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2층 끝 쪽 방은 문이 열려 있어 밖에서도 내부가 보였는데 단숨에 카마사키의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낯익은 냄새가 났다.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 느꼈지만 이상한 기분이었다. 분명 카마사키는 알파도, 오메가도 아닌데 특유의 체취가 풍겼다. 깊고 진한, 사람을 홀리기 위해 알파와 오메가가 풍기는 페로몬과는 달랐다. 연습하고 씻을 때마다 맡을 수 있었던 바디 워시의 냄새가 은은하게 그러나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무슨 바디 워시를 쓰는 거지? 후타쿠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방으로 들어섰다.

 

 

뭐하냐?”

 

집에 있던 빵이며 음료수를 챙겨서 올라왔더니 후타쿠치가 카마사키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뻔뻔하게 대자로 누워 카마사키가 왔음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방에서 냄새 나요.”

? 냄새 난다고?”

 

꽤 깨끗하다고 생각했는데 방에서 냄새가 난다니 충격적이었다. 혹시 쓰레기통을 안 비웠나 확인해봤지만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카마사키가 머쓱하게 미안, 하고 창문을 열려고 하자 후타쿠치가 침대에서 일어나 막았다.

 

됐어요. 그나저나 바디 워시 뭐 써요.”

그냥 집에 있는 거 대충 쓰는데. ? 별로냐?”

좀 특이해서요.”

이건데.”

 

카마사키가 가방에서 꺼내 온 휴대용 용기를 열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평범하게 시원한 향이었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카마사키의 냄새는 이것보다는 마른 풀잎의 냄새가 났고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뚜껑을 닫고 카마사키에게 돌려주니 아까부터 냄새 운운해서 신경 쓰였던 카마사키가 킁킁거리며 바디 워시를 다시 확인했다. 그냥 평범한데.

 

갑자기 이런 건 왜 묻냐? 뜬금없이.”

궁금한 게 많은 나이잖아요.”

 

하여간 진짜 뻔뻔하네. 지난 몇 주 동안 자신을 아예 모르는 사람 취급했으면서. 카마사키가 코웃음 쳤다.

 

웃기네. 관심도 없었으면,”

“......”

...”

“......”

아니, 관심이 있었으면 해서 말한 게 아니라.”

몰랐네요? 거리 두자고 할 때는 언제고 제가 관심주길 바랐다니.”

말이 헛 나온 거거든. 그런 거 절대 아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듯 후타쿠치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한쪽 입가가 삐죽 올라간 모양에 카마사키는 재차 말실수 했다며 자신을 타박했다. 스스로도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 말은 마치... 관심을 못 받아서 혼자 삐친 사람 같지 않은가. 아니, 내가 왜 저 자식의 관심을 바라는데? 그러다 요사이 있었던 일을 생각해내곤 카마사키가 후타쿠치한테 따지듯 물었다. 순순히 후타쿠치를 집까지 데리고 온 데에는 카마사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너야말로 그 때부터 왜 그러는데? 왜 답지 않게 무시하고 그러냐?”

제가 뭘요? 카마사키 선배선배취급 해달라고 하셨잖아요. 전 거기에 따라줬을 뿐이고요.”

그게 무슨 선배취급 하는 거야.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후타쿠치는 카마사키가 이런 말을 하리라는 것을 예상한 듯했다. 시치미를 뚝 떼며 카마사키가 가져온 우롱차를 마시며 카마사키의 반응을 구경했다. 속 터지는 쪽은 카마사키였다.

 

아무래도 네가 오해한 모양인데. 그 때 내 말은 이런 식으로 데면데면해지자고 했던 게 아니었어. 그래도 내가 선배니까 조금은 날 존중해달라는 거였고. 미운 7살도 아니고 왜 그렇게 비뚤어지게 받아들여?”

미운 17살이니까요.”

그렇게 좀 가볍게 말하지 마! 하여간 너는 항상...”

그래서 어땠어요?”

?”

 

후타쿠치가 홀짝거리며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카마사키를 향해 물었다. 아무 말이나 내뱉으며 카마사키를 골리던 얼굴이 낯설게 변했다. 주변에 알파나 오메가가 있었다면 본능적으로 몸이 덜덜 떨릴 만큼 후타쿠치의 페로몬이 팍, 팍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발산되었다. 페로몬을 느끼지 못하지만 카마사키는 순간적으로 후타쿠치의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과 분위기에 당황한 카마사키가 어어, 거리자 후타쿠치가 조금씩 몸을 기울이며 다가왔다. 침대에 등을 기대고 있었던 카마사키의 등 너머로 후타쿠치의 팔이 놓이면서 반쯤 후타쿠치에게 덮인 자세가 되었다.

