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카마] 본심(本心)

2017. 8. 9. 20:36 from

[후타카마] 본심(本心)

 

 

[저게 뭐가 잘 생겼냐? 그냥 비실비실하게 생긴 거지.]

주위에서 그의 외모에 대해 말할 때마다, 남자는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남자답지 못한 외모라고 혹평을 하던 남자는 근처에서 얘기를 엿들은 여자들의 어이없다는 시선을 무시하고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남자는 그딴 실없는 소리 할 거면 리시브 연습이나 더 하자며 처음 말을 꺼낸 후배의 옷자락을 잡아끌고 코트 위로 가 버렸다. 옆에 있던 여자는 어느새 눈매를 사납게 치켜뜨더니 남자의 질투란 꼴사납다고 비웃었다. 대화의 중심 소재였던 그는 여자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며 코트 위에서 움직이는 남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벌써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남자는 리시브를 받아내지 못한 후배의 옆에 나란히 서서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었다.

남자는 늘 그렇다. 세상사람 모두가 관심 있어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제가 관심 있는 것에만 시선을 둔다. 배구, 혹은 그의 친구. 그 밖에도 남자가 관심 있는 것들이 많을 테지만 그는 아직 남자의 관심사가 그 외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은 남자의 시야 밖에 있다는 거다. 그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는 남자를 건드려보고 싶은 본능이 생겼다. 어쩐지 남자의 시선에 들어서고 싶다. 그건 남들은 다 날 신경 쓰는데 너는 왜 아니냐는 오기에 가까웠다. 툭툭, 시비를 걸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이다. 다행히도 남자는 다혈질이라 툭, 하고 건들면 건드는 대로 그를 인식했다. 그가 남자의 시야에 들어섰을 때 처음 느꼈던 건, 의외로 기분이 묘했다는 거. 남자의 시선은 화살처럼 날아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그가 원했던 건 남자가 자신을 봐 주는 게 맞긴 했지만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단순한 시선이 아니라, 잠깐의 마주침이 아니라, 그보다 더 한,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보다는 감정이 섞인 무언가였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남자는 졸업할 때까지 그가 원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단순한 시선, 잠깐의 마주침에 그치지 않았다.

 

 

, 하나도 안 변했네! 7년 만에 만난 거 맞아?”

이 새끼 완전 아저씨 다 됐어. 이거이거 배 나온 것 좀 봐라~ 결혼했다고 너무 방심하는 거 아니냐?”

설마 네가 제일 먼저 결혼했을 줄이야. 형수는 너 고등학교 때 어땠는지 다 아냐? 아니, 알 리가 없지. 알면 네가 결혼할 수 있을 리가, 아 새끼야 이거 치워라!”

닥쳐라, 닥쳐. 내가 한 마디 충고하겠는데 결혼은 늦을수록 좋은 거야. 알겠냐, 총각들아.”

아하하하, 술집을 통째로 빌린 게 천만다행일 정도로 저마다 끼리끼리 모여 앉은 테이블마다 결혼 얘기며, 직장 얘기며, 고등학교 시절의 얘기로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배구부 선후배들이 오랜만에 모인 자리라 그런지 몇 년 분의 이야기를 하느라 벌써 9시가 다 되어가는 데도 파장할 기미가 안 보였다.

내 결혼 얘기는 됐고, 너네는 어떠냐? 설마 아직까지 동정인 건 아니겠지?”

이미 가정을 이뤄 똥배가 나올 정도로 여유로워진 사사야가 테이블을 둘러보며 말했다. 결혼했다고 코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사사야의 시선이 카마사키에게 멈췄다. 처음부터 모니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은근히 인기가 많아 논외의 대상이었다. 궁금한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기 없어 보이는 카마사키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선을 받은 카마사키가 울컥 화를 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나를 봐! 내가 뭐, 설마 아직까지 동정일 줄 아냐?”

아니면 마는 거지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럼 지금 애인은 있어?”

지금은 없어.”

