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후타쿠치가 달라졌다.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 이상 필요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애초에 친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무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주 기본적인 대답만 해줄 뿐 사적인 대화가 단절되었다. 한동안 고민하다 어젯밤 보낸 라인에는 읽었다는 표시만 보일 뿐 답장이 없었다.

 

후타쿠치, 잠깐만.”

?”

... 왜 어제 라인 답장 안 해줬냐?”

하하. 라인 해도 되나요?”

 

후타쿠치가 웃으며 말했다. 웃고 있음에도 웃음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

건방지게 어떻게 선배하고 라인을 해요.”

, 전에 내가 했던 말 때문에 그런 거라면... 네가 오해했나본데,”

아니요.”

?”

오해 안 했는데요. 애초에 제가 선배 취급을 안 해드렸던 게 죄송하죠.”

 

지금까지 죄송했습니다, 선배. 하고 후타쿠치는 자기 할 말만 끝내곤 돌아섰다. 카마사키가 당황한 목소리로 어, ! 잠깐만! 하고 불러도 후타쿠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냉정하게 갈 길을 갔다. 그 이후로도 몇 번 후타쿠치와 대화를 하려고 했으나 그럴 때마다 후타쿠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한다며 자리를 피했다. 연습 도중이라 자리를 피하지 못할 때에는 이전에 태연한 표정으로 카마사키를 놀렸던 때처럼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말을 끊었다. 대화 자체가 되지 않았다.

 

후타쿠치의 행동이 달라진 것은 카마사키 한정이었다. 평소처럼 다른 사람에게 괜한 시비를 걸고 장난을 치면서도 카마사키에게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확연히 달라진 태도에 주변에서도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이 싸웠냐는 말이 돌았다. 다들 후타쿠치에게 물어보긴 어려우니까 비교적 편한 카마사키에게 물었다. 그럴 때마다 카마사키는 싸운 건 아닌데, 라고 얼버무리며 대답하면서도 스스로 의문이 들었다. 싸운 건 아닌데 뭐지? 지금 상황은 절교한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좀 편해지지 않았어?”

 

연습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을 때 사사야가 말했다. 항상 카마사키가 후타쿠치에게 휘둘려지는 것을 옆에서 봐 왔기에 사사야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좀 서먹해지긴 했어도 이제 시비도 안 걸고, 제대로 선배취급 해주잖아.”

, . 그렇긴 하지.”

그렇다고 해서 표적을 바꿔서 다른 애들한테 시비 걸고 다니지도 않아. 그럼 잘 된 거지.”

 

쟤가 좀 철이 들었나봐, 모니와가 옆에서 거들었다. 카마사키는 그런가, 하고 대답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쉬는 시간이면 늘 찾아오던 후타쿠치가 없으니 편했다. 주변에서 말리기에 바빴던 모니와도 여유로운 기색이었다. 슬쩍 돌아보니 후타쿠치는 아오네 옆에서 턱을 괴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다 카마사키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휙 돌렸다.

 

거의 모르는 사람 취급하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모니와가 덧붙였다. ‘거의가 아니라 이 정도면 그냥 모르는 사람이 나을 법 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일상이 이렇게 지루해질 수 있다는 것을 카마사키는 최근에 깨달았다. 예나 지금이나 딱히 새로울 것 없이 하루하루가 단조로웠지만 예전에는 지루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학교에 가는 일이 기대가 되고, 매일 배구에 매진하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요즘에는 전혀 그런 기분이 나지 않았다. 지루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상하게 자꾸 후타쿠치가 생각났다. 절교 아닌 절교를 해서 그런지 자꾸 후타쿠치가 마음에 걸렸다. 수업을 듣다가 멍하니 있을 때면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내가 말을 잘못 했나? 그렇게 확 태도를 바꿀 정도로 내 말이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와중에 복도에서 후타쿠치를 스치듯 만날 때면 예전처럼 인사를 주고받고 싶고, 배구 연습을 하다 합이 잘 맞을 때면 가끔 그랬듯이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계속 눈에 밟혔다. 그저 후타쿠치가 눈에 띄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서건 무의식적으로 후타쿠치를 찾게 되었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후타쿠치에게 흘러도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카마사키는 왠지 모르게 목이 타는 기분이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요즘의 자신은 뭐에 홀린 사람마냥 하나만 생각했다. 게다가 눈에 밟히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게 더 무서운 거였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누구와 함께이거나 혼자이거나를 막론하고 후타쿠치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생각에 빠져들었다. 소용돌이에 빠진 사람마냥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아직도 싸우고 있어? 화해했어? 주변에서 눈치 보며 물어오던 후배들이나 친구들도 이제는 후타쿠치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다. 후타쿠치와 한 공간에 있으면 마치 두 사람만 각각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다가가도 닿지 않았고 마주치지 않았다. 홀로 우주를 정처 없이 떠다니는 기분에 답답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어느새 몇 주라는 시간이 지났다.