 

어떤 식으로였던 간에 선배 뜻대로 해드렸잖아요, ‘선배취급. 만족하세요? 그동안 어땠어요.”

뭐가 어땠냐니. 그나저나 팔 좀 치워. 답답해.”

싫은데요? 제대로 대답해요. 어떤 기분이셨어요?”

 

힘으로 밀면 그대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카마사키는 꼼짝도 못했다. 힘을 쓰기 이전에 덫에 걸린 먹잇감처럼 후타쿠치의 눈빛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가까이 다가온 탓인지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후타쿠치의 체취가 맡아졌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냄새였다. 자신은 베타이기에 한 번도 누군가의 페로몬을 맡아본 적도 없고 맡아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후타쿠치의 페로몬도 이런 냄새가 나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어떻기에 다들 후타쿠치에게 홀리는지.

딱히,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하하. 그래요?”

그래! 오히려 그, 뭐냐 그동안 얹힌 게 가라앉듯이 속 편하더라!”

 

정말요? 그러셨어요? 후타쿠치가 말할 때마다 몸이 조금씩 더 기울어지며 다가왔다. 조금만 고개를 틀면 그대로 서로의 얼굴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후타쿠치가 숨을 내쉴 때마다 그 숨이 카마사키의 뺨에 닿았다. 긴장해서인지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점차 커지는 게 느껴졌다. 뭐야, 무서워. 카마사키는 없는 빈틈을 찾아 엉덩이를 들썩거렸지만 애초에 비켜날 곳이 없었다. 오히려 몸을 움직일수록 그 틈을 맞추기라도 하듯 거리가 좁혀졌다.

 

거짓말.”

아닌데.”

다 티 나거든요. 카마사키 씨. 거짓말 할 때마다 눈이 흔들리잖아.”

뻥 치지 마. 안 그랬어.”

 

거짓말처럼 후타쿠치가 몸을 뒤로 물렸다. 후타쿠치가 팔을 치우고 멀어지는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공기가 트이면서 답답함이 가셨지만 왠지 모를 허무함이 다가왔다. 정신 차리지 않았으면 뒤따라 다가갔을 지도 몰랐다. 아찔한 상상에 카마사키는 불편하게 움츠러들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아까부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나는.

 

카마사키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꽤나 상처였다고요?”

 

후타쿠치가 가면을 쓰듯 눈썹을 내리곤 불쌍한 얼굴을 지었다. 가식인 게 훤히 보이는 표정에 카마사키의 입에서 저절로 시큰둥한 말이 터져 나왔다.

 

상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냥 속아 넘어가 줄 생각은 없어요?”

없다, 그런 거. 장난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되요?”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한 말에 카마사키가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순간적으로 후타쿠치의 낯빛이 험악하게 바뀌었다. 카마사키를 뚫어버리려는 것처럼 매섭게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X 열 받았었다 이거에요.”

, 야 존X는 좀...”

아 죄송. X X 열 받았었다고요, 빌어먹을 카마사키 씨 때문에.”

 

내가 지금 뭘 듣고 있는 거지? 잔뜩 찡그린 눈가에서 지금껏 내비치지 않았던 후타쿠치의 감정이 삐죽삐죽 솟아나왔다. 후타쿠치는 참아왔던 화를 한 번에 푸는 사람처럼 그 때부터 온갖 욕을 다 하며 카마사키를 몰아 세웠다. 귀를 따갑게 만드는 욕에 카마사키가 막으려 했지만 어찌나 감정을 싣고 말하는지 도중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카마사키가 어버버하는 사이 후타쿠치는 이제 끝이 났는지 마지막으로 크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타쿠치의 앞머리가 한숨에 흐트러졌다.

 

뭐 때문에 선배취급 운운하면서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지, 그건 알아야겠네요.”

내가 너보다 한 살 더 많고,”

X, 이제 와서 선배취급 받고 싶다는 말 하면 제가 믿을 것 같아요?”

근데 이 새끼가 왜 자꾸 욕질이냐.”

아 됐으니까 빨리 말하라고요! 왜 그랬어요, 대체!”

 

코너에 몰렸다. 후타쿠치의 말처럼 애초에 처음부터 후타쿠치가 하는 짓을 웬만하면 받아주었던 카마사키였기에 선배취급 받고 싶다는 말은 스스로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았다. 뒤늦게 대접받고 싶을 수도 있었지만 카마사키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고, 이를 후타쿠치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오히려 후타쿠치가 대접받고 싶길 원했지. 뭐만 하면 후배니까요, 라는 말을 면죄부처럼 입에 달고 살았었다. 도저히 지어낼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카마사키는 결국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 다들 안 좋게 봐서...”

