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흩어진 꿈 4

 


 


마츠카와가 아르바이트하는 카페는 생각보다 더 괜찮은 곳이었다. 어른스럽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 잔잔한 음악이 흘렀다. 카페는 오이카와와 몇 번, 아니면 어쩌다 가본 적밖에 없었기에 잘 알지는 못하지만 작지 않은 규모에도 사람이 꽤 가득 차있었다. 오이카와는 나를 끌고 창가자리로 가서 앉더니 그 옆에 나를 앉혔다. 이어서 따라온 하나마키가 맞은편에 앉았다. 멀리서 마츠카와가 보였다. 마츠카와는 유니폼인지 하얀 셔츠에 앞치마 비슷한걸 허리에 매고 있었다. 언뜻 앞에서 보면 치마를 입은 것 같아 우스웠다. 나만 그렇게 느낀게 아닌지 테이블로 다가오는 마츠카와를 보고 하나마키가 큭큭 거렸다.


-큭, 마, 마츠카와. 유니폼 잘 어울리는데?

-아하하하하! 맛층 진짜! 사진 찍어도 돼?

-이미 찍고 있잖아.


찰칵, 찰칵 하고 오이카와는 연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마츠카와는 스스로도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이 카페의 분위기와 안 맞는다는 것을 아는지 가만히 있다가 오이카와의 핸드폰을 내리 눌렀다.


-나중에 보내줄게, 맛층!

-필요 없거든? 주문이나 해라.


마츠카와는 메뉴판을 내밀었다. 메뉴판에 적힌 메뉴들을 봐도 도통 무슨 메뉴인지 모르겠다. 그런 나에 비해 하나마키는 익숙하게 메뉴를 살피고 있었고, 오이카와는 별 관심이 없는듯 종이만 넘기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으며 가까이 기대 왔다.


-이와짱 뭘 시킬지 몰라서 그러고 있는거야? 오이카와상이 추천해줄까?


열심히 손가락으로 메뉴를 집으며 살피던 하나마키가 오이카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차, 하는 얼굴이었다.


-커피 못마신다고 그랬으니까 무난하게 아이스티나 에이드 종류는 어때?

-음, 뭐... 일단 보고.


레몬에이드, 자몽에이드, 블루레몬에이드, 블루베리에이드, 크랜베리에이드, 유자에이드... 종류도 많았다. 


-그럼 나는 블루레몬에이드.

-일단 나는 카페라떼랑, 그리고... 야, 여기 슈크림은 맛있냐?

-안 먹어봐서 모르겠는데.

-맛층, 이럴땐 무조건 맛있다고 해야 하는거 아니야?

-어, 슈크림 맛있어.


하나마키는 인상을 찌푸리고 뭐냐고 핀잔을 주었다. 마츠카와는 뻔뻔한 얼굴로 슈크림도 하나, 주문하고 오이카와에게 눈짓했다.


-난 녹차라떼 진하게.

-더 시킬거 없지?

-그리고 서비스 부탁해, 맛층~!


마츠카와는 고개를 끄덕이고 프런트로 갔고 테이블이 조용해졌다. 하나마키는 카페를 두리번거렸고 오이카와는 말없이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발을 까닥거렸다. 여기 분위기 좋은 것 같은데, 하고 하나마키가 먼저 운을 뗐다.


-마츠카와랑은 안 어울리지만.

-확실히 마츠카와는 뭐랄까, 카페 알바생이라기보다 술집 알바생같은 느낌이지.

-아무도 쟤한테 주문 못하겠네. 진짜 인상 험악하다니까.


운동부여서 체격이 큰 탓도 있지만 마츠카와는 초면에 좋은 인상을 받기 힘든 타입이었다. 제멋대로 삐죽거리는 반곱슬 머리에, 눈은 날카롭고 특히 눈썹이 박력있게 올라간 모양이다. 처음 마츠카와를 봤을 때 3학년인줄 알았으니 말은 다 한거다. 과연 처음 보는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직에 마츠카와가 얼만큼 버텨낼 수 있을지가 흥미로울 정도였다.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에 대해서 떠드는 사이에 주문한 메뉴들이 나왔다. 오이카와의 녹차라떼, 하나마키의 카페라떼와 슈크림, 그리고 블루레몬에이드가 차례대로 놓였다. 처음 시킨 블루레몬에이드는 푸른 물감이 위에서 아래로 퍼지는 것 같이 보였다. 밝은 파란 색감이 여름의 바다같다. 마시면 싸르르하고 톡톡 튈 것 같은 탄산 방울이 보인다.