역시나, 하고 모니와와 사사야가 한숨을 뱉었다. 지금 없는 거지 이전엔 분명히 있었다니까? 카마사키가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모니와와 사사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에 더 열이 받은 카마사키가 테이블에 있던 술을 닥치는 대로 마셔대기 시작했다.

진짜라니까. 너희들 내 말 못 믿냐?”

아니야. 믿지 그럼. 그래서 여자 친구는 얼마나 사귀어 봤는데? 제일 오래 간 건 얼마나?”

두세 명 정도. 6개월은 갔나.”

두 명이면 두 명이고 세 명이면 세 명이지. 두세 명은 뭐야? 설마 너는 사귄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아니었던, 뭐 그런 건 아니지?”

아니면 사귀는 거로 치기엔 너무 빨리 헤어진 거 아니야?”

모니와의 말이 정답인 모양이었다. 카마사키는 얼른 화제를 바꾸고 싶었는지 처음 와 본 가게의 인테리어가 어떻다는 둥 꼬치가 맛있다는 둥 되는 대로 말을 내뱉었지만 미끼를 문 물고리를 어부가 그냥 놓아줄 리 없었다. 모니와는 대체 얼마나 사귀었기에 사귀는 걸로도 안치려는 거냐며 카마사키를 닦달했다. 그 옆에서 사사야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참을 생각도 없어 보였지만, 끅끅거렸다.

일주일? 삼일?”

제발, 모니와.”

혹시 하루는 아니겠지.”

그만하랬잖아.”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카마사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모니와는 눈치껏 장난을 거두었다. 만나게 되고 처음으로 테이블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옛날부터 연애에는 지나치게 어리숙했던 저의 친구는 아직까지도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었고, 하루 만에 헤어진 기억은 그의 지뢰가 된 듯 했다. 하긴, 아무리 그래도 하루는 심하긴 하다. 모니와는 장난이었지만 결국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어떻게든 화제를 바꾸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 그러고 보니.

후타쿠치 말이야. 의외이지 않았어?”

?”

그 녀석 졸업하고 배구 그만뒀잖아. 난 사실 의외로 후타쿠치는 배구에 진심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다른 쪽으로 갈 줄은 생각도 못했거든.”

하긴 나도 후타쿠치는 대학 가서 배구 할 줄 알았는데.”

. 하긴 의외였긴 하지.”

그런데도 되게 납득이 가지 않냐? 되게 잘 어울리잖아.”

후타쿠치가 배우라니.”

아이돌이면 몰라도 배우라니. 사사야가 꼬치를 뜯어먹으며 말했다. 그 말에 카마사키와 모니와도 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 술집에 있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한 번쯤 후타쿠치에 대해 떠들 것이다. 고등학교 때도 튀는 녀석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화젯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

후타쿠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대학을 진학하지도, 취직을 하지도 않았다. 돌연 몇 개월 동안 자취를 감추더니 갑자기 TV에 나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비록 역할은 작은 단역 수준이었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외모로 후타쿠치는 단숨에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주목받는 신인 치고는 결코 비중이 큰 역할이 와도 맡으려고 하지 않았고, 그 덕분인지 후타쿠치는 반짝 스타에서 그치지 않고 꾸준히 연기 실력을 키워갔다. 그리고 2년 전부터는 명실상부하게 가장 주목받는 20대 남자 배우 중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스크린이고 TV, 인터넷, 잡지 등 연예 매체란 매체에는 후타쿠치의 얼굴이 도배하고 있을 정도다.

이 정도까지 성공했으니 그런 연예인과 같은 학교, 게다가 같은 부활동을 했던 게 다테공고 배구부 사람들에게는 은근한 자랑거리가 된 것이다. 옛날에는 건방지고 얼굴만 잘났다고 툭하면 비아냥거리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들 후타쿠치를 들먹이면서 혹시라도 이 자리에 오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역시 안 오겠지? 후타쿠치.”

당연하지. 걔가 좀 바쁘냐? 지금 한창 드라마 촬영하고 있다잖아. 그리고 안 바빠도 후타쿠치가 이런 데 올 리도 없고.”

