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고작 3개월이었다. 작년 겨울, 2학년의 끝 무렵에 사귀기 시작해 올해 3월까지 왔다. 이 정도까지 왔다는 것에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더 일찍 끝을 냈어야 했다고 아쉬워해야 할까. 후타쿠치에게 일방적으로 헤어지자 말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내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잘한 것일까 하고. 이렇게 끝나는 게 괜찮을까, 하고. 걸어가는 동안 끝까지 다 버리지 못한 미련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야 했다.

 

카마사키는 그날 밤 남몰래 방에 틀어박혀 베개를 적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후회했다. 어차피 알고 시작한 거 왜 새삼스레, 혼자 상처받아서 결국 후타쿠치와 헤어졌냐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몰랐던 거 아니었잖아. 다 알고 있었잖아. 멋대로 기대한 건 네가 아니었냐고, 마음 단단히 먹었던 주제에 얼마 못 가서 결국 포기하는 거냐고 자책했다. 이때껏 힘든 일들 다 참아 왔으면서 왜 지금 와서.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외면하려 했던 후타쿠치의 진심은 어떻게든, 언제가 되었든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그야말로 가슴이 무너질 듯 아플 게 분명해서 무턱대고 피했었지만 애초에 피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알량한 기대를 품은 게 잘못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내가 먼저 좋아한다는 이유로 상대방도 같은 마음이 될 수 없는데 말이다. 혹시, 하는 기대를 품는 게 아니었는데 실수였다. 한 조각의 의미도 담겨 있지 않은 스킨십에 설레는 게 아니었는데.

 

됐어. 이제 와 후회해봤자 다 지나간 일이다, 카마사키.”

 

카마사키는 혼잣말을 하며 합리화했다. 어차피 끝났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한참을 베개에 코를 박고 훌쩍거리다 카마사키는 울어서 부은 눈을 비비다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대로 잤다간 내일 아침에 벌에 쏘인 사람처럼 얼굴이 팅팅 부을 게 분명했다. 힘내자며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찬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기분인데. 몇 번을 더 찬물로 세수하다 거울을 보니 차마 눈뜨고 못 봐줄 얼굴이 있었다.

 

, 진짜 못생겼어.”

 

[, 진짜 못생겼어. 카마사키 씨 지금 얼굴이 어떤지 알아요?]

 

언제였지, 저 말을 했던 게. 자신을 두고 못생겼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후타쿠치였지만 그 때의 상황은 머리에 박힌 듯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백했던 그 날, 어딘지도 모르는 버스 정류장에서 언제나처럼 시비를 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키스를 했었다. 차마 눈을 감지도 못하고 굳어 있던 눈을 가려주었던 감각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씨발.”

 

카마사키는 수도꼭지를 틀어 콸콸 쏟아지는 찬 물로 거칠게 세수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어느새 얼굴이며 손이며 빨갛게 달아올라 따가웠지만 카마사키는 멈추지 않았다. 피부에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그러길 반복하다 조용히 세면대 위에 무너졌다. 격하게 숨을 토해내는 등이 급하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물이 콸콸 쏟아지며 세면대 위를 빙글빙글 돌고 사라지길 반복하는데 그 거친 표면 위에 조금씩 눈물이 떨어졌다. , 똑 하고 떨어지자마자 바로 물결에 휩싸여 사라지고 말았다.

 

씨발, 진짜... 진짜 개새끼...”

 

사정없이 흐르는 눈물을 카마사키가 손으로 훔쳤다. 울어서 그런지, 세수를 해서 그런지 흠뻑 젖은 눈가를 계속 닦아 내었지만 좀처럼 눈물은 멎지 않았다. 카마사키는 결국 포기하고 침대 위로 기어 들어갔다. 젖은 베개를 뒤집어 베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덮었다.

 

개새끼, 마음이 없으면 처음부터 여지를 주지 말았어야지. 사귀자는 헛소리 따위 하지 말았어야지.

 

 

 

 

점심시간에 만난 모니와가 카마사키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무슨 일 있어? 얼굴이 말이 아니잖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차마 카마사키의 얼굴에 손도 못 대고 모니와가 허둥지둥 거렸다.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마.”

