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마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머리가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후타쿠치가 다가올 때마다 눈이 가고, 손이 부산스러워졌으며, 심장이 반응했다. 시끄럽게 두근거리는 심장이 눈에 띨까 카마사키는 괜히 가슴팍을 확인하게 되었다. 되도록 후타쿠치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에 카마사키는 스스로의 행동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행여나 너무 쳐다보지는 않았을까 일부러 딴 곳에 시선을 두고, 유독 후타쿠치의 목소리만 크게 들려도 신경 쓰지 않으려 바쁘게 움직였다.

 

불현 듯 마음을 깨달았을 때부터 카마사키는 조용히 마음을 접기로 결심했다. 마음을 표현한다거나, 고백한다는 일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그야 결말이 눈에 선하니까. 자신은 평범한 베타인데다, 심지어 예쁘거나 귀여운 구석 하나 없는 남자고 심지어 후타쿠치와는 만날 때마다 싸웠다. 반쯤 장난식이어도 이런 자신이 후타쿠치에게 연애의 대상이 될 리가 없다. 뭐가 아쉬워서 주변을 맴도는 예쁘고 매력 있는 오메가와 여자들을 두고 후타쿠치가 나를 봐 줄까. 짝사랑이라면 조금은 기대하고 설렐 법도 하지만 상대가 상대고,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아예 가망이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잡은 것과 달리 한 번 깨달은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아무리 카마사키가 다른 곳에 신경 쓰려 노력해도 여전히 후타쿠치는 카마사키를 놀리러 다가왔고, 게다가 별 이유 없이 거절하면 예전처럼 짜증내고 화낼까 무서워 집에 같이 가자는 말도 거절하지 못했다. 말 하나, 행동 하나, 심지어 시선 하나에도 하릴없이 휘둘렸다. 보이면 보여서 좋았고, 목소리가 들리면 들려서 좋았고, 그저 주변에 후타쿠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카마사키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후타쿠치와 헤어져 집으로 향할 때면 몇 번이고 그만두자, 어쩌려고 그러냐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어찌나 가벼운지 밤중에 실없이 도착한 라인 하나에도 카마사키는 설렜다. 설레고 기분이 고양되면서도 그런 자신이 짜증나 견딜 수가 없었다.

 

미쳤나 봐.”

 

정말 어떡해야 하지. 포기하기는커녕 점점 마음이 커져가 초조해진다. 이러다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좋아한다고 말해버리면 어떡하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대체 나는 왜 후타쿠치를 좋아해서 이런 생고생을 하는 걸까.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면 이렇게 마음을 꼭꼭 숨기려고 아등바등 하는 일도, 가망 없는 짝사랑에 괴로워하지도 않았을 텐데.

 

 

[짝사랑 포기하는 법]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봤더니 꽤 글이 많았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고백하다 차였지만 아직도 좋아하는 경우, 그리고 고백도 못하고 혼자 전전긍긍하며 좋아하는 경우. 수많은 글들의 제목을 훑어보다 짝사랑을 포기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라는 글에 댓글이 가장 많이 달려 있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할 가망이 없다면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시간이 해결해주리란 믿음으로 참아 내거나. 둘째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니, 상대에게서 떠나거나. 마지막으로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어떤 방법이든 절대적이진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려고 결심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을 잃지 않고 인내심으로 극복하는 것뿐이다.’

 

전학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학교에서 종일 마주치니 두 번째 방법은 불가능하다. 졸업하려면 아직도 1년 하고도 반이나 남았고, 그때까지 후타쿠치를 짝사랑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이다. 새로운 사랑을 찾으라고...

 

짝사랑을 포기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

?!”

 

등 뒤에서 불쑥 손이 뻗어와 핸드폰을 가져갔다. 카마사키는 기겁하며 핸드폰을 낚아채려 했지만 상대의 손이 더 빨랐다. 그제야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카마사키는 머리가 하얘졌다.

 

, 핸드폰 내 놔. 후타쿠치.”

헤에. 카마사키 씨 설마 짝사랑 중?”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손을 이리 저리 피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첫째, 시간이 해결해 준다. 둘째, 멀어진다. 셋째, 어이쿠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 내 놓으라고! 죽는다!”

아하하. 얼굴 새빨개졌어요.”

닥쳐.”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금방이라도 목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듯 쿵쿵거렸다. 카마사키는 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끄고 후타쿠치를 지나치려 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카마사키의 마음을 알고 그러는지 아닌지 후타쿠치를 그 뒤를 졸졸 따라왔다.

 

설마 순진하게 그런 시답잖은 글을 믿는 건 아니죠?”

믿든 말든.”