하긴. 걔 성격 상 동창회 같은 거 올 리가 없지. 근데 난 솔직히 동창회 오면서 후타쿠치 오는 거 꽤 기대했는데.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하지 않냐? 화면으로 볼 땐 고등학교 때랑 달라진 거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보면 어떨까 궁금하잖아.”

너네 술 안 마시냐? 나 다른 테이블로 간다?”

아까부터 닥치는 대로 술만 마셔대던 카마사키가 불평했다. 카마사키는 아까의 지뢰로 인한 상처가 가시지 않은 건지 구겨진 미간이 펴질 줄을 몰랐다.

마셔, 마신다고. 건배~!”

카맛치 너는 후타쿠치가 궁금하지도 않아? 너네 꽤 친하지 않았나.”

친하긴 개뿔이.”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왜 옛날에 후타쿠치가 막 들어왔을 때 말이야. 아이돌 같은 애 있다고 소문나서 연습하는 데 여자애들이 막 몰려왔던 거 기억 나?”

당연하지. 난 후타쿠치가 잘생긴 건 알았어도 그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는데 그 때 다른 학교에서도 왔었잖아.”

모니와와 사사야는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지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이랬었지, 저랬었지 하는 말을 들으며 카마사키는 말없이 술잔만 기울였다. 자리에도 없는 자식 얘기를 뭘 저렇게 신이 나서 하는지 모르겠다. 원래도 말이 많은 녀석들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나 그런지 입이 다물 새가 없다.

, 카맛치. 듣고 있냐? 뭘 술만 퍼마시고 있어, 꿀꿀하게.”

걔가 뭐 그리 잘생겼다고 난리야? 그냥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 있는 사람 얼굴인데.”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은 맞지만 그게 뭐. 어차피 남자 얼굴인데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카마사키의 말에 모니와가 사사야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이 자식도 하나도 안 변했네? 그 때 카마사키가 거의 유일했지, 아마? 대놓고 후타쿠치한테 저게 뭐가 잘생겼냐고 말했던 사람이.”

후타쿠치 엄청 어이없다는 얼굴이었잖아. 입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 친하지도 않았는데 대뜸 선배란 놈이 그런 말을 할 줄은 걔도 생각도 못했겠지.”

그러고보니 그 때부터인가? 후타쿠치가 카맛치한테 일일이 시비걸고 다니던 게. 혹시 카맛치 그 때부터 찍힌 거 아냐?”

푸하하핫, 그랬나봐! 찍혔었나봐! 뭐가 웃긴지 사사야가 테이블을 탕탕 쳐대가면서 웃어댔다. 그 옆의 모니와는 그래도 카마사키의 눈을 의식했는지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참아보는 듯 했지만 큭큭거리는 소리와 들썩이는 어깨가 신경 안 써주느니만 못했다. 카마사키는 이 놈들을 한 대 쥐어 팰까 고민하며 두 주먹을 그러쥐었다.

너네 맞을래?”

, 아니. 큭큭근데 카맛치 진짜로, 정말로 후타쿠치가 잘생겼다고 느껴본 적 없어?”

누가 안 잘생겼데? 객관적으로 잘난 얼굴이란 건 나도 알아. 근데 그게 뭐 어쨌냐는 거지.”

그냥 보이는 거 말고, 그렇게 느껴본 적 없냐고. 사람 외모라는 게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 사실 옛날에 걔가 남자인데도 가끔씩 얼굴 보면 설렜다니까. 물론 내가 게이라는 건 아니고.”

호모가 된 걸 축하해, 모니와.”

사사야가 모니와의 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모니와는 아니라니까, 신경질을 부리며 고개를 저었다.

. 원래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이 잘생기고 예쁘면 본능적으로 설레는 거야. 안 그럴 리가 있냐? 심지어 우린 남잔데 시각적인 거에 얼마나 약하냐고. 잘난 인간이 빤히 쳐다보면 그게 이성으로 끌리든 안 끌리든 눈이 제대로 달렸다면 반응할 수밖에 없다니까?”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카맛치. 너는 어때? 그런 적 없었어?”

