은 향기가 싫지 않았기에 후타쿠치는 부러 발끝을 찼다. 오메가 주제에 저렇게 꼿꼿한 태도를 하면 건드리고 싶다. 꼿꼿한 그 자세가, 단단하게 서 있는 나무 같은 그 모양을 부러트리고 싶은 것이다. 후타쿠치의 시선이 카마사키의 등에서 떠나질 않았다.
후타쿠치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카마사키는 원수라도 만난 것 마냥 사나운 후배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뭐, 잘못 한거 있나.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1년 후배인 후타쿠치는 한마디로 자신과 정반대이다. 우성 알파이며, 딱히 죽어라 노력하지 않아도 타고난 운동 신경의 소유자이고, 알아서 주위에서 사람이 몰리는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었다. 처음 배구부에 들어 왔을 때부터 좀 재수 없었지. 선배들한테 툭툭 가볍게 말을 던지는 것이나 필사적으로 연습하는 사람을 마치 가엷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카마사키는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지만 정말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후타쿠치가 들어오고 나서 1년, 카마사키는 몇 번이나 욱하는 속을 달래야 했다. 본래 성실하고 책임감이 넘치는 성격인 카마사키는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에게 언제나 강하게 의견을 내세우는 편이었다. 그러나 형질의 본능이 그를 막아섰다. 후타쿠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그건 카마사키 자신이 보통의 오메가들과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왠만해선 후타쿠치를 상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본능이 말해주었다.
그러나 카마사키의 바람과는 달리 후타쿠치는 배구부의 어떤 사람들보다 카마사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틱틱대며 시비를 거는 것은 보통이고, 멀쩡하게 연습하는 카마사키의 옆에 다가와서 자세가 별로고 팔의 위치가 이상하고 트집을 잡았다. 카마사키는 처음부터 그런 후타쿠치의 행동을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냐, 그렇구나. 유도리있게 넘어가려는 카마사키의 인내심은 매일같이 그의 성질을 건드리는 후타쿠치의 공격에 결국 허물어졌다. 너나 잘해! 처음으로 폭발하듯 외친 말에 후타쿠치는 먹잇감을 발견한 족제비처럼 웃었다. 성질 나쁜 웃음에 카마사키는 등 뒤로 오소소 돋아오는 소름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카마사키가 당당하게 나서도, 강하게 체력을 길러도 그깟 알파의 페로몬 조금에 카마사키가 쌓아온 모든 노력이 바스라진다. 차곡차곡 쌓은 모래성이 밀려들어오는 파도에 순식간에 허물어지듯이 허무해진다. 우성 알파의 페로몬을 처음으로 경험한 그 때, 카마사키는 처음으로 자신이 열성 오메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성인 자신조차 페로몬에 휩싸일 정도라면 우성 오메가는 일찍이 정신을 놓고도 남았을 것이다.
카마사키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타쿠치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들어서 유독 자신을 걸고넘어지는지. 아직까지 뒤통수가 따갑다. 카마사키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후타쿠치의 시선을 모른 척 하는 것뿐이었다.
-어, 잠깐만.
앞서 걸어가던 모니와가 멈췄다.
-왜 그래?
-부실 문 잠갔지? 나 핸드폰 놓고 왔나 본데.
-같이 가줄까?
모니와가 가방을 뒤져 부실 열쇠를 건넸다. 아니야, 먼저 들어가라! 카마사키는 모니와를 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핸드폰을 딱히 가방에서 꺼낸 적이 없는데. 아마 옷을 갈아입다가 락커나 바닥에 떨어트렸나 싶어 카마사키는 걸음을 서둘렀다. 인터하이를 앞두고 모두 최대한 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했기에 시간이 벌써 9시가 넘었다. 딱히 이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기에 학교 안은 어둡고 적막했다. 으, 가볍게 소름이 돋아 몸이 떨려왔다. 걸음을 서두른 덕분에 금방 부실에 도착했다. 빨리 찾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카마사키는 부실 불을 키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충 락커를 확인하면 바로 핸드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대중으로 더듬어 확인해 본 락커 안에는 핸드폰이 없었다. 어라... 카마사키는 몇 차례 더 확인해보다가 바닥에 떨어졌나 싶어 자세를 낮췄다. 없어, 없는데...