-사실 블루레몬에이드가 뭔지도 모르고 시킨건데.

-뭐, 레몬에이드랑 블루레몬에이드랑... 별 차이 없지 않나?


얼음 위, 음료 표면에 동그랗게 떠 있는 레몬은 보는 것 만큼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할 만큼 시큼해보인다. 한모금 마신 블루레몬에이드는 생각과는 달리 일반적인 레몬에이드의 맛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냥 레몬에이드 맛인데?

-보기에 예쁘잖아. 파랗고, 청량해보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마키의 말에 공감했다. 눈 앞의 음료는 정말로 여름에 마시기 좋아 보일만큼 청량하다. 노란색 빨대로 빙글빙글 휘젖자 노란색이 푸르게 물들었다. 얼음이 덜그럭거리며 움직였다. 문득 고개를 돌려 오이카와를 보니, 오이카와도 나처럼 빨대를 빙글빙글 돌리며 녹차라떼를 휘젖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시킨 녹차라떼는 둘이서 왔을 때를 기억나게 했다. 둘이서 카페를 올 만한 일이 있었나 생각해봤지만 별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갔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방과 후에 오이카와에게 이끌려 들어가거나, 주말에 시내에 나갔다가 쉬러 들어가거나. 남자끼리 카페에 들어간다는게 처음엔 왠지 쪽팔리기도 했다. 머릿속의 이미지에서 카페는 어쩌다 스치듯 본 드라마의 한 장면과 같이 아기자기한 분위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가본 카페가 생각보다 달라서 놀랐고, 그런 나를 보고 오이카와가 손가락으로 볼을 쿡쿡 찌르며 놀렸었다. 


오이카와와 카페를 갈 때, 메뉴를 선택하는 건 오이카와였다. 처음 카페에 갔을 때 메뉴를 읽길 포기한 이후로 오이카와에게 그냥 맡겨버린 탓이다. 오이카와는 한 가지 메뉴를 고집하진 않았지만 내 음료는 언제나 녹차라떼를 시켰다. 녹차라떼는 그렇게 달지도 않아서 입맛에 맞아 내심 맘에 들었었다.


눈 앞의 블루레몬에이드는 예쁘지만 내 입맛에 조금 달았다. 녹차라떼나 시킬걸 그랬나 싶다. 그래도 보기에 예쁘니까 후회는 없다. 사실 블루레몬에이드는 이름부터 그냥 끌렸다. 밝고, 파랗고, 시원한 느낌이 좋아서 시킨 거였다. 조금 더 사실을 말하자면 내 안에 오이카와의 이미지랑 맞았다. 오이카와는 항상 밝게 웃고 다니고, 주위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가끔 얄미운 소리를 하거나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손이 올라가게 만드는 녀석이지만, 누구나 오이카와를 좋아한다.


물론 시키고 나서야 왜 이걸 시켰는지 깨달았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고 당황스럽다.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금방 오이카와를 떠올리고 만다.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 대학 어디 갈지 정했냐?


하나마키가 슈크림을 먹다 말고 말했다.  크림이 입가에 묻어 있어 티슈를 건넸다.


-음, S대학교로 갈까 생각 중인데.

-S대학교?


티슈로 입가를 닦던 하나마키는 오이카와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아마 오이카와를 아는 누구라도 오이카와가 S대학교를 가겠다고 한다면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왜 S대학교로 가려는거야?

-이와쨩이랑 같이 살려고~

-야, 난 그러겠다고 한 적 없어...!