술에 취해서 그런지 모니와의 긍정을 바라는 눈동자가 까만 유리구슬처럼 빛났다. 후타쿠치를 상대로 설렜던 적이 있냐고? 카마사키는 반쯤 남은 잔을 원샷하고는 말했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네.”

절대로 그래 본 적 없다. 후타쿠치한테 설렌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카마사키는 코웃음 쳤다. 남자를 상대로 무슨.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라며 카마사키가 술을 돌렸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영 재미도 없는 이야기만 듣고 있자니 술맛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끼리 고등학교 때의 추억을 곱씹다 최근까지 어떻게 살아 왔냐는 근황까지 얘기하고 보면 더 이상 공통의 화젯거리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남자들은 이럴 경우 으레 여자 이야기를 하곤 한다.

선배는 벌써 결혼하셨다고요? 우와, 아직 26살인데 요즘으로 치면 빨랐네요. 예뻐요?”

설마 사고 친 거 아니에요? 아하하, 아야.”

이 자식은 여대생이랑 지금 동거하고 있데요. 발랑 까져가지곤.”

카마사키와 모니와, 사사야만 있던 테이블에 이곳, 저곳을 방랑하던 후배들이 합류했다. 결혼이니 연애니 카마사키로서는 달가운 화제가 아니었지만 사사야가 결혼했다는 말에 화제는 금방 연애니 결혼이니 여자와 관련된 걸로 바뀌었다. 아까와 똑같은 말이 나온다면 이번에야 말로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카마사키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나한테는 제발 어떠냐고 물어보지 마라.

대학교 들어가면 당장 여자 친구 사귈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더라고요. 미팅을 수십 번을 하고서야 겨우 사귀었다니까요? 그래도 금방 헤어졌지만.”

얼마나 갔는데? 한 달?”

에이, 한 달은 심했다. 두 달은 갔던 것 같아요. 오래 되서 가물가물하긴 하지만요.”

후배의 말에 모니와와 사사야의 시선이 카마사키에게로 향했다. 측은한 듯이 바라보는 시선에 카마사키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네 왜 자꾸 나를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보는 거냐?

그래도 요즘엔 다 가볍게 사귀는 추세인지라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지 않나요? 6개월 이상을 간 적이 없다니까요. 하하하. 그만큼 여러 여자 만날 수 있긴 하지만.”

“1년 이상 사귀면 진짜 대단한 거야. , 사사야 선배는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어요? 사고 친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냥, . 오래 사귀기도 했고, 계속 같이 있다 보니까 자연스레 그런 흐름으로 흘러갔다고 해야 하나?”

처음 사귀었던 사람이에요?”

에이, 설마. 그 전에도 몇 명 있었지.”

아직 결혼에 대해 막연한 상상만 가지고 있는 후배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사사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진지한 연애는 따분하고 시시하다고 말했던 주제에 참 모순적이다. 사사야는 제 연애담을 말하는 게 쑥스러우면서 자랑스러운 모양인지 머뭇거리면서도 말을 끊지 않았다. 결혼한 사람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데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었다가 점점 서로 호감을 갖게 돼서 사귀게 되었다는 흔한 이야기였다.

근데 확실히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하고는 좀 다른 느낌이었어. 그냥, 그냥 막연하게 이 사람하고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둘만의 미래를 상상해도 행복했거든.”

신기해, 후배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이미 다들 20살을 훌쩍 넘어 20대 중반이 되었는데도 사사야 혼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카마사키뿐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그 순간 이상하게도 테이블에 정적이 흘렀다. 시끌시끌한 분위기 속에서 이 테이블만 홀로 동떨어져 있는 듯 했다.

생각해보면 전 이제까지 연애는 해봤어도 사랑은 해본 적 없던 것 같아요.”

나도.”

다들 술에 취해 감성에 젖었나. 조용해지다 못해 심해까지 가라앉을 것 같은 분위기에 카마사키가 목소리를 높였다.

