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카마] 알파의 연애

 

 

우성 알파 후타쿠치 x 베타 카마사키

 

 

 

01.

 

지잉, 하고 라인이 도착했다는 진동음이 울렸다. 이제 막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려던 카마사키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가방을 내려놓고 가방을 뒤적였다. 화면이 켜진 핸드폰에 익숙한 이름으로부터 메시지가 떠 있었다.

 

[끝났어요?]

 

답장을 하기도 전에 다시 진동이 울렸다.

 

[체육관 근처로 와요.]

 

먼저 질문한 주제에 연달아 일방적인 통보를 내린 메시지에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가 지가 키우는 개도 아니고, 오라 마라야. 젠장. 애초에 방과 후에 함께 하교하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괜히 마음이 그랬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카마사키는 가방을 챙겨 교실을 나왔다. 다들 분주하게 하교하는 와중에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들이 오고 갔다. 어디 가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카마사키는 어깨를 으쓱하며 남들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마사키가 체육관 근처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누군가 있었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 의외였다.

 

멀리서 보이는 두 명의 실루엣에 카마사키는 다가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한 사람은 만나기로 했던 사람이지만 나머지 한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복도나 식당 등에서 오고 가며 마주쳤을 지도 모르지만 카마사키에게는 낯선 사람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유명한 우성 오메가 중 한 사람이다. 귀하게 자란 티가 곳곳에서 풍기는 그녀는 2학년에서 가장 예쁘다고 소문나서 알파고, 오메가고, 베타고 남자건 여자건 한 번쯤은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왜 방과 후에 체육관 건물 뒤에 서 있는지, 모르고 싶었지만 예상이 갔다. 카마사키는 두 사람을 보다 조용히 몸을 숨겼다.

 

이번이 몇 번째더라?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는 의식을 안 할 수가 없어 일일이 세어 봤지만 그것도 열 손가락을 넘어가자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만뒀다. 스스로 목격한 것만 해도 그 정도니 아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있었던 일을 포함하면 그 수가 상당할 터였다. 잠시 상상해보다 절로 밀려오는 우울함에 카마사키는 한숨을 삼켰다. 애초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해지는 기분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아직은 쌀쌀해진 날씨에 가방에서 저지를 꺼내 입던 카마사키를 향해 기다렸던 사람이 다가왔다. 방금 전에 고백 받은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태연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왔으면 연락을 해야죠. 한참 기다렸네.”

바빠 보여서.”

 

카마사키의 말에 후타쿠치는 아, 봤어요? 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게 예쁜 여자에, 우성 오메가에게 고백 받았음에도 후타쿠치는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보통의 남자라면 성질에 상관없이, 짝이 있더라도 한 번쯤 흔들릴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런 여자의 고백조차 간단하게 무시해버리는 후타쿠치가 카마사키는 신기했다. 뭘까?

 

그건 그렇고, 오늘 영화 보러 가기로 했던 거 안 잊었죠? 빨리 가요.”

 

카마사키가 이상하게 쳐다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핸드폰을 확인하며 재빠르게 앞서가던 후타쿠치가 손짓하며 재촉했다.

 

뭘까? 앞서가는 후타쿠치의 등을 보다 카마사키가 생각했다.

왜 일까? 아무리 내가 먼저 고백했고, 사귀기 시작한 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카마사키는 여전히 후타쿠치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굼벵이에요? 영화 시간 놓치면 안 된다니까!”

, ! 간다고, !”

 

계속되는 후타쿠치의 재촉에 결국 카마사키가 성큼 다가갔다. 어플을 통해 시간표를 확인하던 후타쿠치가 앞으로 3분 뒤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말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버스 정류장을 향해 전력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막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에 맞춰 버스가 왔다. 하교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버스는 자리가 널널했고 두 사람은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핸드폰으로 영화 예고편을 확인하고, 각종 후기를 보다보니 어느새 영화관 근처 정류장에 도착했다. 둘이서 이 영화관에 온 것도 벌써 다섯 손가락을 넘었다. 처음에 어색하게 앉아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자연스럽게 옆에 나란히 앉고 영화를 즐기게 되었다. 영 적응이 안 되지만 영화를 보다 가끔 손도 잡는다. 믿기지 않을 일이다.