 

카마사키 선배.”

 

여느 때와 같이 연습이 다 끝나고 정리를 하는데 후타쿠치가 말을 걸었다. 그 때 이후로 후타쿠치가 먼저 찾아온 적이 없었기에 방심하고 있던 카마사키가 화들짝 놀랐다. 두 팔 가득 물병을 안고 정리하려던 카마사키의 팔에서 물병 두 세 개가 떨어졌다.

 

으악.”

 

데굴데굴 굴러가는 물병을 집으려고 허리를 숙이려는데 후타쿠치가 먼저 물병을 주웠다. 여기요, 하고 카마사키의 팔에 물병을 얹었는데 다시 물병이 굴러 떨어졌다. 고맙다고 말하려던 입이 그대로 멈췄다.

 

...”

그냥 제가 들고 갈게요.”

, . 고맙다.”

 

평소 같았으면 미련하게 물통을 그렇게 들고 있냐며 타박하는 말이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후타쿠치는 대신 카마사키가 들고 있던 물병들 중 몇 개를 더 가져가 정리했다. 1학년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후타쿠치를 어렵게 생각하는지라 연습이 끝나고도 좀처럼 뒷정리를 해본 적이 없었던 후타쿠치였기에 의외였다. 게다가 최근엔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기까지 했으니 갑자기 일을 거들어주는 후타쿠치의 의도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베푸는 호의라고 보기엔 후타쿠치는 아무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충 정리한 뒤 나머지는 후배들에게 부탁한다 말하고 체육관을 나오려는데 후타쿠치가 말을 걸어왔다.

 

집으로 바로 가요?”

그래야지.”

그럼 같이 가요.”

 

후타쿠치와 카마사키는 같은 동네에 살지는 않았지만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은데다 타고 가는 버스가 같았다. 딱히 일부러 시간을 맞추거나 약속을 잡지는 않았지만 연습이 끝난 뒤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같이 하교하곤 했다. 그 때 이후론 언제나 후타쿠치가 먼저 쌩하니 가버렸지만. 카마사키는 여전히 후타쿠치의 의중을 헤아릴 수 없었지만 전처럼 다가왔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안도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카마사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하교하는 두 사람을 보고 배구부 사람들이 의아한 듯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모니와는 후타쿠치를 흘끗 쳐다보곤 카마사키에게 화해했어? 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카마사키가 뭐라 대답할 새 없이 후타쿠치가 다가왔다. 순간적으로 모니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모니와 선배도 같이 가나요?”

? 아니, 난 사사야랑 갈 건데...”

그럼 가요, 카마사키 선배.”

어어... 그럼, 내일 보자.”