야야, 다들 왜 이러냐. 술이나 마시자고.”

마셔, 마셔.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려고 해 봐도 다들 축 늘어졌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술잔을 돌리는 카마사키를 향해 후배가 물었다. 그러는 선배는 사랑 해 본 적 있어요?

?”

사랑 해 본 적 있어요?

귀가 따가울 정도로 시끄러웠던 가게가 일순 조용해졌던 건 그 때였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딸랑이는 소리는 누구의 귀에도 안 들어왔지만 가게에 들어서는 누군가는 모두의 시선의 한 번에 사로잡았다. 다들 기대하면서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후타쿠치가 들어온 것이었다.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후타쿠치는 어쩐지 조명을 받지 않았어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저래서 연예인인가 보다, 하고 멍하니 누군가 중얼거렸다.

 

이야. 역시 연예인은 뭐가 달라도 달라? 후타쿠치, 너 더 잘생겨진 것 같다.”

그런가요? 선배들은 변한 게 없네요, 아하하.”

연예인이 왔다며 호들갑 치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인사하던 후타쿠치는 마지막으로 가게 가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후타쿠치의 이름만 들어봤다던 후배들은 그를 연예인을 보듯실제로 연예인이지만, 쳐다보았다. 후타쿠치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사야가 주는 술잔을 받아 마셨다.

지금 되게 바쁜 시기 아니야?”

. 바쁘긴 해요.”

다들 엄청 놀란 거 봤냐? 동창회 있다고는 알려줬다지만 네가 정말로 올 줄은 몰랐거든.”

하긴 제가 좀 비싼 몸이긴 하죠. 마침 근처에서 촬영이 있어서 겸사겸사 와본 거예요. 졸업하고 나서 한 번도 얼굴 본 적 없기도 하고.”

후타쿠치는 예전과는 달리 말투가 살가워져 있었다. 모니와는 네가 나온 영화랑 드라마 챙겨보고 있다면서 나중에 사인이나 해달라고 말했다. 후타쿠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몇몇 후배와 인사를 나누더니 고개를 돌려 카마사키를 향해 대뜸 술잔을 내밀었다. 마침 제 잔에 술을 따르던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카마사키 씨는 여전하네요. 아직도 촌스럽게 노란 머리에요? 질리지도 않아요?”

신경 꺼. 그러는 넌 되게 변했다.”

별로 변한 거 없어요. 술 많이 마셨나보죠? 얼굴이 완전 새빨간데.”

원숭이 엉덩이 같아. 후타쿠치가 키득거렸다. 카마사키는 본인도 아까부터 열이 오르고 있다는 걸 알아 말없이 후타쿠치의 잔에 제 잔을 갖다 대었다. , 하고 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가벼웠다. 만날 TV에서만 보던 얼굴과 술을 마시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후타쿠치와는 이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같이 있으면 할 말이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친구도 아니고 단순한 부활동 후배라고 하기에도 뭣한 상대인데 게다가 연예인이 되어서 나타난 자식에게 묘하게 거리감이 들었다. 그러나 후타쿠치는 별 생각 없는지 카마사키에게 뭐 하고 지냈냐며 물었다. 어떻게 계속 직장은 다니시나 보네요? 얄밉게 시비를 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뭐, 별 다른 거 없이 직장만 다니고 있지. 너야 말로 뭐 하고 지냈냐고 묻는 것도 이상한가? 인터넷에서 다들 떠들어대고 있으니까.”

제 기사를 보긴 하나 봐요?”

보이니까 보는 거지. 게다가 여자들이 다들 네 얘기만 떠들어대니까.”

누구, 설마 여자 친구도 있어요?”

후타쿠치의 눈이 커다래졌다. 왜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내가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거에 놀라는 건지 이쯤 되니 게이라는 헛소문이라도 돌았었나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없지만, 하고 카마사키가 대꾸했다. 그냥 있다고 허세라도 부릴까 싶었지만 실상을 아는 녀석들이 주위에 있으니 그러지도 못한다는 게 원통하다. 보나마나 후타쿠치가 또 놀릴까 싶어 카마사키는 아예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럼 이전에는 있었다는 거네요? 헤에, 카마사키 씨가~?”

