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이와] 흩어진 꿈 3

 


 


집으로 가는 길 내내, 오이카와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진지한 대화를 피해갔다.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내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와쨩, 뭐가 그렇게 혼란스러워?

-뭐?

-아니 그게. 내가 한 말이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얘기였어?

-......몰라...


오이카와는 말을 줄였다. 오히려 계속 고민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답지 않게 조용한 귀갓길이 이어졌고, 우리 집에 먼저 다다랐을 때야 오이카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러자는 얘기야.

-......

-쉽게 생각해, 이와쨩.

-...어, 그래. 쉽게 생각...


입술을 삐죽 내밀고 별 말 하지 않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오이카와가 먼저 발을 떼었다. 내일 보자, 이와쨩.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철컥, 하고 오이카와의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나도 집으로 들어갔다. 쉽게 생각해보면...


생각해보면 오이카와의 입장에서는 그 얘기가 당연했을 수도 있다. 물론 도쿄에 함께 가서, 독립을 한다고 해도 옆집, 또는 룸셰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소꿉친구니까. 이제는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을 세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세는 것이 더 빠를 만큼 서로를 잘 아니까. 우리가 단순히 친구였다면, 오이카와의 말은 당연히 생각해봄직한 쉽고 편한 길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가슴이 퍽 막히는 것 같다. 나는 오이카와의 친구라는 사실이 답답했다. 답답하면서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한심했다. 우정이란 우리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오이카와를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도 못하고, 혼자 속으로 앓기만 할 뿐이다. 오직 친구로서 나를 바라보는 오이카와를 볼 때마다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오이카와에게 당장이라도 고백하고 싶다. 사실은 나와 너는 다르다고.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 되고 싶은 감정으로 너를 보고, 너와 손을 잡고 싶고, 키스하고 싶다. 언제고 여자 친구에게 밀릴 수 있는 아슬아슬한 관계가 아니라, 언제고 너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싶다. 나를 좋아해달라고 애원하고 싶다.


만약에 고백하면.

오이카와는 분명 난처하게 웃을거다. 온 몸으로 미안해하며 거절하겠지. 그렇게 수많은 여자애들이 오이카와에게 고백을 해왔고 거절당했지만, 거절에서 끝나지 못하고 짝사랑을 계속 했다. 오이카와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호감을 가지는 상대, 자신에게 호감을 주는 상대에겐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니까, 그런 오이카와에게 거절당했다고 해서 짝사랑을 끝낼 수가 없었을 거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런 애들을 보았고, 가끔은 거절당하는 여자애들에 나를 이입했다. 내가 만약에 고백하면, 저렇게 거절당하겠지. 남자지만 제일 친한 친구니까 누구보다 더 어쩔 줄 몰라하다 미안하다고 하겠지. 미안해, 이와쨩. 받아줄 수 없어서 미안해, 이와쨩.


나는 당장의 충동을 멈췄다. 절로 입술을 깨물었다. 꾹, 하고 깨문 입술 사이로 끅, 끅 거리는 소리가 났다. 내 처지가 비참하다. 나는 고백 하지도 못하는 병신이다. 거절당하는 상상만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하다못해 그냥 같은 반 친구였더라면, 졸업식 날 미친 척 하며 고백해 볼 텐데. 마지막이 있으니까. 그러나 오이카와와 나 사이에 마지막이란 언제가 될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끝이 있을까.


끝이 없다면, 끝을 만들어 볼까. 잠깐 스치듯 생각했다가 그만 두었다. 가슴이 아팠다. 바보같이 나는 오이카와와 끝을 내는 것보다 그래도 가끔씩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질질 짜면서도 오이카와를 포기하지 못한다. 병신, 병신하고 중얼거리다 눈물로 축축한 얼굴을 손으로 훔쳤다. 바보같이 울어도 별다른 좋은 해결책이 없다. 휴지를 뽑아 킁, 하고 코를 풀었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하하, 하하... 진짜로 끝이 없어.


이렇게 괴로울 바에야 처음부터 모르는 사이였으면 좋았겠다. 이럴 바에야 좋아한다는 감정 따위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다음 날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하나마키가 다가왔다.


-왜 그래? 눈이 빨갛네.

-아, 응. 잠을 못자서.


아침에도 집 앞에서 오이카와가 했던 질문이었다. 깜짝 놀라며 이와쨩, 눈이 왜그래?! 밤새 야한거 본거야? 라고 말하기에 등짝을 날렸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고 나도 조금 놀라긴 했지만 마주치는 사람마다 물어보니 대답해주기 난처하다.