, 경 안 쓸 리가 있어?! 눈이며 얼굴이며 다... 이러고 학교를 어떻게 왔어...”

아무래도 아니야?”

...”

 

차가운 거라도 얼굴에 대고 있을래? 모니와가 당장이라도 캔음료를 사올 기세로 말했다. 모니와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인가 싶어 카마사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모니와를 만나기 전에 교실에서 한차례 듣고 오긴 했다. 엄청난 얼굴로 교실에 들어 온 카마사키를 두고 남자애들은 낄낄거리며 웃어댔고, 여자애들 중 두엇은 눈을 돌려 버렸었다. 카마사키는 창피해서 내내 고개를 들지 않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하루 종일 그럴 수는 없었다.

 

. 이거 얼굴에 대고 있어.”

고맙다.”

 

모니와가 건네 준 캔을 들고 카마사키가 가장 부은 눈가를 문질렀다. 조용히 눈을 감고 캔을 굴리는 카마사키를 모니와가 쳐다보았다. 카마사키를 알게 된 이후부터 한 번도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가장 싫어하는 녀석이었다. 모니와가 아는 카마사키는 가장 좋아하는 배구를 하면서도 시합에서 졌다는 이유로 우는 일도 없었고, 중학교 때 처음 사귄 여자애한테 가차 없이 차일 때조차도 머쓱하게 웃어넘기는 성격이었다.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는데. 모니와는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망설였다. 물어봐야 하나, 생각하는데 카마사키가 말했다.

 

나 오늘 연습 못 갈 것 같은데.”

? 어어... ?!”

꼴이 말도 아니기도 하고. 머리가 좀 아픈 것 같기도 하네.”

많이 아파? 네가 연습을 쉴 정도로 아픈 거야? ? 병원이라도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모니와는 카마사키의 이마를 짚어 열이 있나 확인해보았다. 카마사키가 자진해서 연습을 빠진다고 하다니 심각하게 아픈가 싶었던 것이다. 카마사키는 모니와의 팔을 치우며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카마사키는 모니와에게 좀 부탁할게, 라고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니와는 그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카마사키가 지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후타쿠치는 체육관에 들어오자마자 카마사키를 찾았다. 어디에 있든 당장이라도 끌고 나가서 어제의 일을 다시 물어볼 셈이었다. 어제부터 계속 생각해 봤지만 도저히 헤어지자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붙잡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헤어지는 일만큼은 막고 싶었다. 애초에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카마사키와 사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이상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카마사키 씨 어디 있어요? 안 보이네.”

, 카마사키는 오늘 연습 참여 안 해.”

?”

 

모니와는 오늘 연습할 메뉴를 살펴보면서 말했다. 잠시, 오늘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후타쿠치에게 말해줄까 말까 고민하는데 후타쿠치가 씩씩거리며 왜요?! 하며 모니와를 다그쳤다. , 왜 나한테 화내는 거야. 갑작스레 뿜어져 나온 우성 알파의 페로몬에 모니와의 몸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제야 후타쿠치는 자신의 페로몬이 흘러나온 것을 깨닫고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나도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연습 못 가겠다고 그러더라.”

...! , 유도 없이 무작정 보내주면 어떻게 해요?!”

 

, 진짜. 후타쿠치가 머리를 헤집으며 씩씩거렸다. 당장이라도 아까처럼 페로몬이 흘러나올 듯 위태로웠다. 모니와는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요즘 둘이 친해보였으니까 혹시 후타쿠치라면 알지 않을까.

 

혹시 어제 카마사키 무슨 일 있었어?”

?”

아까 점심시간에 만났는데... 어제 엄청나게 울었나 보던데. 얼굴이 팅팅 부어가지고 말이 아니더라고.”

“... 울어요?”

. 뭐 아는 거 없어? 둘이 요즘 같이 다니잖아.”

 

후타쿠치? 모니와가 이름을 불렀지만 후타쿠치는 멍하니 인상을 찌푸린 채 말이 없었다. 가만히 서 있다가 후타쿠치가 대뜸 모니와의 어깨를 턱 잡았다. 모니와 씨~, 하며 말하는 말투가 영 불안했다.

