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카마] Kaze (1)

2017. 10. 25. 01:44 from

[후타카마] Kaze (1)

 

-바람과 감기

 

 

뭐야, 이거. 누구 거냐.

카마사키는 하얀 가방의 뒷면을 확인하고서야 가방의 주인을 알아냈다. 아무래도 어제 새로 들어왔다는 1학년인 것 같다. 늦더라도 어제 왔었어야 했나? 하필이면 신입생들이 입부하는 날 집에 일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했더니 누가 들어왔는지 일일이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나저나 이름 한 번 되게 특이하네. 카마사키는 아무 생각 없이 보이는 대로 글자를 읽었다.

니로(ニロ)?”

설마 사람 이름이 니로겠어요?”

어느새 사람이 들어왔는지 낯선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녀석은 카마사키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낚아채 제 어깨에 멨다. 본인인가 보지. 분명 이름이 정말 니로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읽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의도적인 건 아니었지만 놀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미안하긴 한데, 그보다 기분이 나빴다. 아니면 아닌 거지 말투가 여간 날선 게 아니었다.

, 그러냐. 일학년인가 보지?”

.”

그럼이름이 후타쿠치(二口)인 거고?”

.”

…….”

말을 걸어도 사람 얼굴을 보는 법이 없다. 물론 후타쿠치의 라커가 카마사키의 맞은편이라 옷을 갈아입기 위해선 등을 질 수밖에 없지만 1학년인 주제에 행동이며 말투며 건방지기 짝이 없다. 괜히 말을 더 걸었다간 제 기분만 상할 것 같아 카마사키는 라커룸을 열고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첫인상 한 번 최악이네.

후타쿠치보다 늦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일 년 선배라고 먼저 연습복을 입은 카마사키는 라커를 잠그고 뒤를 돌았다. 그리고 말없이 부실을 나가려고 했으나, 쓸데없는 오지랖이 발동하고 말았다. 옷을 갈아입는 내내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말하기로 한 것이다.

헷갈리기 쉬우니까 가방에 이름 전체를 적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 솔직히 말해서, 처음 보면 누구든지 니로라고 읽지 않겠냐고. 어쨌든 쓸데없는 오지랖이긴 하지만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그리고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말에 티셔츠에 손을 꾀던 움직임을 멈추고, 그제야 카마사키 쪽을 돌아보았다. 내내 옆모습이나 뒷모습만 보였다 처음 본 녀석의 얼굴은, 아몬드 모양의 갈색 눈이 퍽 예뻐서 인상 깊었지만 눈빛은 전혀 딴판이었다. 후타쿠치는 헛웃음을 지으며 카마사키에게 말했다.

이제껏 아무도 안 헷갈렸는데요.”

…….”

젠장, 말하지 말걸. 자식이 어린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카마사키는 한 살 어린 후배에게 비웃음당한 것 때문에 얼굴이 새빨개져선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도 한참을 씩씩거리며 부실 앞을 떠나지 못하는 카마사키를 보고 마침 도착한 모니와가 깜짝 놀라 물었다.

, 부실 안에 뭐 있어? 왜 그래, 카맛치?”

아무 것도 아냐!”

, 뭔데 그래?!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 걸!”

됐어! 나 먼저 간다, 모니와!”

완전 최악, 최악, 최악! 들어와도 뭐 저딴 녀석이 들어왔어?! 카마사키는 씩씩거리며 체육관으로 향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저 녀석이랑 말을 섞나 봐라!

 

녀석, 후타쿠치 켄지라는 1학년은 비단 자신에게만 건방지게 굴었던 게 아니었던지 입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2학년과 3학년들의 눈 밖에 난 모양이었다. 처음 봤을 때 이후로 후타쿠치를 대놓고 무시하고 다니느라 관심을 껐던 카마사키는 그 날로부터 몇 주가 지났을 때야 후타쿠치와 2, 3학년들 사이의 아슬아슬한 신경전을 발견했다. 후타쿠치는 중학교 때부터 배구를 해온 만큼 실력은 1학년들 중에 손꼽힐 정도로 좋았지만 워낙 선배 보기를 물같이 하는 녀석인지라 팀워크가 형편없었다. 후타쿠치가 코트에 들어서면 아무도 공을 올려주려 하지 않아 녀석은 블로킹이나 리시브만 줄기차게 해댔다. 대체 중학교 때는 어떻게 플레이를 했던 거지. 배구는 전적으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스포츠인데 말이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눈에 보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리 호되게 당하고도 참견할 마음이 생기는 자신이 미친 놈 같았지만 아예 팀에서 소외된 녀석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3학년은 3학년대로 다가오는 인터하이와 그에 따른 주전 경쟁으로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어서 후타쿠치는 안중에도 없었고, 2학년은 2학년대로 3학년의 눈치를 보느라 후타쿠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1학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이.”

구석에서 땀을 닦던 후타쿠치를 향해 말을 거니 녀석이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누구도 녀석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인가. 카마사키는 슬쩍 주위의 눈치를 보다 마저 말을 이었다.