다들? 누가요? 모니와 선배가요? 아니면 사사야 선배?”

아니, 걔네 말고! 걔네 말고 다른 사람이,”

누가 카마사키 씨한테 그런 말을 했다는 거네요?”

... 아닌데. 그런 적 없어.”

누군데요, 그 새끼가?”

그냥 알려고 들지 마. 귀찮아져.”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며 머리를 굴렸다. 카마사키의 말대로 모니와나 사사야 선배들은 그런 말을 할 만한 사람이 못 되었다. 같은 학년인 애들은 카마사키에게 그렇게 말할 입장이 못 되었고, 게다가 귀찮아진다는 말로 보면 자신이 알게 된다면 트러블이 생길 사람이 분명했다. 자신을 아니꼽게 생각하는 사람이야 많았지만 배구부 내에서라면 몇몇으로 좁혀졌다. 유치하게 사소한 일로 트집 잡길 좋아했던 3학년 알파 새끼들 중 한 명이 틀림없다. 그렇게 뒤에서 뒷담화를 까더니 기어코.

어처구니없는 가정에 답지 않게 흥분하는 바람에 후타쿠치는 아까부터 잔뜩 흐트러져 있던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긴 생각해보니 납득이 갔다. 카마사키는 처음 봤을 때부터 보기완 달리 밀면 밀리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쉽게 휘둘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자신에게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겠지.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남의 일에 참견했었다며 후타쿠치가 이를 갈았다. 그나저나 그와는 별개로, 이 사람을 어떻게 한다? 솔직히 아무리 그런 얘기를 들었겠기로서니 남의 말만 듣고 자신에게 선을 그으려 한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지내고 싶어요?”

, 글쎄?”

카마사키 씨가 선택해요. 속 편하게 살고 싶어요?”

 

당연하지, 모니와나 사사야였다면 옆에서 이렇게 거들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후타쿠치한테 시비 털리느라 힘들었잖아. 없으니까 편하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카마사키는 요 몇 주 간 한 순간도 편한 적이 없었다. 그 때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봤을 때 언제가 더 나았냐고 묻는다면 카마사키는 주저 없이 그 이전이라 말할 것이다. 남들의 말마따나 후타쿠치와 매번 싸우기만 하고 가끔은 지나친 장난에 질릴 때도 있었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좋았다.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하게 된다면 매저키스트냐고 불릴게 뻔했지만 카마사키는 그랬다. 뭐를 했고 어땠었고를 떠나 그 때를 생각하면 즐거웠다. 시시하고 유치한 장난에 서로 타박하다가 마주쳤던 장난기 섞인 눈이 요즘 따라 자주 떠올랐다. 그러다가도 냉담한 후타쿠치의 얼굴을 마주하면 그 때의 일들이 아주 먼 과거의 일들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오히려 후타쿠치에게 무시 받았을 때가 힘들었다. 매번 지나치던 길에서 갑자기 투명한 유리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이게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고.

 

됐어요. 이제부터 선배대접 해드릴게요, 카마사키 선배.”

 

한동안 고민하는 카마사키를 두고 후타쿠치가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다. , 팍 하는 소리에서 언짢음이 느껴졌다. 뭐라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후타쿠치가 탁탁 발걸음 소리를 내며 방을 나가버렸다.

 

후타쿠치, 잠깐. !”

 

어찌나 빨리 갔는지 카마사키가 뒤따라 나와 1층으로 내려갔는데 후타쿠치는 벌써 나가고 없었다. 순간적으로 카마사키는 그 때의 일이 떠올랐다.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카마사키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후타쿠치가 자리를 떴다. 다시금 오버랩되는 상황에 카마사키가 급하게 신발을 구겨 신고 달려 나갔다. 멀리서 후타쿠치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 기다려 봐, !”

, ! 따라오지 마요!”

 

카마사키가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자 후타쿠치가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홱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 더 씩씩대는 걸음걸이가 꼭 나 열 받았음, 하는 티가 확연히 드러났다. 끝까지 무시하는 저 태도 좀 봐라, 건방지게. 속으로 욕하며 카마사키가 있는 힘껏 달려가 후타쿠치의 가방을 낚아챘다. 동시에 후타쿠치가 화를 내며 뒤 돌아섰다.

 

왜 따라,”

!”

“......”

“....”

뭐라고요?”

들었잖아.”

아니요? 뭐라고 했는지 하나도 못 들었는데요?”