그래서 카마사키 씨는 몇 번? 첫째? 둘째?”

신경 꺼라. 제발.”

, 설마 셋째는 아니겠죠. 새로운 사랑을 찾으려고요?”

 

아주 제대로 걸렸다. 카마사키는 입을 다물고 후타쿠치의 말을 무시하며 걸음을 빨리 했다. 빨리 화장실이든 교실이든 후타쿠치를 떼어내야 했다. 하지만 후타쿠치는 뻔뻔스럽게 2학년 교실에까지 들어와 카마사키의 앞자리에 앉았다. 점심시간이면 매점 근처에서 죽을 치는 앞자리 하마다가 원망스러웠다. 카마사키는 앞에서 뒤를 돌아보고 앉은 후타쿠치를 못 본 척 책을 꺼냈다. 펼치자마자 후타쿠치의 팔이 탁 놓여졌다.

 

네 교실 안 가냐?”

점심시간이잖아요. 간만에 재밌을 것 같으니까 얘기 해봐요.”

“... 무슨 얘기.”

무슨 얘기겠어요. 카마사키 씨 짝사랑 이야기지. 설마 카마사키 씨가 누구를 좋아하고 있을 줄이야. 대체 누구에요? 같은 반? 설마 지금 근처에 있어요?”

... 경 끄라 그랬지.”

, 진짜로 근처에 있어요?”

 

후타쿠치는 대놓고 반을 둘러보며 짧은 머리? 긴 머리? , 혹시 저 여자? 하고 카마사키에게 꼬치꼬치 물었다. 그러다 한 곳을 빤히 쳐다보더니 카마사키에게 말했다.

 

, 저 사람이 여기선 제일 낫네. 저 여자에요?”

 

저절로 후타쿠치의 시선을 따라가니 같은 반 타카하시였다. 긴 머리에 피부가 비칠 듯 새하얗고 오목조목한 이목구비가 귀엽다며 반 남자애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여자애였다. 게다가 오메가였다. 카마사키는 혹시 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후타쿠치의 얼굴을 흘끗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후타쿠치는 턱에 손을 괴곤 타카하시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미세하게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카마사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저 정도면 카마사키 씨가 포기할 법도 하네요. 나 정도는 되야... , 쳐다본다. 나한테 관심 있어 보이는데?”

“......안 가냐?”

화났어요? 저 여자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죠?”

화 안 났으니까, 이만 가. 점심시간 다 끝나간다.”

 

후타쿠치의 팔을 툭 밀어내고 책을 펼쳤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가장하며 카마사키는 책을 팔락팔락 넘기며 집중하는 척 했다. 후타쿠치의 시선이 얼굴에 닿아 긴장하기가 무섭게 종소리가 울렸다.

 

저 가요.”

.”

 

책을 보며 말했지만 처음부터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카마사키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입술을 깨물었다. 후타쿠치의 발걸음이 멀어지고 교실을 나가고 나서야 카마사키는 잊은 숨을 밭아 내었다. 답답함에 숨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틀어 보니 타카하시였다. 수줍은 얼굴로 다가온 타카하시는 아무도 없는 교실 뒷문을 보며 말했다.

 

카마사키 군. 아까 걔는 후타쿠치 켄지 군이지?”

... .”

같은 배구부라더니 사이가 좋은가봐. 교실까지 놀러온 걸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아.”

듣던 대로 잘생겼더라. 혹시 걔 지금 여자친구 있어?”

 

알아서 뭐 하게? 카마사키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할 뻔 했다. 사실 카마사키도 후타쿠치와 여자 얘기를 하거나 했던 적은 없기에 지금 후타쿠치가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아닌지 알지 못했다. 예전에야 연습이 끝나고 여자애와 같이 돌아가거나 하면 그런가보다 했었지. 근데 생각해보니 요 최근 사이에는 항상 같이 하교했고, 확실히 여자애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드물어지긴 했다. 그렇다고 해서 후타쿠치가 여자친구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 그러고 보니 그랬구나. 후타쿠치 지금 여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겠구나.

 

미안, 잘 모르겠어. 그런 얘기는 잘 안 해서.”

그래? 흐음...”

 

카마사키는 초조함을 달래며 타카하시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후타쿠치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같은 반이 되고나서 한 번도 말해본 적이 없는 자신에게 말을 걸 이유가 없겠지. 카마사키는 괜히 책을 넘겼다. 타카하시가 빨리 제 자리로 가기를 바랐다.

 

오늘도 배구부 연습 해?”

“... ?”

괜찮다면 연습 구경하러 가도 될까?”