예상대로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에게 놀림조로 말을 걸었다. 몇 명이나 있었는데요? 그럼 동정 딱지는 뗐겠네요? 어떻게 사귀었었는데요? , 이런 촌스런 머리를 하고도 여자 친구를 사귈 수가 있구나~.

닥치고 신경 꺼. 몇 명을 사귀었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런 말투니까 인기가 없는 거예요. 전 여친하고는 왜 헤어졌어요? 얼마나 갔었는데요.”

신경 끄라,”

이런 기회가 날마다 오는 줄 알아요? 이대로 평생 여자 친구도 제대로 못 사귀어보다 혼자 죽을 셈이에요? 오랜만이니까 코치 해주겠다고요. 뭐 어때요? 오늘이 지나면 카마사키 씨랑 제가 언제 또 만나겠어요?”

…….”

이런 얘기는 원래 별 상관없는 사람한테 하는 것도 몰라요?”

그러니까 말해 봐요, 후타쿠치가 턱을 괴고는 말했다. 이 자식, 틀림없이 재밌어 하는 게 분명하다. 선심 쓰듯 말하지만 아직도 저를 놀리는 게 뻔해서 울컥 짜증이 났다. , 그래. 오늘 보면 언제 볼 지도 모르는 녀석이니까 못 말할 것도 없다. 네가 뭐가 그리 잘 났다고 코치해준다는 둥 젠체하는 건지 한 번 해 봐라, 망할 자식아. 카마사키는 씩씩거리며 후타쿠치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는 이야기를 풀었다. 카마사키의 뒤에서 모니와와 사사야가 애처로운 듯이 카마사키를 바라보는 것도 모르고.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카마사키는 외모가 그렇게 못나지도, 성격이 그렇게 나쁘지도, 벌이가 그렇게 시원찮지도 않은 평범한 남자다. 아니, 오목조목 따져보면 그렇게라고 치부하지 못할 정도로 좋은 점도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옛날부터 연애에 있어서는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다. 한 마디로 연애 고자인 셈이다.

사람의 몸에 연애 세포란 게 진짜 있다면 자신은 그게 극단적으로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몇 번인가의 썸을 타고, 두 세 번의 연애를 해 봤지만 그 때마다 카마사키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러는 게 맞는지 틀리는지를 몰라 혼자 전전긍긍하다 결국 차이거나, 혹은 아무 말 없이 일방적으로 연락이 끊기곤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얼마 전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자신은 무성애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연애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거다. 좋아한다는 게 어떤 건데? 카마사키는 누군가에게 관심이 간 적은 있지만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다. 그저 이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두근두근한 설렘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고,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다고 해도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사정이 있겠거니 납득하다보니 상대는 언제나 카마사키에게 왜 질투를 안하냐며 채근했고 그 때마다 카마사키는 뚜렷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도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을 사랑하는 게 무슨 느낌인데?”

하소연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진심으로 후타쿠치에게 상담받는 격이 되었다. 카마사키는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느라 우울함에 가득 찬데다 술김에 휩쓸려 낯간지러운 질문을 후타쿠치에게 던졌다. 사랑이 뭐냐니 맨 정신으로는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말이다.

글쎄요.”

의외로 후타쿠치는 그런 카마사키의 질문을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 주었다. 가장 구석에 앉아있는 두 사람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카마사키는 제가 술에 취하긴 취했나보다 생각했다. 카마사키는 대답을 해주기는커녕 반문하는 후타쿠치에게 제대로 대답하라며 턱을 괴고 있는 팔을 툭 쳤다.

아까 너 오기 전에 후배 하나가 그러더라. 자기는 연애는 해봤어도 사랑은 해본 적 없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나보고 사랑해본 적 있냐는 거야.”

그래서?”