 

카마사키는 모르겠지만 모니와는 후타쿠치가 다가오자 느낄 수 있었다. 분명 억제제는 항상 복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가끔씩 후타쿠치의 알파 페로몬이 뿜어져 나올 때가 있다. 후타쿠치같은 우성이 아니기에 모니와는 발현하고 나서부터 한 번도 알파 페로몬을 절제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가끔, 페로몬이 너무 강하거나, 미성숙한 아이들의 경우 감정의 기복이 커질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페로몬이 터지듯 뿜어져 나온다고 들었다. 후타쿠치가 페로몬을 조절하지 못할 리는 없으니 분명 뭔가에 자극을 받은 터였다. 그러나 대체 뭐 때문에 후타쿠치의 감정이 폭발한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모니와는 굳었던 어깨를 주무르며 카마사키와 함께 걸어가는 후타쿠치의 뒷모습을 살펴봤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걸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내내 카마사키는 후타쿠치가 뭔가 말을 할 거라 생각해 기다렸지만 후타쿠치는 입도 벙끗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나서도 별 말이 없기에 뭐지 싶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어서 뭐라 말을 걸어도 후타쿠치는 생각에 잠겼는지 멍하니 창밖을 쳐다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뭔가 대화를 나눠야 지난 며칠 동안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아무 말도 못해보고 버스가 도착했다. 카마사키가 후타쿠치보다 집이 더 가까웠기에 내리려고 준비하는데 그제야 내내 딴 곳을 보던 후타쿠치가 고개를 돌렸다. 당황한 얼굴을 보니 어디쯤에 와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 나 먼저 내린다.”

저도 내려요.”

?”

 

후타쿠치는 다짜고짜 내린다는 말을 하곤 당황해서 우두커니 서 있는 카마사키의 등을 떠밀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버스에서 내리자 후타쿠치는 대뜸 어느 쪽이에요? 하고 물었다.

 

뭐가 어느 쪽이야?”

선배네 집이요.”

우리 집은 왜?”

그럼 제가 여기까지 와서 어딜 가겠어요? 사방이 주택가인데.”

아니, ! 말 한 마디도 없이 오는 사람이 어딨냐?”

 

카마사키가 황당해하던 말던 후타쿠치는 다리 아프다며 카마사키를 재촉했다. 아주 낯선 곳은 아니지만 이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카마사키는 할 수 없이 후타쿠치를 집으로 데리고 갈 수밖에 없었다. 후타쿠치는 별 말없이 카마사키의 뒤를 따라왔다. 카마사키로서는 도통 왜 이러는지 감이 안 잡혀서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후타쿠치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카마사키의 말을 무시했다.

 

다행히 오늘은 집에 아무도 없는 날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안을 둘러보던 후타쿠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마사키 선배다운 집이네요.”

그게 무슨 뜻이냐?”

별 뜻 없어요.”

 

어깨를 으쓱하곤 후타쿠치는 집에 인기척이 없다는 걸 느꼈는지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낯선 공간에 들어왔음에도 마치 제 집처럼 당당하게 활보하며 돌아 다녔다. 그러다 거실 서랍장 위에 놓여있는 카마사키의 중학생 때 사진을 발견하곤 풉하고 웃으며 진짜 촌스러웠네요라고 말해 카마사키의 신경을 건드렸다. 거기에 있는지도 몰랐던 사진이었는데 솔직히 카마사키조차 제정신으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추한 사진이었다. 중학교 때 배구 경기에서 얼굴에 공을 맞고 코피를 흘리는 사진이었다. 사진을 현상했을 당시 버린다고 찢어버리겠다고 안간힘을 썼었는데 결국 엄마한테 지고 말았다. 그 때 없애버렸어야 했는데. 그런 사진을 후배한테, 그것도 후타쿠치한테 보이다니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런 사진 놔두면 부끄럽지도 않아요? 완전 흑역산데.”

너한테 보이다니 죽고 싶네.”

그래요? 그나저나 선배 방은 어디에요?”

, 2층 끝 쪽 방인데 들어가 있어라. 뭐 마실 거라도 챙겨서 올라갈게.”

 

카마사키는 은근슬쩍 액자를 뒤집어놓았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카마사키의 얼굴이며 귀와 목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얼굴에 후타쿠치는 오랜만에 유쾌했다. 배고프니까 뭐 맛있는 거라도 갖고 오라고 말하고는 후타쿠치는 피식거리며 카마사키의 방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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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05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