 

, ?”

제가 오늘 배가 좀 아파서 연습을 못 할 것 같네요.”

? , 너 방금 전까지만 해도 팔팔하던 애가 뭘...”

배가 아프다니까요? 제가 얼마나 아픈지 진단서라도 떼 와야 믿어주실 거예요? ? 카마사키 씨는 그냥 보내줬으면서 아픈 저는 기어코 연습해야 한다, 이거에요?”

아니, 아니 너는 안 아파 보이잖,”

!!! , 배 아파!!! 배 아파 죽겠네!!!”

 

후타쿠치가 모니와의 앞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큰소리를 치며 바닥을 뒹굴었다. 버럭버럭 내지르는 소리에 주변에서 애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후타쿠치는 바닥에 웅크리고 은근슬쩍 모니와의 다리를 퍽, 퍽 하고 찼다.

 

, 야 후타쿠치! , 그만해. 악, 아파!! 알았어, 알았어! 보내 줄게...!”

 

그 소리에 후타쿠치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일어났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하고 뻔뻔하게 돌아서는 후타쿠치를 보며 모니와는 이마를 짚었다. 후타쿠치 아프데요? 하고 물어오는 후배에게 모니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후타쿠치한테 휩쓸렸던 친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후타쿠치는 그 길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카마사키의 집으로 향했다. 사귀는 동안 몇 번이고 함께 내렸던 정류장에 도착해 이제는 익숙한 길을 따라 걸었다. 절로 빨라지는 걸음에 금세 카마사키의 집에 도착했다. 그대로 벨을 울리려던 후타쿠치의 손이 잠깐 멈칫했다. 어제 울었다는 말에 다른 생각을 할 새 없이 무작정 와버렸지만 잠깐 망설여졌다. 다음 날 얼굴이 팅팅 부을 정도로 울었다면 얼마나 울어댔던 거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내가 찾아가도 되는 걸까, 후타쿠치는 잠시 시간을 재다 벨을 눌렀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기엔 지금 마음에 걸리는 한 사람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그 궁금증이 너무 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구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카마사키 씨였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둔 터라 카마사키네 집엔 좀처럼 부모님이 계신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부모님이었다면 평범한 후배인 척 하고 쉽게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저에요. 문 열어요.”

 

인터폰 너머로 카마사키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언뜻 들렸다. 망설이고 있는 듯 숨소리만 들리는데 얼마 안 가 문이 열렸다. 들어오라는 말 한 마디 없이 인터폰이 끊겼다. 열린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현관에 카마사키가 서 있었다. 과연 모니와 선배의 말대로 얼굴 여기저기 붇지 않은 곳이 없었다. 후타쿠치가 빤히 보고 있는 걸 눈치 채고 카마사키가 손바닥으로 한 쪽 얼굴을 가렸다.

 

왜 왔냐? 연습복은 또 왜 입고 왔어.”

 

생각보다 카마사키의 말투가 덤덤했다. 창피한 듯 얼굴을 가리고 후타쿠치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그런 카마사키를 잠시 보다 말없이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연습 째고 왔어요.”

. , 연습을 째면 어떻게 해? 빨리 다시 가,”

카마사키 씨도 연습 안 나왔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안 가요.”

 

억지를 부리는 걸로밖에 들리지 않는 말투에 카마사키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곧이어 한숨을 내쉬더니 제 앞에 서 있는 후타쿠치의 등을 밀었다.

 

애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가. 너 이제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되는 1학년 아니야.”

그러는 카마사키 씨는 3학년이거든요. 3학년이라고 이렇게 해이해져도 되는 겁니까?”

나는,”

나는, 뭐요. 뭔데요.”

나는 사정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빠진 거야. 너랑은 경우가 달라.”

무슨 사정? 어제 애인이랑 헤어지기라도 했나 봐요?”

