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흩어진 꿈 1

 

 

 

 

 

꽤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도쿄로 대학갈 것.

배구는 취미로만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오이카와에게서 멀어질 것.


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로부터 멀어지기로 결심했다.





나에게 오이카와란, 오이카와에게 나는 어렸을 적부터 함께 했던 친구다. 기억나지도 않는 옛날부터 함께였다고 한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 이르러 지금의 고등학교까지. 같은 반이 아니었을 때는 많았지만 같은 학교가 아닌 적은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 클럽에 같이 들어가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에서 부활동을 했으니 어지간히 같이 있었다. 거기다 더해서 서로가 옆집이라 등, 하교를 함께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잠자는 것만 제외하고 서로의 곁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이인 오이카와에게서 멀어지기로 결심한 것은, 그렇게 충동적인 이유가 아니다. 오이카와에게 나는 둘도 없는 소꿉친구고, 나에게도 오이카와는 그렇다. 우리 둘 사이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오이카와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을 뿐이다.






중학교 때였던가. 오이카와와 내가 같지 않다는 걸 알아차린게.

오이카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구에 푹 빠졌던 오이카와는 어느샌가 승리에 집착했다. 그 해 봄고, 시라토리자와에서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영입하고 처음으로 결승전에서 붙었다. 올해 꼭 전국으로 진출하자며 파이팅을 외쳤던 오이카와는 새로운 벽을 부술 수 없었다. 아무리 블로킹으로 막고, 피해도 시라토리자와에 이길 수 없었다. 오이카와에게 생긴 커다란 벽이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집착했다. 그리고 다음 해 우리가 3학년이 되었을 때 카게야마가 들어왔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세터, 같은 포지션의 천재의 등장에 오이카와가 초조해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언제나 싱글벙글 미소를 지은 채 사람의 속마음을 콕콕 쑤시던 오이카와의 미소에 금이 갔다.


이길 수 없는 라이벌의 등장, 천재의 등장.

초조해진 오이카와를 보며 이와이즈미는 걱정했다.

우시지마에게 집착하는 오이카와의 시선이 잔인했다.

무너지는 오이카와를 보며 절망했다.

카게야마를 증오하는 오이카와가 미웠다.


마침내 오이카와가 이성을 잃고 카게야마에게 달려들 때, 나는 오이카와를 막아섰다. 너와 우시지마의 일이 아니고, 너와 카게야마의 일이 아니다. 우리와 시라토리자와의 일이다. 나는 오이카와가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싫었다. 단순한 아는 사이, 친구 사이의 일이 아니다. 강렬한 감정을 가진 관계가 두려웠다.


우시지마로부터 오이카와의 관심이 수그러질 때 쯤,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원래부터 교내 아이돌취급 받았던 오이카와가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사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침에 집 앞에서 만나 학교까지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오이카와의 팔을 잡았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오이카와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좋은 아침, 하고 인사했다.


어리둥절하게 여자애를 바라보는 나에게 오이카와는 여자친구라고 소개시켜 주었다. 안녕 반가워 이와이즈미, 라고 말하는 여자애에게 어떻게 인사를 건넸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멍청한 얼굴로 안녕, 이라고 했었겠지. 어제부터 사귀게 되었다고 오이카와는 덧붙였다. 춥다, 그지?라고 묻는 여자의 발간 볼에 오이카와가 손을 들어 감쌌다. 응, 춥네. 누가 봐도 갓 사귄 연인의 풋풋함이 느껴졌다.


감히 너가?


나는 도망치듯 오이카와를 제쳐 앞서 걸었다. 나 먼저 간다, 떨리지 않게 신경을 써야 했다. 오이카와에게 나는 가장 가까운 존재, 나에게 오이카와는 가장 가까운 존재. 이제는 그 관계가 영원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우시지마와 카게야마는 이성이 아니었으므로 아는 사람, 그 정도에 그칠 수 있다. 하지만 저 여자애는? 내가 멈출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미 형성된 그 관계를 부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나는...


홀로 괴로워하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머리는 뜨거웠고, 멍했다. 혼자 분노했고, 혼자 슬퍼했다. 저절로 굳는 얼굴을 조절할 수가 없어 핑계를 대고 등, 하교를 따로 했다. 오이카와는 여자친구와 자신을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고맙다고 했다. 핸드폰 액정을 깨질 듯 눌렀다.