-잠을 왜 못잤어?

-어? 그냥, 그냥 잠이 안와서.


하나마키는 잠깐만, 하고는 교실을 나갔다.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포털 검색어 따위 보고 있는데 눈에 축축한게 씌워졌다.


-악! 뭐, 뭐야?

-눈 많이 빨개. 축축해도 이거 쓰고 있어, 이와이즈미.


몇 번 본 적 있는 하나마키의 손수건이었다. 화장실에 가서 찬물에 적셔 왔는지 축축하다.


-야, 주려면 잘 짜서 줘야지. 옷까지 다 젖겠어.

-짜줄까?

-뭘 짜줘. 내가 짤게.


한 손으로 손수건을 짜자 주르륵 물이 흘렀다. 아무튼 뭔가 하나씩은 허술하다니까. 그래도 마음은 고맙지만.


-땡큐. 시원하네.

-이제 나밖에 없지?

-큭. 응, 너밖에 없네.


하나마키는 한동안 앞자리에 앉아서 어제의 예능 프로그램에 대해서 떠들었다. 하나마키와 근래 들어 둘이서 같이 있다 보니 이것저것 알게 되었는데, 하나마키는 집에 가면 TV를 몇 시간이고 본다.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다큐 등 종류를 따지지 않고 본다고 한다. 나는 집에 가면 씻고 밥 먹고, 그냥 일찍 자거나 게임하거나, 노래를 듣다가 자버리기 때문에 하나마키가 해주는 얘기들이 다 신기했다. 알지도 못하는 연예인에 대한 이슈라던가,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의 내용이라든가 듣다 보니 재밌기도 했다.


-그래서, 그 T라는 가수가 새로 앨범 발표했다고 예능에 나왔는데,


신나게 말을 하던 하나마키가 멈추었다. 북적거리는 교실의 소음은 여전히 계속 들렸지만 하나마키는 말을 잇지 않았다.


-왜 그래? 말을 하다 말아.

-어, 오이카와가 왔네.


계속 손수건을 눈에 대고 있던 터라, 손수건을 떼고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시야가 잡히지 않았다. 검은 어둠이 앞에 있는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깜빡거리는 눈 위로 차가운 뭔가가 닿았다. 본능적으로 오이카와의 손임을 깨달았다. 오이카와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손이 차가운 편이다. 하얗고 긴, 남자답게 단단한 손은 차갑기까지 해서 가끔 오이카와의 손에 닿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했기에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맛키랑 이와쨩이랑 또 같이 있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길래 오이카와상 온 줄도 모르고 있어?

-뭐, 평범한 이야기지.

-오이카와, 이 손 뭐냐.


눈에 닿은 손은 처음 닿았을 때보다 차갑지 않아서 시원했다. 솔직히 오이카와의 손은 기분 좋았다.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얼굴을 감싸지는 착각이 들게 했다.


-이와쨩, 눈 피곤한 것 같아서. 내 손 시원하지?

-...뭐, 계속 이러고 있어라.


오이카와는 하하, 웃더니 손을 치웠다. 멀어지는 손이 아쉬웠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시야가 안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눈이 아직 뻑뻑한 것 같아 몇 번 깜빡였다. 앞자리의 하나마키는 손에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오이카와는 책상 옆에 앉아 책상 위로 팔을 엎드리고 있었다.


-요즘 둘이서만 노니까 섭섭한데?

-뭘, 징그럽게 섭섭하데...


오이카와가 온 뒤로 말이 없던 하나마키가 고개를 돌렸다. 똑바로 오이카와를 보며 드물게 무표정인 얼굴이었다.


-이와이즈미랑 더 친해지려고 둘이 있는거지.


오이카와가 하나마키의 말에 입을 열려는 순간 종이 울렸다. 애초에 오이카와도 하나마키도 같은 반이 아니었기에 각자의 반으로 돌아가야 했다. 먼저 일어난 건 오이카와였다.


-맛키.


하나마키는 고개를 들지 않고 시선만 올려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힘내? 그렇다고 해서 오이카와상보다 이와쨩에게 가까워지진 못하겠지만.


피식 웃으며 하나마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앞자리의 주인이 왔던 참이었다. 종이 쳤는데도 자기네 반으로 돌아가지 않는 하나마키와 오이카와가 주위의 이목을 받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야, 둘 다 돌아가. 종 쳤어.