하나마키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짓더니, 남은 슈크림을 입 안에 다 넣었다. 기껏 닦은 입가에 다시 크림이 묻었다. 어제의 이야기는, 마무리가 그러했듯이 오이카와는 오이카와의 결론을 내린 채였고 나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어제는 스스로가 바보같아서 울다가 잠들었고, 뭔가를 생각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이즈미도 그럴 생각이야?


오이카와는 하나마키의 말에 나를 돌아봤다. 여전히 입꼬리가 올라간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이 웃지 않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억지로 웃고 있다.


-그게 잘, 모르겠는데. 어제서야 쟤가 얘길 꺼낸거라서.

-이와이즈미는 진짜로 오이카와 엄마야?

-하나마키!


하나마키는 어쩐지 분한 얼굴이었다. 뭐에 분해하고 있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마키에게 해왔던 얘기들이 있었기에 어제처럼, 평소와 같이 오이카와에게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해야 했다. 그러나 돌아본 오이카와의 눈이 웃고 있지 않다. 예의상의 웃음도 아닌, 하물며 진짜 웃음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저렇게 웃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이와쨩은 오이카와상이랑 앞으로도 함께라고, 맛키쨩.

-이와이즈미.

-...어?

-이제 끝낼 때가 왔다고 했잖아.

-아. 그건,


지금 여기서 그 얘기를 꺼내면 오이카와가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역시나 힐끗 쳐다본 오이카와는 못 들을 말을 들은 것 마냥 굳어 있었다. 끝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오이카와가 아직은 모른다는 것에 안심해야 하는건가.


-이와쨩, 무슨 말이야? 끝낸다니.

-그러니까 지금까지 계속 같이 있었고,

-지금까지 그래서?

-앞으로는 새로운... 인맥을 쌓아볼까, 하는...


오이카와는 아예 몸을 옆으로 돌리고 가까이 다가왔다. 이미 충분히 가까웠던 거리가 확 좁아졌고, 오이카와의 팔이 내 허벅지를 잡았다. 어제처럼 횡설수설하며 당황하는 내 얼굴을 보다가, 오이카와가 하나마키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덜그럭, 하고 테이블 위의 블루레몬에이드의 얼음이 녹아서 움직였다.


-맛키, 이와쨩한테 대체 무슨 말을 한거야? 이와쨩이 헛소리를 하고 있잖아.


하나마키는 아까 전의 분해하던 얼굴은 어디 갔는지 어느 새 여유로운 표정으로 카페라떼를 마셨다. 테이블 위에 놓인 하나마키의 손이 똑똑하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오이카와, 이제 더 이상 이와이즈미랑 ‘언제나 함께’가 아니야.

-하하, 맛키쨩도 이상한 소리를 하네?


똑똑, 하는 소리는 꽤 장난스러워서, 이 분위기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하나마키는 눈앞의 오이카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보았다. 환하게 웃은 하나마키가 블루레몬에이드를 감싸고 있던 내 손을 덮었다. 손을 마주 잡더니, 깍지를 끼었다. 오이카와는 조용히 하나마키의 얼굴을 보다가, 나와 하나마키가 마주 쥔 손을 내려 보았다.


-오이카와.

-하, 뭐하는 거야, 지금?

-이와이즈미는 졸업하면 나랑 동거할거야.

-...뭐?

-학교도 같은 곳으로 진학하기로 했고. 그렇지, 이와이즈미?


왼쪽 허벅지가 조였다. 오이카와는 자신이 손에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지 말없이 나를 볼 뿐이다. 이제는 입가에 달렸던 억지 웃음도 사라진 얼굴이었다. 말해봐, 이와쨩. 오이카와가 굳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시선으로 느꼈다. 오이카와는 답지 않게 입술을 깨물고 있다.


-학교는 같은, 곳으로 갈까 했는데.

-......

-도, 동거는... 아! 아파, 쿠소카와!