 

 

후타쿠치와 카마사키는 사귀고 있다. 놀랍게도 오메가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베타에 평범한 남자인 자신과 후타쿠치가 벌써 사귄 지 3개월이 되었다. 매일 투닥거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두 사람은 잘 지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실은 카마사키에게는 오래된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고백했기로서니, 얘는 왜 나랑 사귀는 거지? 후타쿠치가 왜 자신과 사귀는 지 알 수 없는 게 문제였다.

 

후타쿠치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카마사키가 후타쿠치를 좋아하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카마사키가 2학년이 되고, 후타쿠치가 배구부에 들어왔을 때부터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에게 호감이 있었다. 카마사키는 그 때까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알파도, 오메가도 아닌 평범한 베타였기에 더욱 같은 동성의 남자를 좋아하리라 생각해본 적 없었다. 기본적으로 예쁘고 귀여운 여자가 지나갈 때면 여타 평범한 남자들과 비슷하게 저절로 눈길이 갔고, 비록 소꿉장난 수준이었지만 중학교 때는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후타쿠치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외모가 잘생겼다는 점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그 때는 그냥 자연스레 눈길이 갔고 그러다보니 마음도 갔다. 처음엔 자신이 후타쿠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후타쿠치는 모두의 시선을 끄는 사람이었으니까.

 

후타쿠치는 입학했을 때부터 배구부뿐만 아니라 교내에서도 유명했다. 베타는 느낄 수 없지만 오메가들의 말에 의하면 후타쿠치의 페로몬은 냄새를 맡기만 해도 성적인 쾌감이 오를 정도라고 했고 알파들은 주변에 있기만 해도 위축되는 기분이 든다며 질색했다. 학기 초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몇몇 오메가들이 후타쿠치를 스토커처럼 따라다녀 결국 보다 못한 학교 측에서 후타쿠치에게 페로몬 억제제를 복용하기를 권하는 일도 있었다. 억제제를 복용한 뒤로부터는 그런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드물어지긴 했으나 후타쿠치에게는 여전히 하루가 멀다 하고 고백을 받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우성 알파라는 점을 제외해도 후타쿠치는 모두에게 매력적인 남자였다. 단순히 잘생긴 외모 때문이라고 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에게 있었다.

 

그렇기에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에게 시선이 가는 이유가 단순히 후타쿠치가 눈에 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태 보았던 사람들 중에서 외모가 가장 빼어나진 않더라도 그 특유의 분위기라던가, 남들이 말하는 우성 형질의 기운 때문이라 생각했다. 정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후타쿠치는 카마사키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특별하다는 첫인상에 호감을 가졌던 것도 잠시뿐이었고 후타쿠치가 배구부에 들어오고 며칠이 지나고 난 뒤 카마사키는 절실히 깨달았다.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었기 때문일까, 자신이 남들보다 특별하고 잘났다는 점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후타쿠치는 매사에 제멋대로인 점도 있었고 남을 놀리길 좋아했다. 선배들에게도 거침없이 할 말 다 하고, 오히려 3학년들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려 하마터면 큰 싸움이 일어 날 뻔 했던 일도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카마사키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를 갖고 트집을 잡거나 놀리기를 좋아했다.

 

, 카마사키 씨. 제발.”

?”

근육 자랑하려고 소매 그렇게 걷는 겁니까? 웃기잖아요.”

. 아니거든! 땀이 많이 나서 걷은 거야.”

아직 여름 아니거든요?”

더위를 많이 탄다고!”

 

카마사키가 억울하다는 듯이 해명했지만 후타쿠치는 눈을 갸름하게 뜨고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 카마사키는 재차 열이 솟았다.

 

그래요? ...”

, 진짜. , 근육 자랑 같은 거 아니라니까. 소매가 길어서 덥기도 하고, 블로킹할 때 불편해서 그런 거라고.”