결국 일어나 말없이 서로를 보며 서 있는 하나마키와 오이카와의 등을 떠밀었다. 밀지마, 이와쨩! 하고 투덜거리는 오이카와에 비해 하나마키는 얌전히 등에 떠밀려 걸었다.


-나가, 나가. 너네 반으로 빨리 가라, 응?

-이와쨩, 점심 같이 먹자.

-어, 그러던지.


나도, 하나마키는 짧게 말하고 옆 반의 앞문으로 들어갔다. 오이카와는 그 옆 반이기에 조금 더 가야 했다. 오이카와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를 돌아서는 순간, 이와쨩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는 문에 반쯤 몸을 기대고 손을 흔들었다. 하얗고 긴 손이 유독 눈에 띄었다.




점심은 하나마키와 나, 오이카와 그리고 마츠카와까지 넷이서 먹었다. 요즘 나 왕따시키냐며 마츠카와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마츠카와는 넷 중에서 유일하게 반이 아래층이라서 쉬는 시간에 잠깐 보기 힘들었다.

언제나 부활동 시간에 보았기에 얼굴을 보는 것이 퍽 오랜만이었다.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마츠카와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그, 뭐냐 역 근처에 카페에서 일한다.


오이카와와 하나마키가 큭큭거리며 웃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어 웃음을 참았다. 험악하게 생긴 주제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니, 무슨 수로 사장님이 널 뽑았냐며 오이카와가 물었다. 마츠카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팩우유를 빨대에 꽂았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큭큭, 노, 놀러가도 되냐?

-놀러와. 서비스 해줄게 몰래.




그렇게 방과 후에 마츠카와가 일하는 카페로 놀러가게 되었다. 남자들끼리 카페에 갈 일이 드문데다 이 조합으로 가는 건 처음이었다. 마츠카와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먼저 가버리고, 셋이서 같이 가게 됐다.


-카페 가는거 오랜만이야.

-그래? 난 누나랑 주말에 가끔 카페 투어해.


슈크림이 맛있는 베이커리를 찾아서, 하나마키는 덧붙였다. 생긴 것처럼 입맛이 애같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 가볼래? 거기 슈크림이 내 인생 슈크림이거든.

-헤에, 그래?

-이와쨩은 단거 별로 안 좋아해.


오이카와는 맞지? 라고 물으며 나를 보고, 하나마키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침부터 느꼈지만 하나마키를 상대로 오이카와의 태도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 으스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쩐지 나에게 그러는 것도 아닌데 얄미운 태도다.


-카페에 슈크림만 있는건 아니니까. 그치? 거기 라떼도 맛있어.

-음, 뭐... 그렇지.

-이와쨩은 커피 마시면 밤에 잠을 못자서 마시면 안 돼.


하나마키의 말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도 오이카와는 태연하게 저만치 앞에 있는 카페를 가리키며 앞서 걸었다.


-가자, 하나마키.

-......어~ 가자, 이와이즈미.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눈치가 보였다. 어쩐지 토라진 애처럼 서있는 하나마키의 팔을 살짝 잡아당기자 하나마키가 순순히 끌려왔다. 마츠카와가 일하는 카페가 바로 앞이었다.


-이와쨩, 들어가자.


오이카와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문을 열었다. 자연스럽게 하나마키의 팔을 이끌던 손이 떼졌고, 어어 하는 사이에 오이카와에게 끌려갔다. 뒤돌아보니 하나마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갑자기 닿은 오이카와의 팔에 또 정신 못 차리게 의식하면서도 오이카와의 행동에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남자끼리 어깨동무쯤이야, 친한 사이에는 무의식적으로 하기도 하고 시합 중에 점수를 땄을 때는 끌어안기까지 하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오이카와랑은 중학교 때 이후로 그랬던 적이 없다. 오이카와랑 시합할 때나, 시합이 끝나고 나서 파이팅의 의미 외에는 신체적으로 접촉한 적이 없었다.


당연한가, 그냥 친구니까. 근데 항상 같이 다녔던 넷 중에서 제일 대화가 없는 마츠카와랑도 매번 어깨동무 했는데. 하나마키도 어깨에 기대기도 하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피했나?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이카와를 의식하는 나를, 오이카와가 눈치 채고 피했나...?

갑자기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걸 고민하는 내가 이상한건가?


이래서 짝사랑이 싫다. 상대방의 아주 작은 행동에도 하나, 하나 의미를 가지고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보통의 관계와 의미를 비교하고, 내게 했던 행동에 의미를 두려고 한다. 절로 미간이 좁아진다.





(584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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