오이카와는 조용히 눈썹을 찡그렸다. 아프다는 내 말에 내 허벅지를 부숴트릴 것처럼 쥐던 힘을 뺐다. 미안, 하고 중얼거리곤 이제는 허벅지 대신 팔뚝을 잡았다. 오이카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억지로 나를 일으켜 세웠다. 어어, 하는 사이에 오이카와는 나를 끌고 갔고 뒤돌아본 하나마키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오이카와와 나를, 정확히는 우리의 중간을 쳐다보고 있었다. 프론트 근처에서 디저트 따위가 올려진 쟁반을 들고 있던 마츠카와는 서비스는, 하고 외쳤지만 동시에 카페를 나와 버렸다.



오이카와는 카페를 나오고도 한참을 나를 끌고 갔다. 그냥 무작정 앞으로 가는 듯 방향의 변화가 하나 없었다. 도중에 오이카와에게 붙들린 팔을 빼보려고 했지만 있는 힘껏 쥐고 있는지 뺄 수가 없었다. 십여 분을 그대로 앞을 향해 걸었을까, 언젠가 로드워크 중에 스쳐지나간 적이 있는 작은 공원 앞에 멈췄다. 그제서야 오이카와는 내 팔뚝에서 손을 뗐다.

그대로 오이카와는 우뚝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합 중, 서브권이 오이카와에게 있을 때 상대편 팀이 타임아웃을 불렀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눈을 감고, 입을 닫은 채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다.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면 찡그린 눈가와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이었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하나마키와 조금 더 친해졌을 때부터 오이카와는 하나마키에게 신경 썼다. 내가 좋냐, 하나마키가 좋냐는 유치한 질문을 하며 섭섭하다는 얘기를 꺼내곤 했다. 그건 단순히 내가 자기보다 하나마키와 더 친해질까 두려워하는 친구 사이의 질투였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였기에 오이카와의 이러한 질투는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더 잘 알았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또 같은 중학교에 진학했을 당시에 처음 오이카와가 내 친구를 질투했다. 나와 오이카와는 같은 반이 아니었고, 간간히 쉬는 시간에야 얼굴을 보았다. 막 학기가 시작된 참이라 부활동도 시작하기 전이었고, 나는 새로운 학교, 새로운 친구들에 긴장하면서도 설렘을 가졌었다. 어색한 첫 만남이 반복되던 그 때에 오이카와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꽤 맘이 잘 맞을 것 같은 친구를 사귀었다. 앞자리에 앉은 타케루는 서글서글한 인상과 달리 남자다운 성격이 인상 깊은 애였다. 자리가 가까우니 얘기하기도 쉬웠고, 무엇보다 축구부였기에 같은 운동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이카와를 따라 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무작정 공을 차는 것을 좋아했기에 같이 놀기에도 좋았다. 점심시간에 가끔씩 축구공을 가지고 운동장을 뛰어 놀았다.


타케루와 친해지면서 오이카와와는 자연스럽게 부활동 시간 외에는 마주치는 일이 줄었다. 방과 후 배구부를 제외하고는 학교에서 타케루와 함께였고, 오이카와는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초등학교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였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여자에게 상냥한 오이카와는 여자애들을 뿌리치지도 못했다. 그때는 아직 오이카와에 대한 내 마음을 깨닫기 전이었기 때문에 도와달라는 듯 난처한 눈빛을 보내는 오이카와를 휙 지나치곤 했다. 그럴 때는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계속 칭얼거림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타케루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마다 자기네 반에 놀러오라는 말을 계속 무시하자 기어코 여자애들을 겨우 뿌리치고 우리 반에 찾아오고 난 뒤부터다.


-이와쨩! 내가 쉬는 시간마다 놀러오라고, 했는데... 누구야?

-아, 타케루라고 친구.

-안녕! 너가 3반 오이카와 토오루구나? 난 타카키 타케루라고 해.

-안녕. 반가워.


오이카와는 드물게 낯을 가렸다. 어딘가 평소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타케루를 보다가 내게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메한테 말 많이 들었어. 너네 소꿉친구라며?

-하지메?

-응. 아, 그러고보니 넌 하지메를 특이하게 부르네?