말문이 턱 막히던데. 연애를 그렇게 해본 녀석도 모르는데 나 같은 연애 고자가 그걸 알 리가 없지.”

정말 해본 적 없어요?”

가게 조명이 어두워서 그런지 평소엔 투명하리만치 빛나던 후타쿠치의 눈동자가 까맣게 물들여 보였다. 낙엽이 생각나게 하는 그 눈을 보며 카마사키가 중얼거렸다. 없지, 해본 적 있을 리가. 후타쿠치는 빈 잔을 채우려는 카마사키의 손을 치우고 대신 물이 든 컵을 쥐어주었다.

아까부터 엄청 마시고 있는 거 알고는 있어요? 취하면 바래다주는 사람도 없으면서 뭘 믿고 그렇게 퍼마시는 건지 모르겠네. 벌써 술 취했어요?”

나 필름 끊긴 적 없거든?”

오늘 처음 끊기려나 보네요? 진짜 대책 없네.”

시끄러, 임마. 너야말로 아까부터 비겁하게 물만 마시고 있잖아. 꼴에 연예인이라고 이미지 관리하는 거야 뭐야. 너 건방져졌다?”

그게 하루 이틀 일이에요? 만날 건방지다 뭐다 화냈던 건 카마사키 씨잖아요.”

알긴 아냐면서 제 잔 대신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빈 잔에 술을 넘치도록 따랐다. 너야말로 벌써 취한 건 아니겠지? 신경을 건드리는 말에 후타쿠치가 이마를 찌푸리고는 잔을 비웠다. 카마사키는 큭큭거리며 후타쿠치의 턱에 흐르는 술을 손으로 훔쳐 주며 말했다.

자식, 칠칠맞기는. 너 취했지?”

손 안 치워요? 카마사키 씨야말로 지금 술주정 부리고 있거든요? 얼굴은 무슨 토마토처럼 빨개져가지고 완전 꼴사납거든요?”

시끄러. 너는, 너도.”

제 얼굴을 꼴사나운지 살피는 카마사키에게 후타쿠치가 보란 듯이 얼굴을 드밀었다. 내 얼굴이 뭐가 어쨌다고요? 의기양양한 눈빛이 말하는 바를 읽고 카마사키는 울컥 짜증이 솟아 잘난 척 하지 말라고 쏘아 붙이려 했다. 그런데 제 쪽으로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조명에 그리워져 있던 그늘이 사라지면서 유난히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아 카마사키는 홀린 듯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새삼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얼굴을 보며 이 자식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은 물론이고 주변 여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미친 듯이 잘생겼다고 난리를 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부드러워 보이는 머릿결이나, 반쯤 드러난 매끄러운 이마와 캬라멜이 생각나게 하는 갈색의 눈동자와, 보기 좋게 뻗은 코는 물론이고 어디를 봐도 잘났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외모였다. 후타쿠치가 뭐가 잘생겼냐며 어디까지나 객관적으로, 라는 말을 변명처럼 내뱉었던 카마사키였지만 사실은 그도 후타쿠치의 얼굴은 동성임에도 지나치게 잘생겼다고 생각했었다. 남자인 자신이 그렇게 느끼는 게 이상한 것 같아서 언제나 부정해왔지만 사실은.

너 잘생겼네.”

저도 모르게 카마사키가 중얼거렸다. 순간 후타쿠치한테 설레 본 적 없냐던 모니와의 말이 떠올랐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한다고 넘겼지만 사실은.

잘생겼다.”

설렌 적 있다. 당연한 거 아니냐.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눈이 블랙홀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의 시선을 빨아들이는데. 그만큼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데 동성이고 이성이고 상관없이 설레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이 자식은 성격은 개차반인데 도대체 왜 이렇게 잘생겼는지 하늘도 참 공평하시다.