 

말을 내뱉고 나서야 내가 왜 쟤한테 사과를 하고 있지?, 라고 깨달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충 얼버무리려는데 그걸 예민하게 알아채곤 후타쿠치가 재차 물어왔다. 이러니까 나 혼자 잘못한 사람 같잖아. 애초에 사람 무시하고 건방지게 굴었던 게 누군데. 내심 속에 쌓였던 일들이 다시 한 번 카마사키의 뇌리에 스쳤다. 어쩌다 눈이 마주쳤을 때면 싸늘한 얼굴로 대놓고 고개를 훽 돌려버렸었다. 게다가 몇 번이나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 못 본 척 무시했지. 생각해보니 열 받게 한 행동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사과를 받아도 모자랄 지경에 사과 따위 할까보냐. 절대 먼저 사과하지 않을 테다.

 

아냐. 말이 잘못 나왔어.”

?”

... 잘 가라. 쭉 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버스 정류장 있으니까...”

 

예전 일로 꽁해 하는 게 남자답진 않지만 애초에 후타쿠치 놈과 관련해서는 항상 유치해졌다. 카마사키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을 짓는 후타쿠치를 내버려두고 발을 떼려고 했는데 덥석 팔이 잡혔다.

 

이랬다 저랬다, 장난해요? 미안하다고 했으면 똑바로 말 해야지, 말 해놓고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어딨어요?”

잘못 말한 거라니까. 이것 좀 놔.”

빨리 사과해요. 나한테 그런 말 했던 거 사과하라고요.”

참나, 너야말로 사과해! 사람 말을 끝까지 안 듣고 대놓고 무시하고, 비아냥거렸던 게 누군데?”

 

울컥한 카마사키가 잡힌 팔을 빼려고 안간힘을 썼다. 애초에 후타쿠치보다 힘이 세기에 마음만 먹으면 문제없었다. 후타쿠치는 뿌리쳐진 손을 말아 쥐었다. 그리곤 서로 말없이 상대방을 노려보다 카마사키 쪽에서 먼저 시선을 돌렸다. 유치원 애들도 이렇게 안 싸우겠다. 대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미안하니까 빨리 사과해요.”

?”

사과했잖아요. 이제 카마사키 씨가 나한테 사과하라고요.”

너 이 자식. 그게 사과냐?”

예에. 그러니까 사과해요, 빨리.”

 

아까보다 한층 더 인상을 찌푸리곤 후타쿠치가 재촉했다. 고집을 꺾지 않는 어린애 같은 모습에 카마사키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신기했다. 하여간 진짜 제멋대로다.

 

미안하니까 너야말로 그만 노려봐.”

 

못이긴 척 사과하자마자 후타쿠치가 인상을 탁 풀곤 보란 듯이 턱을 들어 올렸다. 마치 내가 봐줬다, 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카마사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평하게 각자 사과하고, 사과 받았는데 오히려 손해 본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에게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무슨 의도였던 간에 먼저 선을 긋고 밀어낸 쪽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려던 마음은 없었지만 다시금 후타쿠치에게 말려들어 버렸다. 하여간 후타쿠치와 관련해서는 좀처럼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 말리고, 휘둘리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얼마 못 참고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사과 했으니까 이전같이 행동하기만 해 봐라, ?”

제가 어쨌는데요?”

“... 무시하지 말란 말이다.”

별로 그런 적 없는데요. 카마사키 씨 자의식 과잉이 심하시네요.”

!”

 

언제 데면데면했었냐는 듯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에게 시비를 걸었고, 그렇게 얼마동안을 길거리에 서서 투닥거렸다. 싸우느라 굳어있던 얼굴이 점점 풀어졌다. 카마사키는 자꾸만 입꼬리가 씰룩 올라가려는 것을 모른 척 손으로 매만졌다. 그리고 어느새 해가 기울어지면서 어둑어둑해지자 후타쿠치는 이제 가봐야겠다는 말을 하곤 카마사키를 향해 돌아봤다.

 

둔한 주제에 다른 사람 눈치 볼 생각은 꿈에서 깨세요, 시간 낭비니까.”

 

카마사키가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후타쿠치가 피식 웃더니 가버렸다. 내가 둔하긴 뭐가 둔하다는 거야. 멀어지는 후타쿠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카마사키가 중얼거렸다.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를 걸어가는 후타쿠치의 걸음걸이가 아까 신경질을 쓰던 때와 달리 여유로웠다. 노을빛에 붉게 물든 후타쿠치의 머리카락이 태양처럼 타오르는 것 같았다. 카마사키는 후타쿠치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눈을 떼지 못했다. 뒷모습만으로도 사람의 시선을 잘도 잡아채는구나.

 

이때는 그저 그 뿐이라 생각했다. 워낙 튀는 사람이니까 시선이 갔었던 거겠지. 게다가 마음에 걸리는 일도 있었으니 자연스레 신경 쓰였던 거라고, 이때는 그리 생각했다. 그 이전부터 마음 한 편에 감정이 싹트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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