누가 뭐래요? 왜 해명을 하고 그래요. 누가 보면 제가 카마사키 씨한테 뭐라고 나무란 사람처럼 보이겠어요.”

네가 뭐라고 했잖아!”

 

일방적으로 후타쿠치가 시비를 걸면 카마사키는 무시하자고 생각하면서도 나중에는 끝내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 울컥해서 반박하면 후타쿠치는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제가 뭐라고 했나요?’, ‘별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시나?’ 같은 말을 했고, 그 얼굴에 열이 받은 카마사키가 욱하는 것을 시작으로 유치한 말장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언제나 보다 못한 모니와가 아오네를 시켜 말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카마사키가 뭔가를 할 때는 물론이고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도 후타쿠치는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 왔다. 처음엔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서 일부러 장난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에게 일부러 찾아와 말을 거는 것에 초반에는 이상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 열 받게 하는 말을 해도 다 받아주고 웃으며 넘겼었다. 그러나 점점 횟수가 잦아지고 정도가 심해지는 행동에 카마사키는 결국 후타쿠치를 그냥 받아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다 받아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카마사키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인내심이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후타쿠치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면 받아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있었다. 남들이 어떻게 보는지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로 비춰졌고, 그런 카마사키와 후타쿠치를 몇몇 3학년들은 좋게 보지 않았다. 후타쿠치가 처음 배구부에 들어왔을 때부터 후타쿠치를 고깝게 생각하던 사람들이었다. 몇몇 알파들은 안 그런 척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비뚤어진 질투심과 열등감을 느꼈다. 하루는 3학년 알파 선배들 중 한 명이 카마사키를 불러냈다.

 

카마사키. 너 후타쿠치 너무 받아주는 것 아니냐?”

?”

아무리 그래도 네가 선배인데, 그렇게 선배한테 막 대하는 행동은 아니지. 우성 알파라고 베타한테 함부로 그러는 걸로밖에 안 보이고.”

아뇨, 걔가 딱히 그러려고 그런 건,”

 

그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카마사키의 말을 끊었다.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멍청이를 보는 눈빛이었다.

 

네가 베타라서 모르나본데, 우성은 원래 열성 알파든 오메가든 베타든 깔보는 새끼들이야.”

“......”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 말 들어라, ?”

 

그리곤 그는 카마사키에게 욱했던 것이 신경 쓰였는지, 아니면 나이 어린 후배를 뒷담화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갔다. 딱히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3학년 알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베타인 카마사키는 애초에 우성과 열성의 형질 차이를 실감하지 못했지만 알파와 오메가들은 달랐다. 나중에 스치듯 그와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꺼내니 알파인 모니와는 질색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 너는 모르겠지만 후타쿠치는 좀 그렇지. 내가 딱히 열성은 아닌데도 후타쿠치가 억제제 깜빡하고 안 먹고 온 날에는 다가가기가 힘들더라.”

그러냐?”

그냥 그건 본능적인거야. 자연스럽게 나쁜 마음이 드는 거라고.”

그래도 너도 알고 있잖아. 걔가 좀 재수 없게 말하긴 해도 나쁜 애는 아닌 거.”

나도 알지. 근데 나나 너처럼 다른 선배들이나 동기들, 후배들도 후타쿠치를 이해해주지는 않는 게 문제라는거야.”

“...그런가?”

 

모니와는 어깨를 으쓱하곤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딱히 그 선배들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후타쿠치한테 적당히 선을 그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

적당히 받아주기 힘든데.”

너가 아니면 걔를 누가 받아줘.”

 

네가 받아주면 어떠냐는 말에 모니와의 얼굴이 하얘졌다. 나쁜 애가 아닌걸 알지만 친해지긴 힘들다는 말에 카마사키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페로몬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신의 처지가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카마사키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오메가나 알파였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후타쿠치를 멀리했을지 모른다. 안 그래도 삐뚤어진 놈인데 그 성질 받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하고 생각하니 후타쿠치의 처지가 좀 불쌍해졌다. 동시에 헛웃음이 났다. 우성 알파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밖에 없을 거다.