문득 후타쿠치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났다. 무슨 애가 저렇게 생겼나 생각했는데. TV에서 보던 연예인을 실제로 보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후광이 비치는 듯 했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커피를 수십 잔은 마신 것처럼 가슴이 뛰어서 안 보려고 필사적으로 피했는데. 후타쿠치가 하도 시비를 걸어서 그것도 다 헛짓거리가 된 셈이었지만. 그 때는 남자를 상대로 설렌다는 게 병이라도 든 것이라 생각했었다. 마냥 이상하다고, 미친 게 틀림없다고. 다른 사람을 상대로는 이런 적 없었는데 왜 후타쿠치 상대로만 이러는 걸까. 카마사키는 오랜만에 가슴이 떨리는 느낌이 거슬리면서도 좋아서 묘하다고 생각했다눈을 뗄 수가 없었다.

 

후타쿠치는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모르고 자신의 눈을 빤히 쳐다보는 카마사키와 시선을 마주하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주 무아지경이구만. 이러다간 밤 새겠다며 후타쿠치는 조금씩 몽롱해지는 카마사키의 눈을 손바닥으로 덮어버렸다. 그렇게 얼마를 있다 조심스레 손을 떼니 카마사키의 눈은 어린아이처럼 꼭 감겨져 있었다. 벽에 기댄 그대로 잠이 든 카마사키를 보는 후타쿠치의 미소가 보다 더 깊어졌다.

 

후타쿠치는 제 외모에 대해 별 생각해본 적 없지만 지금은 꽤 만족하고 있다. 술에 취해 푹 늘어진 몸을 다시 한 번 고쳐 안으며 후타쿠치는 한 손으로 문을 열었다. 연예인이 된 것도 딱히 큰 목표가 있어서 결정한 것도 아니라 이제껏 어떤 보람도 느껴본 적 없지만, 지금은 꽤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매니저의 도움으로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에 몸을 숨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여기서 며칠 밤을 새도 누구 하나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후타쿠치는 이중 삼중으로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되는 자신의 맨션 안으로 들어서며 생각했다.

물 먹은 솜 마냥 늘어지는 몸을 그대로 침대로 뉘이니 푹신한 침대가 마음에 드는지 카마사키가 기분 좋은 듯 한숨을 쉬었다. 금세 방 안에 술냄새가 풀풀 풍겼지만 하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허리 위에 올라타 셔츠 단추를 하나, 하나 서둘러 풀어버리다 손가락을 멈추기를 반복했다. 당장이라도 나체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과 곤히 잠든 상대를 아직은 깨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번갈아가며 후타쿠치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후타쿠치는 어느새 드러난 카마사키의 상체를 빤히 쳐다보다 가만히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술에 취해 목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쇄골부터, 보기 좋게 발달한 가슴팍을 거쳐 여전히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복근까지 후타쿠치의 손이 스쳐지나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부드럽긴 하지만 역시 단단한 남자의 몸이다. 하지만 상상과는 달리 따듯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실재이기도 하다.

자신의 손바닥 아래 있는 몸이 카마사키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후타쿠치는 한숨을 내쉬며 카마사키의 상체 위로 허리를 굽혔다. 살짝 옆으로 돌려진 얼굴 때문에 고스란히 드러난 목덜미 위로 후타쿠치가 입술을 묻었다. 어쩐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어 후타쿠치는 일순 숨을 멈추고 입술에 닿은 피부를 실감했다.

아주 오래 전, 막연하게 이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기를 쓰고 신경을 건드려 봐도 그 시선에 자신이 기대하던 감정이 스며들어 있던 적이 없었는데. 후타쿠치는 입술 너머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카마사키의 맥박을 느꼈다. 두근거리는 것이 그의 맥박인지 제 심장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아까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주위의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시끄러울 정도로 귀를 따갑게 했던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카마사키의 눈이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그 눈에 감정이 섞인 것을 본 순간, 후타쿠치는 이제야 자신이 오래 전부터 바라왔던 것을 손에 쥐게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 본인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감정이지만 이번에야말로 원하던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단순한 시선, 잠깐의 마주침보다 더 한 남자의 마음을.

잠시 후, 입술 사이로 후타쿠치의 숨결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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