너 선배들한테 완전 찍혔다면서? 아주 난리가 아니던데.”

한가하게 남의 일에 참견할 군번인가요. 제가 보기에 그쪽은 괜한 오지랖 부릴 게 아니라 리시브 연습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아이고 골 때려라. 순간 후타쿠치의 동그란 머리통을 한 대 갈기고 싶은 충동이 솟았다. 얘는 애가 어떻게 된 건지 말을 해도 이딴 식으로 하는 거지? 카마사키는 흐읍, 하고 쉼 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대로 짜증내고 그냥 가버리면 괜한 오지랖을 부린 보람이 없지. 어쨌거나 부에 들어왔으니 이젠 함께 해야 할 부원이고 후배다. 먼저 부를 나가지 않는 이상 그런대로 실력이 있으니 경기에 나갈 기회도 생길 터였다.

난 됐고, 너 부에 불만이라도 있냐? 배구부에 들어왔으면 어찌됐던 간에 팀 플레이니까 팀워크를 쌓아야 할 거 아니야.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도 어느 정도는 선배들이랑 동기들이랑 친해져야지.”

그쪽한테 말하면 뭐가 해결 됩니까?”

?”

솔직히 제가 볼 때 지금 있는 3학년 주전들은 실력도 센스도 형편없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주전으로 뽑힌 것 같은데요.”

, . 너 말 다 했.”

아뇨, 아직 말 안 끝났는데요. 별 것도 아닌 새끼들이 자꾸 말투며 성격이며 건방지다고 트집 잡고 시비를 걸잖아요. 배구하러 들어왔으면 플레이로 보여주면 될 것이지 제 말투랑 성격이 뭐가 상관인데요? 전 친목 다지려고 입부한 게 아니거든요?”

, 잠깐만. 이 자식, 조용히 해!”

불만 있으면 말하라면서요.”

가만 내버려두면 누가 듣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떠들어댈 것 같아 카마사키는 급히 후타쿠치를 구석으로 몰았다. 그러자 후타쿠치는 신경질을 내며 카마사키를 밀쳤지만 힘은 제 쪽이 더 세서 어림없었다. 선배들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 이르자 후타쿠치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하지도 못할 거 쓸데없는 참견 말라고요!”

, 이 새끼 완전 골 때리네. 자식이 1학년 주제에 뭘 안다고 벌써 다 아는 척 잘난 체를 하고 난리야? 지금 주전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발탁된 거고 게다가 아예 고정된 것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 이유가 대체 뭐냐고요.”

이거 바락바락 대드는 것 좀 보게. 누가 이 녀석을 이제 막 들어온 1학년으로 보겠냐고. 참다못한 카마사키는 결국 팔꿈치로 후타쿠치의 허리를 퍽 찔렀다. 힘을 좀 빼긴 했으나 이제껏 참아 왔던 짜증때문에 은연중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아프긴 아파도 견딜 만은 하겠지.

임마, 나도 몰라! 하여간 감독님이 알아서 잘 정한 거겠지!”

! 아프잖아요!”

조용히 해. 아무튼 팀 플레이니까 최소한 선배들한테 시비는 걸지 말란 말이야. 선배들도 지금 한창 예민한 시기라 그렇지 평소엔 이렇게까지 날서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조용히 타일러도 제대로 듣고 있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겠다. 카마사키는 말없이 제 허리께를 문지르는 후타쿠치를 향해 한 마디를 더하려다 푹 고개를 숙였다. 젠장, 역시 신경 껐어야 했어. 이렇게까지 제멋대로인 녀석인 걸 알았다면 아무리 신경 쓰여도 말 걸지 않았을 텐데.

그런 카마사키를 쳐다보던 후타쿠치가 여전히 허리께를 문지르며 말을 걸었다.

그쪽은 주전이에요?”

선배한테 그쪽이 뭐냐?”

이름 모르는데.”

카마사키 야스시. 2학년이고 주전이야.”

포지션은?”

미들 블로커, 그 말투 좀 어떻게 안 되겠냐?”

천성이 이런 걸 어쩌라고요.”

말투는 천성이 아니거든? 바꾸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거라고.”

헤에, 그럼 전 예왼가 보죠. 그나저나 아까 있는 힘껏 찌른 거예요? 어떻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후배한테 폭력을 쓸 수가 있어요? 믿기지가 않네. 이거 암만 봐도 내일이면 퍼렇게 멍들 것 같은데 어쩔 거예요?”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요. 후타쿠치가 건수 잡은 사기꾼마냥 쉴 새 없이 궁시렁거렸다. 카마사키는 했던 후회를 곱씹으며 뒤돌아 달아났다. 아예 양쪽 귀를 막고 무시하는데도 녀석은 끈질기게 쫓아와 책임지라는 말을 반복했다. 제대로 실수했다. 그냥 내버려둘 걸 그랬다고,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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