내가 혼자만의 감정에 휩싸여 수천 번 울음을 참았을 때, 오이카와가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찾아왔다. 우울한 목소리로 헤어졌다고 말하는 오이카와가 미웠다. 오이카와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조금도. 왜냐하면 그건,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사춘기, 이성에 눈을 뜬 남자애. 나조차 오이카와를 생각하면 몇 초만에 아래가 뜨거워 지는데 오이카와라고 다를 바 없었다. 성에 눈을 뜬 오이카와. 여자를 경험한 오이카와.


그 날 이후, 오이카와는 우울한 기색이었다. 그 좋아하는 배구를 할 때도 평소와 같지 않아서 배구클럽 감독님이 내게 오이카와 무슨 일 있냐고 물을 정도였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하자 감독님은 나보고 어떻게 해보라고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그때는 내가 오이카와를 위로해서 오이카와의 기분이 나아진다고 해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유치한 질투였다.


‘이와이즈미가 어떻게 좀 해봐’라는 말을 며칠 동안 들었을 때쯤, 차곡차곡 쌓인 질투와 걱정, 원망이 한 번에 폭발했다.


“정신차려! 여자가 걔 한 명뿐이냐?”

“이, 이와쨩...”

“그렇게 멍하게 분위기 흐리게 할 거면 그만 가! 배구 때려치우고 헤어진 여자 친구한테 가던지 새롭게 사귀던지 어떻게 하라고!”

“이와쨩... 너무해... 오이카와상은 그저,”

“가! 꼴도 보기 싫어!”


그건 결코 오이카와를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었다. 진짜 오이카와를 생각했다면 왜 여자친구와 헤어졌는지, 그렇게 후회하고 슬퍼할거면 용서를 빌던지 해서 다시 사귀라고 했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오이카와가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방해했다. 배구는 또 다시 핑계거리였다.


씩씩대는 소꿉친구가 자신을 위로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오이카와는 다시 기운을 차렸다. 주변에서 듣고, 또 들었을 말일 텐데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오이카와는 다시 배구를 연습했다. 우시와카 쨩하고 토비오 쨩에게 지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 해, 이와쨩. 오이카와는 배구의 세계에 빠졌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 오이카와가 여자친구를 사귈까, 매일 걱정하게 되었다.

오이카와는 교내 아이돌, 미야기 현의 아이돌로 불릴 만큼 인기가 많았다. 배구부 연습게임을 할 때도 교내 학생들이 찾아와 오이카와의 이름을 불렀고 인터하이나 봄고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각자의 학교 배구부를 응원하러 온 타교생들이 오이카와를 응원하게 될 만큼, 오이카와는 인기를 끌었다. 나는 오이카와의 이름을 부르는 여자애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이카와가 여자애들에게 둘러 쌓여있을 때마다 속으로 조바심이 일었다. 저 여자애들 중에서 누군가와 사귀게 될까.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지도 몰라.


생각해보면 오이카와가 첫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부터 오이카와에게 말을 험하게 했던 것 같다. 속마음을 숨기기 위한 방법이었다. 누구보다 오이카와를 사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좋아하면서 동시에 오이카와가 미웠다. 원망스러웠다. 나와 같지 않음을 원망했다. 가끔 심할 때면 자책감이 들었다.


-이와이즈미, 그건 좀 심했어.


속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오이카와에게 풀었을 때, 하나마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나마키는 고등학교에 들어와 처음 생긴 친구였다. 배구부 팀원이기도 한 하나마키는 자상하고 기본적으로 성실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게이였다. 또, 내가 오이카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단 한사람이었다. 나를 나무라면서도 하나마키는 더한 말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자책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남몰래 하나마키의 뒤에서 운 적이 있다. 억울하고, 슬프고, 원망스러움이 내 안을 가득 채웠을 때다. 오이카와가 새로운 여자친구를 사귀었을 때가 아니다. 오이카와가 우시지마와 카게야마에게 다시 집착하게 된 것도 아니다. 그저 누르고 눌렀던 감정이 내 안에서 한계에 다다른 듯 갑자기 터진 거다. 어쩌면 처음으로 같은 성향의 하나마키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 혼자 억누른 감정, 누군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그 절박함. 그러나 오이카와에게는 절대로 말하지 못하는.


하나마키는 다정했고, 나를 좋아했다. 그건 게이로서 이성을 좋아한다는 감정과는 다르지만 친구로서 나를 좋아했음은 틀림없다. 하나마키는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랑에 목매는 나를 안타까워했다. 응원해주지 못했다. 그저 얼른 짝사랑을 끝내고 새로운 사랑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게이이고, 오이카와를 좋아한다는 말을 고백했을 때 하나마키는 단호하게 포기하라고 했다.


