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흩어진 꿈 5

 

 

 

오후 5시를 넘겨, 슬슬 해가 지려고 하는 쌀쌀한 날씨다. 그림자가 길어지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공원에 도착한 뒤, 시간이 흘러도 말이 없었다. 있는 힘껏 주먹을 쥐었는지 하얀 손등에 핏줄이 서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귀가하는 학생들이 수없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조용한 오이카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 또한 오이카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지금까지 오이카와가 내게 친구로서 독점욕이 많다고 생각했다. 끝없는 신뢰관계로 이루어진 우리 우정, 그것 이외에 오이카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없었다. 같은 남자이고, 오이카와는 동성애자가 아니고, 하나씩 없어지는 선택지에 남은 것이 우정밖에 없다. 그러나 방금 전의 오이카와의 행동, 그리고 예전부터 조금 납득하기 어려웠던 오이카와의 독점욕이 단순히 친구의 친구를 질투하기 때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혹시? 오이카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헛된 기대. 그리고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에 기대를 접었다. 춥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 목소리에 손끝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오이카와가 나를 좋아할 리가 없다. 장난처럼 얘기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애들처럼 보호본능을 일으킬 리가 없는 남자다운 체구에, 성격도 나쁘다. 습관처럼 오이카와의 등짝을 얼마나 때렸는지 셀 수도 없고, 배구공을 날린 적도 너무 많다. 애초에 친구였으니 그런 대상으로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헛된 기대는 쉽게 흩어졌고 우울한 마음만이 남았다. 선택지는 여전히 하나밖에 없다. 남들과 달리 유별나게 친구에게 질투심이 강한 오이카와.


-오이카와.

-......

-예전에 내가 말했었지. 가장 친한 친구는 앞으로도 너일거라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까부터 차가웠던 손이 찌릿했다. 뻣뻣해진 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말은 없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친구라고 해도 지금까지처럼 항상 같이 있을 순 없어.

-이와쨩.

-너도 알고 있잖아. 지금 네 행동, 억지 부리는 거라는 거.


고개를 돌린 곳에, 새하얗게 안색이 변한 오이카와가 서 있다.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겨울에 가까운 날씨, 해가 저물어 밤이 찾아와 어둑해진 하늘 아래 오이카와의 새하얀 얼굴만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앞으로 너는 너의 인생이 있을 거고, 나는 나의 인생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말은,

-이와쨩. 난 이와쨩하고 함께 있고 싶어.


오이카와는 다가와 내 손을 쥐었다. 나만큼 차갑게 식은 오이카와의 손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두워진 시야에 오이카와의 하얀 손이 낯설게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본 오이카와의 얼굴 또한 만져보지 않아도 차갑게 식어있는 것 같다.


-이와쨩은 나랑 같이 있는게 싫어진거야?


오이카와의 말은 나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만들었다. 내가 오이카와에게 바라는 관계와, 오이카와가 나에게 바라는 관계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우정과 사랑, 나는 오이카와에게 사랑을 바라고 오이카와는 나에게 우정을 바란다. 감정의 형태가 달라도, 오이카와가 나를 좋아해주는 것에 기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사랑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나는 왜 오이카와를 좋아하게 됐지. 서로가 다른 마음을 품게 되어서 괴로워질 바에는 좋아하지 말걸. 좋아한다는 마음을 애초에 깨닫지 말걸. 오이카와를 좋아하지 말걸...


-이와쨩, 왜 우는거야!


오이카와의 말에 손을 들어 얼굴을 만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는지 얼굴을 적시고 있었다. 손가락에 눈물이 묻었다. 나는 문득 괴로움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닿지 못할 내 마음, 포기하자고 수십, 수백 번을 결심하고 되새겼지만 언제나 실패하고 말았다. 오이카와의 얼굴, 손짓, 말 하나 하나에 스러져가는 마음의 불씨가 타올랐다. 오이카와에 대한 마음을 깨닫고 난 뒤, 언젠가 오이카와와 집 앞에서 헤어져 방으로 들어갔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오이카와를 포기하지 못하고 오이카와만 좋아하게 될 지도 몰라. 첫사랑도 오이카와, 끝사랑도 오이카와. 오이카와가 나중에 결혼해도 그 옆에서 오이카와를 축하해주며 마음을 썩히게 될까? 아니면 그때는 면역이 생겨서 지금만큼 아프지는 않을까? 나 왜 오이카와를 포기하지 못 하는거지?


-이와쨩, 나랑 같이 도쿄 가자고 한 말이 그렇게 싫은거야? 그래서 우는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이카와는 눈물을 멈추지 않는 내 얼굴을 연신 손으로 닦아내었다. 부드러운 그 손길이 너무 상냥해서 싫다. 나는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 내렸다.


-오이카, 와.

-응, 이와쨩.


살아온 시간동안, 나는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멋대로 일을 벌린 적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 적도 없다. 또래 애들보다 어른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철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처음으로 이기적인 행동을 하기로 한다.


-나 이제 너랑 친구 안할래.

-뭐?

-나, 나는.

-이와쨩!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해를 할 수가...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도쿄로 대학갈 것.

배구는 취미로만 하기로 결심한다.

오이카와에게서 멀어질 것.


나는 괴로워지지 않기 위해서 오이카와에게서 멀어지기로 결심한다.

오이카와와 친구를 그만둔다.


-좋아해.

-......!

-나, 너 좋아한다.

-......뭐, 이와쨩.

-...미안, 그러니까 너랑 친구 그만둘래.


나는 오이카와의 손을 놓았다. 얼굴 위로 오이카와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차마 그 눈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기고 오이카와를 지나쳤다. 행여나, 혹시나 오이카와가 따라올까 무서워 걸음을 재촉했다. 공원을 나가 충분히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쯤,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마침 집으로 가는 버스가 멈춰 서 있었다. 학생들이 귀가할 시간을 훌쩍 넘겨서인지 버스 안에는 두, 세 명의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맨 뒷좌석에 앉았다. 어차피 사람이 없는 버스이기에 옆자리에 가방을 놓았다.


고백해버렸다. 저질러 버렸어.

기어코 고백해버렸다. 나 편하자고, 내가 괴로워했던 감정을 오이카와에게 떠넘기고 말았다.


10년을 훌쩍 넘긴 시간동안 친구였던 오이카와에게 친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오이카와와의 우정을 버렸다. 이제 오이카와와 나 사이에 남겨진 관계가 없다.


흐려지는 시야에 입술을 깨물었다. 조용한 버스 안에 혹시라도 울음이 터져나올까 두려웠다. 엎드려 앞좌석에 얼굴을 숨겼다. 벅차오는 숨을 고르기가 어려웠다. 시합에서 져본 적을 제외하곤 남들 있는 곳에서 울어본 적이 없는데. 버스 안에서 끅끅 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어떡하지, 내가 오이카와를 버려 버렸다.




(332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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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ㅏㅏㅏㅏㅏㅏㅏ 한계가... 이 뒤는 상상에... 맡기면... (털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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