철컥, 그리고 문이 잠겼다.
-뭐... 무슨?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부실이지만, 창문 너머 달빛에 어느 정도 사물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부실 문이 있을 위치에 누군가 서 있었다. 카마사키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아주 가끔, 학교에 도둑이 든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운동부 부실에 도둑이 훔쳐갈 만한 것도 없을 텐데, 하고 카마사키가 의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중, 냄새가 났다.
-헉.
오메가라면 피할 수 없는 냄새. 알파의 페로몬이 짙게 풍겼다. 카마사키는 한 번도 이렇게 숨이 막힐 정도의 페로몬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지며 무릎이 꺾였다. 손이 달달 떨렸고 시선이 흔들렸다. 탈력감을 이기려 카마사키가 팔 다리를 휘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알파의 페로몬을 직격으로 맡은 오메가에게 자신의 몸을 통제할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아... 뭐, 무슨...
호흡이 달렸다. 색색거리며 숨을 내쉬는 카마사키에게 검은 인영이 다가왔다. 조용한 걸음걸이에 카마사키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지도 눈치 채지 못했다. 누군가 머리를 세차게 뒤흔든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도 모를 만큼 페로몬에 발정하는 카마사키의 얼굴에 손이 닿았다. 조심스레 턱을 감싸오는 조심스러운 손길에도 카마사키는 발끝이 찌릿했다. 아아,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이미 단어를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직접 닿은 알파의 손에서부터 점차 쾌락이 피었다. 멍한 정신에 카마사키는 깨달았다. 몽정을 할 때도 젖어본 적이 없었던, 비부가 젖었다.
-하아, 하, 누, 누구?
어둑한 사위에 카마사키의 팔이 허우적거렸다. 깊은 심해에 빠진 사람처럼 애처로운 몸짓이었다. 후타쿠치는 가볍게 그의 손목을 쥐었다. 언제나 단단하게 느껴졌던 벽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때리고 부숴도 금조차 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벽이 사실은 작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벽이었던 것 같다. 후타쿠치는 열에 들떠 뜨거운 숨을 내뱉는 카마사키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당신은 오메가지. 알파의 페로몬에 헐떡거리며 발정하는 오메가.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숨이 닿아올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알아보고 있는 것일까. 그저 알파의 페로몬에 취해 나에게 매달리는 것인가. 카마사키가 부르르 몸을 떨며 후타쿠치에게 다가왔다. 땀에 젖은 이마가 목에 닿았다. 평소보다 들뜬 숨소리가 적막한 부실 안을 채워 후타쿠치의 귀에 흘러 들어왔다.
후타쿠치는 항상 카마사키를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모른 척 하는 것이 뻔히 드러나는 얼굴을 억지로 돌리고 싶었고, 어색하게 굳은 입가를 만지고 싶었다. 나를 의식하는 것이 뻔한데, 왜 나를 보지 않는 것인지.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왜 저 사람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인지, 후타쿠치는 항상 이해할 수 없었다. 카마사키 선배, 카마사키 상, 카마사키, 야스시, 당신.
살려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살려줘.
후타쿠치는 정신없이 매달려오는 카마사키의 몸을 껴안았다. 땀이 배인 목가가 촉촉했다. 언제나 카마사키가 자신을 스쳐 지나갈 때에야 희미하게 맡을 수 있던 카마사키의 페로몬 냄새가 났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목에 코를 갖다 대고 한껏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었다. 가장 진하게 채취를 맡을 수 있는 곳에서야 카마사키의 페로몬을 온전히 맡을 수 있었다. 쾌감을 자극하는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지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카마사키 선배의 페로몬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카마사키는 달랐다. 카마사키가 지금 매달리는 상대는 굳이 자신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페로몬에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나를 봐. 그저 페로몬 때문에, 한 사람의 알파로서의 나를 보지 마.
후타쿠치 켄지인 나를 봐.
오메가 주제에. 후타쿠치는 매달리는 카마사키를 탓하면서도 손길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보는데 왜 당신은 나를 보지 않나. 빌어먹을 페로몬. 후타쿠치는 처음으로 자신의 형질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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