하나마키는 중학교 때,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를 좋아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어쩌다 사귀게 되었고, 얼마 안 가 헤어졌다고 했다. 좋아해서 사귀었는데 왜 얼마 못 갔냐는 내 질문에 하나마키는 쓴 웃음을 지었다. 노말은 게이완 달라. 노말이 게이와 사귀는 건 그저 잠깐의 장난에 불과해. 하나마키와 사귀었던 그 노말은 하나마키를 좋아해서 사귄 게 아니었다. 하나마키가 게이였다는 것에 놀랐고, 신기했고, 친구와 멀어지는 것이 그때는 두려웠다고 한다. 한계가 보이는 관계의 연장선이었을 뿐이었다.


같은 성향이어서 그런지,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어서 그런지 나는 하나마키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쨩 변했다며 툴툴거렸다. 언젠가 오이카와와 하교하는 길에 오이카와가 갑자기 진지하게 물었다.


-맛키쨩이 나보다 좋아, 이와쨩?


나는 덧없이 웃었다. 너는 내가 얼마나 너를 좋아하는지 알까. 내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너를 좋아했는지 알까...


-닭살 돋는 말 하지 마, 쿠소카와!


오이카와는 이상하게 진지한 얼굴이었다. 곧 이상하게 허물어지게 웃으며 말했다.


-이와쨩이 맛키쨩하고만 노니까 그렇지.


나는, 새삼스럽게 절친의 친구를 질투하는 오이카와가 미웠다. 오이카와가 내게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은 질투까지

일까? 친구 사이가 깨지지 않는 한, 거기까지일 뿐일까. 그 사실에 허무하고, 그저 친구의 친구에게 질투하는 것임에도 조금 기쁘다는 사실이 우울했다.


-하나마키가 너랑 같냐.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너 뿐이야, 라는 듯한 말에 오이카와는 허물어진 웃음을 진짜 웃음으로 덮었다. 그치? 이와쨩한테는 오이카와상 뿐이지? 오이카와는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으쓱했다.


맞아. 나에게는 너 뿐이지.

그게 나는 너무 좋으면서 슬프다.



그리고 고3 겨울, 준결승전에서 카라스노와의 시합에서 패배했다. 마지막 공, 오이카와가 나에게 주었던 그 공은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 결과 우리 팀은 졌고, 카라스노는 이겼다. 시합이 끝나고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주륵주륵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내 등을 오이카와가 세게 쳤다. 곧이어 하나마키, 마츠카와가 쳤다. 결국 6년 동안 가고 싶었던 전국 진출이라는 꿈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나는 오이카와의 꿈을 함께 하지 못했다. 앞으로 함께 이뤄갈 꿈이 있을까.


윗옷으로 눈물을 대충 훔치고 정렬했다. 응원팀 앞에 서 인사를 하기 전, 오이카와의 시선이 잠깐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각자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오이카와를 마주볼 자신이 나지 않아 모른 척 오이카와의 옆을 스쳤다. 이와쨩, 하는 오이카와의 말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분하겠지. 누구보다 분할 사람이 오이카와일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공이 떠있건, 떨어지는 순간 끝이야. 떨어지는 공이 잔인하다. 6년 동안 간절하게 원해올 만큼이면, 그대로 시간이 멈춰서 바닥에 떨어지지 말아 주지.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나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6명이 강한 쪽이 이기는 거야, 그 말을 한 당사자는 나였다. 오이카와는 알까. 강한 6명이 더 강할 거라는 걸. 내가 좀 더 배구를 잘했으면 결과는 바뀌었을 지도 몰라, 덧없는 생각이 줄을 이었다.


-이와이즈미.


계단에 쪼그리고 앉은 내 위로 하나마키가 앉는 것이 느껴졌다. 무릎에 고개를 묻은 채인 내 어깨 위로 하나마키의 턱이 얹혔다. 힘없이 늘어진 손이 하나마키의 손으로 덮어졌다.


-울지마. 내가 있어.

-......

-그동안 잘 했어. 이와이즈미.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마지막 공이 떨어지는 잔상인 것 같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오이카와와 나를 이었던 가장 강렬한 유대. 우리들이 꾸었던 오래된 꿈. 흩어지는 시야가 조각난 꿈인 것 마냥 허무하다.





(611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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