 

고민하던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와 적정한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다. 후타쿠치 성격 상 솔직하게 있었던 일을 말하면 난리를 피울 것이 분명했고, 자기 선에서 조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희미하게 달라진 카마사키의 태도에 후타쿠치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뭐 잘못 먹었어요?”

“... 아니거든. 마침 잘 됐다. 너한테 할 말 있는데.”

뭐에요.”

 

막상 단도직입적으로 거리를 두자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일단 말을 꺼냈으니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후타쿠치의 눈빛에 자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답지 않게 우물쭈물하지 말고 빨리 말해요. 저 바빠요.”

연습 다 끝났는데 뭐가 바쁘냐. 아니,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카마사키는 큼큼, 목을 다듬고 괜히 주먹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침묵이 길어지자 후타쿠치의 눈썹이 점점 찌푸려지는 모습이 보였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에 카마사키가 말했다.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날 선배답게 대해줬으면 해.”

예에?”

 

카마사키의 말에 후타쿠치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묘해지는 표정에 카마사키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한 살 차이이긴 해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고... , 점점 네가 날 막 대하는 것 같거든.”

... 그래서요?”

그러니까 선후배 사이니까 조금의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 그래요? 대수롭지 않은 듯 한 후타쿠치의 대답에 카마사키의 눈가가 움찔거렸다. 저 특유의 말을 늘이는 말투. 알게 된 지 오래 되진 않았지만 후타쿠치의 버릇 중 하나였다. 후타쿠치는 종종 마음에 안 내키는 대답을 해야 할 때나, 사이가 나쁜 선배들 앞에서 저런 말투를 썼다.

 

그러니까 카마사키 선배말은,”

...”

고작 한 살 많지만 선배취급 받고 싶다?”

, 말을 해도...”

이제 와서?”

 

받아줄 땐 언제고 어이없네. 후타쿠치는 대놓고 카마사키를 비아냥거렸다. 카마사키는 자신의 말에 후타쿠치가 이렇게까지 반응할 줄 몰랐기에 당황스러웠다. 아니, 애초에 후타쿠치는 이상하게 자신에게만 막 대했지 다른 애들이나 선배들한테는 기본적인 선배 취급을 해 주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아주 기본적인 예의는 지켰기에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다. 피식거리며 헛웃음을 짓던 후타쿠치의 얼굴에 점점 표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얼굴을 보자 카마사키는 뭐가 뭔지는 몰라도 자신이 실수했구나 싶었다.

 

저기 후타쿠치,”

아 좋아요.”

?”

 

후타쿠치는 건방지고 가끔 재수 없는 말을 해도, 나쁜 애는 아니었다. 오히려 툭툭 시비를 거는 일에 욱하면서도 탁구공처럼 받아치는 말장난이 유치하고 재밌기도 했다. 가끔 서로 말도 안 되는 말이 나오면 서로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면서 장난치기도 했다. 남들은 후타쿠치가 어렵고 다가가기 힘들다고 하지만 카마사키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후타쿠치가 봐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좋다고요. 이제부터 카마사키 선배, 선배 취급 해드릴게요.”

후타쿠치. 내 말은...”

거리를 두자고요?”

, 잠깐 내 말을,”

 

카마사키는 순간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느낌을 받았다. 잠시 석고상이 된 것처럼 몸이 굳었다. 꼼짝도 못하고 후타쿠치의 표정이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까지 봐왔던 후타쿠치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후타쿠치가 기계적인 웃음을 지었다.

 

지금까지 건방지게 굴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나는...”

카마사키 선배.”

 

후타쿠치는 그 말을 하곤 뭐라 말을 잇지 못하는 카마사키를 두고 뒤돌아 걸어갔다. 성큼성큼 걷는 걸음걸이에 아까 보았던 표정에서 느낄 수 없었던 분노가 느껴졌다. 멀어지는 후타쿠치의 뒷모습을 차마 숨도 쉬지 못하고 바라보던 카마사키가 숨을 토했다. 뭔가 잘못 되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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