오이카와는 하지메, 하지메...라고 중얼거리더니 수업종이 치자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 평소와 다른 오이카와가 조금 신경 쓰였지만, 부활동 시간에 다시 본 오이카와는 다시 평소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날, 집으로 가는 길에 유독 오이카와는 말이 없었다. 조용한 귀갓길이 어색한 내가 몇 번 장난을 쳐봤지만 반응도 미미했다. 그러다 타케루에 대한 얘기를 꺼내 봤는데, 오이카와가 아까와는 달리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고 타케루에 대해 이것저것 말해 주었다. 처음 봤지만 내가 타케루와 마음이 맞는 것처럼 오이카와도 타케루와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카키랑 많이 친해졌나보네?

-타카키... 아, 타케루? 응.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랑 잘 맞아.

-헤에...


너랑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말하던 나는 오이카와의 표정에 말을 흐렸다. 오이카와는 화가 난 표정인데 나를 보고 방긋 웃었다.


-그러게, 나랑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타카키.

-그, 그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라고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리고 우리 셋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냐면, 친해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던 거와는 달리 오이카와는 타카키와 조금도 친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쉬는 시간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다 대가며 우리 반에 찾아왔고, 점심시간에는 배구분데 왜 축구를 하고 있냐며 억지로 배구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자리가 바뀌는 바람에 타카키와 거리도 멀어져, 가까워졌던 사이가 차츰 멀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오이카와도 좋았지만 타카키와도 친해지고 싶었던 나는 주말에도 타카키와 놀려고 약속을 잡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오이카와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울먹였다. 왜 내가 있는데 걔랑 놀려고 하냐는 말과 함께 입술을 부들부들 떨더니 구슬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이와쨩이랑 제일 친한 친구는 난데. 왜 그 못생긴 애랑 놀려고 하는거야, 이와쨩...!

-야, 야 오이카와. 갑자기 울긴 왜 울어...!


오이카와는 서툴게 달래는 나를 보고 보란 듯이 더 크게 울었다. 으와아아아앙, 하고 우는 소리에 거실에 있던 엄마가 올라왔고 대뜸 나를 때렸다. 왜 토오루를 울리고 그러냐며 오이카와를 달랬고, 오이카와는 그 후로도 몇 분을 울었다. 한 짓도 없는데 맞은 억울함에 삐죽 입술이 튀어나온 나를, 오이카와는 울어서 팅팅 부은 눈을 하고 바라보았다. 그나마 봐 줄만한 얼굴이 조금이나마 못생겨진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하여튼 오이카와는 예나 지금이나 울보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는 오늘도 내일도 너뿐이야.

-영원히 나랑 제일 친한거지?

-응. 그러니까 바보같이 울지 마. 너 지금 엄청 못생겼어.

-윽, 그래도 이와쨩보다는 안 못생겼어...


얄미운 소리를 하는 오이카와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찰싹 쳤다.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오이카와는, 부은 눈 때문에 웃긴 모양새라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중엔 큭큭거리며 웃는 나를 보고 오이카와도 바보처럼 하하하고 웃었다.


나는 단순해서 오이카와가 왜 그렇게 타카키를 경계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오이카와가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모습을 보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그냥 지금과 같이 앞으로도 오이카와는 나와 가장 친한 친구로, 나는 오이카와의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번이나 내가 다른 애들과 친해지는 기미가 보이면 오이카와는 그때와 같은 행동을 보였다. 학년이 바뀌면서 그런 오이카와를 나무라기도 하고, 짜증도 냈지만 예전과는 달리 헤헤 웃으며 이와쨩, 하는 오이카와를 끝까지 내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러려니, 친구로서 내가 그렇게 좋은가 생각했다. 물론 내가 오이카와를 좋아한다고 깨달았을 때는 오이카와의 그런 행동들에 혹시나 싶은 기대를 품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게, 어느 누구도 소꿉친구를 상대로 친구의 친구를 경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내 기대를 가차 없이 뭉겠던 일이 오이카와의 첫 여자친구였고, 그 이후로 나는 오이카와가 나를 좋아하게 될 일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저 오이카와는 친구인 나에 대한 독점욕이 조금 과할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8541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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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_눈물은_무기(feat.오이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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