 

그 순간 영어 선생님이 들어왔다. 부탁할게! 타카하시는 양 손을 모으며 눈을 찡긋하곤 가버렸다. 정말 싫다. 무엇보다 저렇게 작고 예쁜 여자애한테 질투심을 느끼는 자신이 싫었다. 혹시라도 후타쿠치가 저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어 버리면 어쩌나 초조해하는 게 끔찍했다.

 

 

수업이 어떻게 되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수업이 다 끝나자마자 타카하시는 눈을 반짝이며 카마사키에게 다가왔고, 그런 두 사람을 모두가 신기하게 쳐다봤다. 여자애들한테는 이미 은근슬쩍 말해 놓았는지 잘해보라는 말이 나왔다. 고백이라도 하려는 눈치였다. 타카하시가 들뜬 목소리로 후타쿠치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카마사키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대답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뭐라 둘러댈 말도 없어 솔직하게 후타쿠치에 대해 얘기하는 자신을 때려주고 싶었다.

 

? 저 분은 누구세요?”

어어~? 혹시 카마사키 씨 여자친구?!”

 

예상했던 대로 타카하시를 2층에 데려다주고 오자 사방에서 호기심에 가득 찬 질문이 쏟아졌다. 후타쿠치 보러 온 거야, 라는 말에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짜증나는 인기남이네. 누구보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놀랐었던 사사야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 사사야한테 괜히 발로 장난치는데 마침 후타쿠치가 왔다. 이미 타카하시를 발견했는지 그 쪽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뭐에요. 저 여자 왜 왔어요?”

너 보러 왔단다, 후타쿠치!”

 

휙휙, 하는 휘파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 자식. 인기 많은 녀석! 모니와가 툭툭 후타쿠치를 쳤다. 솜방망이 주먹에 후타쿠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마사키의 팔을 잡아 채 구석으로 끌었다. 답지 않게 카마사키의 표정을 살피며 난색을 보였다.

 

나 아무 짓도 안 했어요.”

알아. 타카하시가 너한테 관심 있어 보이더라.”

 

카마사키는 슬쩍 후타쿠치에게 잡힌 팔을 빼내었다. 맨 팔에 닿은 감촉이 그대로 팔위에 멍으로 남을 것 같았다. 괜히 팔을 문지르며 지나가려고 하자 후타쿠치가 앞을 가로막았다. 저 사람 짝사랑하는 거 아니었어요? 남이 듣지 못하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니,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은 너야.

입 밖으로 내지 못할 진심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카마사키는 입을 다물었다. 차마 잘해보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 카마사키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후타쿠치를 두고 지나갔다.

 

, 차라리 모른 척 할걸 그랬다. 시선이 가도, 마음이 울렁여도, 생각에 떠올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칠 걸 그랬다. 스스로에게 시시한 변명이라도 해줄 걸 그랬다고, 카마사키는 연습하는 내내 생각했다.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설레며 좋아하게 될 줄 알았다면 눈치 채지 않는 게 나았을 텐데. 마음 졸이며 애먼 사람에게 질투하고 싶지 않은데.

 

카맛치! 조심...!”

“...?”

 

뒤를 돌아보자마자 쾅! 하는 소리가 나며 무언가 뒤통수를 강타했다. 그 충격에 절로 무릎이 고꾸라지며 나뒹굴었다. 얼얼한 통증보다 누가 머릿속에서 종을 치는 것처럼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들어올림과 동시에 카마사키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이 하얗게 새며 주변에서 카맛치! 카마사키 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눈앞에 타카하시와 후타쿠치가 서 있다. 아주 친밀한 사이인 것처럼 한 치의 거리도 없이 두 사람은 딱 붙어 있었다.

 

고마워요, 카마사키 씨.’

?’

카마사키 군. 고마워! 덕분에 우리 사귀게 되었어.’

 

타카하시가 뺨을 발갛게 물들이고 악수를 건넸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마주 잡자 경쾌하게 손이 흔들렸다. 어안이 벙벙한 카마사키가 무슨 말이냐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자 후타쿠치가 카마사키의 손을 떼어내었다.

 

무슨 소리야?’

우리 둘이 사귄다구요. 카마사키 씨 덕분에.’

?’

카마사키 씨도 저한테 도움이 될 날이 오네요. , 카마사키 씨 짝사랑은 안됐지만 여기까지인걸로.’

무슨, ,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사귀어?’

 

당황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카마사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지만 후타쿠치는 타카하시의 손을 마주 잡더니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 저러할까. , 후타쿠치? 카마사키의 더듬거리는 말에 후타쿠치가 마주 잡은 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입맞춤했다.

 

서로 좋아하면 시간이 무슨 상관인가요.’

뭐라고?’

