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키병;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경우>
어느 주말 저녁, 이와이즈미는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우시지마다, 라고 말하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말이 안나왔다. 전화기 너머로 상대가 이와이즈미를 자꾸 불렀다.
"크, 큼. 뭐냐 우시지마.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한거야?"
아니 그보다, 나 우시지마랑 전화할만한 일이 있나? 이와이즈미는 곰곰히 생각했지만 좀처럼 알수 없었다. 혼란스러워 하는 이와이즈미와는 달리 전화기 너머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너무 평온하다.
"지금 좀 봤으면 좋, 겠다. 이와이즈미."
"뭐? 난데없이 왜..."
이와이즈미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우시지마는 계속 큼, 크흡 거리며 기침을 참아내는 듯한 소리만 내며 자기 할 말만 이어갔다.
"큼! 지, 금 집 앞이니까 나와라."
그리고 우시지마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아니 그보다 집 앞이라니 뭐라는거지.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 닫힌 커튼을 살짝 젖혔다. 집 앞 가로등에 거대한 인영이 서 있다.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하는 남자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다.
무서워... 쟤 뭔데 우리집 아는거냐?! 나 나가도 되는건가?
그러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시지마는 어딘가 아픈지 고개를 숙인채 계속 기침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언제나 꼿꼿한 자세또한 구부정하게 등을 굽히고 가로등에 몸을 기대고 있다. 매번 결승전에서 만나, 패배만을 안겨주는 상대이기에 좋은 감정은 없지만 일면식 있는 사람이 쓰러질것 같다는게 문제였다. 어째서 자신의 집 앞에서 저러고 있는건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와이즈미는 후드짚업을 대충 껴입었다.
"저기...."
"으. 이와, 크흠 큼."
우... 우시지마? 어디 아프냐?"
커다란 등치의 우시지마는 가로등에 기대어, 노랗게 빛나는 불빛 아래 있었다. 게다가 고개를 숙이고 양 손으로 입가를 가린채인데다 그림자가 져 있어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기침을 억지로 막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들썩거렸다.
"야... 아니, 기침을 억지로 막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
"윽... 크, 아니, 괜찮,"
가까이 다가서자 까만 그림자에 드리워진 우시지마의 얼굴이 드러났다. 필사적으로 입을 누르고 있었다. 시합 때조차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 엉망진창 일그러져 빨갛게 변해있었다. 눈썹 사이로 땀방울이 흐르기까지 했다.
이와이즈미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우시지마의 손목을 붙잡고 입을 억누르고 있는 손을 떼려고 했다. 이와이즈미가 손을 붙잡고 어이, 하고 말함과 동시에 우시지마의 꽉 다물렸던 눈이 떠졌다. 깜빡거리며 시선이 이와이즈미의 얼굴로 향했고, 우시지마의 두 눈이 커졌다. 우시지마의 속눈썹이 파들거리는게 보였다.
"야, 괜찮냐? 손 떼봐.......뗀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우시지마의 손을 내렸다. 얼마나 힘을 주어서 입을 막았던건지 입가에 빨갛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이와이즈미는 빨간 꽃잎을 보았다. 이와이즈미는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우시지마의 치아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작은 꽃잎을 뗐다.
"꽃잎?"
"......으."
"...꽃이라도 먹었어?"
"우, 욱!"
멍하니 빨간 꽃잎을 보던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빨갛고 작은 꽃들이 퍼부어졌다. 욱, 욱 거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꽃의 수가 많아졌다.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내리는 꽃에 이와이즈미가 당황스럽게 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로 투둑, 툭 하고 꽃들이 쌓였다.
"커헉, 헉... 헉! 이, 이와이즈미...!"
"어... 우시지마...?"
"꽃, 크흠. 먹은것이 아니다."
우시지마는 꽃을 토해내느라 숨을 쉬지도 못했는지 호흡이 거칠얼다. 추위에 하얗게 스러지는 숨에 꽃냄새가 풍겼다.
"그건, 보면... 그런 것 같네..."
"이와이즈미."
"어...? 응?"
"좋아한다, 이와이즈미.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꽃이 터져나왔다."
우시지마는 놀라서 눈이 커다래지는 이와이즈미를 시선에 담았다. 따듯한 집에 있다가 급하게 나온 탓에 제대로 옷을 갖춰 입지 못한 이와이즈미의 귓가며 코, 볼이 추위로 색을 달리하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빼내어 이와이즈미의 목에 감쌌다.
"저기, 벌칙이라던가 그런거지?"
이와이즈미는 목에 둘러진 머플러를 엉거주춤 감싸다가 우시지마에게 물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똑바로 직시해오는 우시지마의 눈에 어느 하나 장난끼가 보이지 않았다.
"엇,"
우시지마는 머플러를 양 손로 잡고 고개를 숙였다. 차가워진 이와이즈미의 왼쪽 볼에 입을 맞췄다. 쪽, 어린아이가 하는 뽀뽀처럼 장난스런 소리가 났다.
"장난이 아니다. 이와이즈미를 좋아한다."
"....어어?? 그, 그러냐?!"
"오이카와보다 더 잘해줄 수 있다. 사귀자."
"아니, 오이카와가 여기서 왜 나오냐?"
이와이즈미의 말에 우시지마가 피식 웃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 4년의 시간동안 본 적이 없던 웃는 얼굴이었다.
"오이카와랑 상관없다면 더 좋은 일이다."
"어... 어어? 뭐가..."
"사귀자, 이와이즈미."
우시지마는 전화를 끊었을 때처럼, 이와이즈미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발을 돌렸다. 그 전에 이와이즈미의 목에 대충 둘러진 머플러를 서툴게 여며주었다.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우시지마의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졌다.
이와이즈미는 아까 꽃이 쏟아질 때 맡았던 꽃향기를 느꼈다. 머플러에 빨간 꽃잎들이 묻어있었다. 하아, 이와이즈미의 한숨이 하얗게 하늘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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