, 카마사키 씨에겐 상관있겠군요. 제가 몰라봤어요.’

 

끔찍하다. 누가 산채로 몸을 갈기갈기 도려내는 기분이다. 으스러지는 마음에 차라리 심장이 멈추었으면 하고 바랐다. 카마사키가 못 보겠다는 듯 눈을 지르감았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복받쳐왔다.

 

걱정 말아요. 짝사랑은 시간이 다 해결해 줄 테니까.’

후타쿠치.’

아니면 새로운 사랑을 찾으시던가.’

, 후타쿠치.’

카마사키 씨의 가장 장점은 인내심이잖아요.’

후타, 후타쿠치. 잠깐만 기다려봐.’

잘됐네요.’

아니, 아니야 후타쿠치.’

 

안녕이란 말을 남기고 타카하시와 후타쿠치가 멀어졌다. 그 잔상을 뒤쫓으며 카마사키가 후타쿠치를 연신 불렀지만 자신의 목소리만 메아리쳐 돌아왔다. 까만 어둠에서 카마사키는 정신없이 내달리다 몇 번이나 넘어졌다. 무릎이 아파.

 

“...키 씨.”

“....”

카마사키 씨!”

 

거짓말처럼 어둠이 가시고 형광등 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물먹은 듯 반짝이는 불빛에 카마사키가 어리둥절해 하는데 누군가의 손이 다가와 눈을 훔쳤다. 얼굴을 적시는 것이 제 눈물이라는 것을 안 카마사키가 뛸 듯 놀라 몸을 일으켰다. 꿈이었다. 모조리 꿈이었어... 정말 꿈이었나?

 

정신 들어요?”

... ? .”

 

후타쿠치가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아까의 연장선상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타카하시는 보이지 않았다. 내심 안도하다 볼을 흐르는 느낌에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아까부터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후타쿠치의 눈빛에 카마사키가 대충 둘러댔다.

 

... 아니, 악몽을 꿔서. 다른 애들한텐 말하지 마라, 쪽팔리니까.”

무슨 악몽이었는데요?”

? , 몰라. 기억이 안 나. 원래 깨어나면 기억 안 나잖아.”

그래요? 근데 꿈에 제가 나왔나 봐요.”

뭐라고?”

 

심장이 철렁였다. 어떻게 알았지? 혹시 잠자다 잠꼬대라도 했나 싶어 카마사키가 입을 다물었다. 카마사키의 오른쪽 눈가가 찡그러졌다.

 

제 이름을 자꾸 부르시던데요.”

?”

꿈에서 제가 죽기라도 했어요? 너무 절박하게 부르길래 제가 깨운 거에요.”

... 글쎄. , 그랬나.”

땀이 이렇게 많이 났네.”

 

후타쿠치가 식은땀이 난 카마사키의 이마에 손을 대려는데 카마사키가 화들짝 놀라 손을 휘둘렀다. 찰싹, 하고 후타쿠치의 손이 떨어졌다. 지나치게 격한 반응에 후타쿠치는 물론이고 때린 장본인인 카마사키도 놀라 눈이 커졌다.

 

, 내가 닦을게. 더럽잖아.”

 

뒤늦게 카마사키가 근처에 있던 휴지를 뽑아 이마를 닦으며 얼버무렸다. 평소 같았으면 뭐라고 시비를 걸 법도 한데 후타쿠치는 별 말이 없었다. 대신 챙겨온 카마사키의 가방을 뒤적이더니 수건과 티셔츠를 건넸다.

 

땀 식으면 감기 걸리니까 닦아요. 옷도 갈아입고.”

, 고맙다.”

 

대충 이마며 목이며 땀을 닦곤 카마사키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뭐에 쫓기는 사람마냥 카마사키는 서둘러 몸을 닦았다. 맨몸을 보이는 거야 익숙한 일이었지만 후타쿠치가 앞에 있으니 어쩐지 신경 쓰였다. 물론 후타쿠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을 걸 알고 있지만 괜히 그랬다.

 

, 목 뒤도 제대로 닦아요.”

어디?”

여기. 목 뒤에 머리카락 끝이 젖어 있잖아요.”

 

목덜미에 차가운 손이 닿았다.

 

!”

 

차가운 감촉에 카마사키의 몸이 움찔 굳으며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당황한 눈이 이리저리 뒹굴었다. 차마 이번엔 뭐라 변명하기가 그랬는지 카마사키는 모른 척 티셔츠를 입었다. 이제 가자, 하고 말하며 후타쿠치를 두고 일어서 걸어가는데 본인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후타쿠치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괜히 매만지고 있다는 것을. 후타쿠치는 그 뒤를 따라 걸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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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05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