 

등을 떠미는 카마사키의 손길에도 힘을 주며 버티던 후타쿠치가 삐뚤어진 미소를 지었다. 제 등에 놓인 손을 내리 치며 카마사키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진짜인가 봐요? 그래서 충격 받고 연습 빠지신 건가?”

 

마치 제3자의 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후타쿠치는 아무렇지 않게 카마사키의 아픈 곳을 콕콕 찔렀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냐고, 솟아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카마사키가 후타쿠치의 어깨를 떠밀었다. 두어 걸음 뒷걸음친 후타쿠치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졌다. 후타쿠치가 뭐라 쏘아 붙이려는데 카마사키가 더 빨랐다.

 

맞아. 나 어제 차였고, 당분간 네 얼굴 보고 싶지 않다.”

“......”

알겠으면 이제 가.”

 

개새끼. 진짜 개새끼.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와서,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후타쿠치의 언행에 카마사키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후타쿠치가 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위층으로 오르려는데 뒤에서 탁탁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래, 네가 그냥 갈 놈이 아니지. 좋아하는 사람이고 뭐고, 하루 종일 기분 잡치는데 한 소리 하려고 카마사키가 뒤를 돌았다.

 

...”

날 좋아한다면서요. 이거밖에 안돼요?”

 

당황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카마사키의 앞에서 후타쿠치가 씩씩거렸다. 당신이 뭔데 나한테 헤어지겠다는 말을 해. 나를 먼저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은 당신이었으면서. 어떻게 감히 나한테.

 

, 그리고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내가 무슨 순수 혈통개도 아니고, 우성 오메가만 찾아서 사귀고 결혼하는 사람 아니거든요?”

, 잠깐...”

당신 베타라고 그냥, 그냥 사귄 것도 아니고. 난 당신 베타든 오메가든 상관 안 하는데 왜...!”

알았어, 그러니까 잠깐...”

날 좋아해서 사귄 거 아니에요?”

 

후타쿠치가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말했다. 분해 죽겠다는 듯 얼굴 한 가득 인상을 찌푸리고 카마사키한테 대답을 재촉했다. 빨리 안 말해요? 장난쳐? 가히 7살 어린애라고 봐도 좋을 만큼 후타쿠치는 떼를 썼다.

 

빨리 대답해요.”

“......”

어서 대답하,”

... 날 좋아해?”

“......”

날 좋아해서 사귄 거야?”

 

카마사키는 어제의 질문을 다시금 반복했다. 곧 죽어도 후타쿠치의 제대로 된 대답을 들어야 했다. 더 이상 피하고 싶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지만 카마사키는 그조차 기다렸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물어보길 잘한 걸까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지만 모른 척 했다. 진짜,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병신 같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저 얼굴에 조금은 기대하면 안 되는 걸까. 카마사키의 초조함을 아는지 후타쿠치는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대답했다.

 

나 카마사키 씨랑 그냥 사귄 거 아니에요.”

 

난 왜 언제나 이렇게, 너에게 쉽게 넘어가주는 걸까. 손해 보는 일인 게 분명한데도 어째서 늘 너의 건방진 행동과 말투를 다 받아주고, 가볍게 다가오는 스킨십을 뿌리치지 못하고. 날 그렇게 아프게 만들었던 너를, 난 왜 또 받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지. 하물며 나를 좋아한다는 그 직접적인 말을 해준 것도 아닌데.

 

카마사키는 눈물로 뒤범벅된 후타쿠치의 얼굴을 손으로 닦았다. 울면서도 끝까지 분하다는 눈초리로 노려보는 바람에 새빨갛게 충혈 된 눈을 그대로 덮어버렸다. 제 얼굴을 덮은 손을 후타쿠치가 감쌌다.

 

카마사키 씨 아까 진짜 못생겼어요. 그러고 어떻게 학교까지 올 생각을 다 했지.”

 

후타쿠치는 제 눈도 팅팅 부어오른 주제에 끝까지 카마사키를 놀렸다. 차마 눈을 뜨지 못하겠는지 눈을 꼭 감은 후타쿠치를 보며 카마사키가 피식 웃었다. 그러는 너야말로, 봐 줄만한 건 그나마 잘생긴 얼굴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꼴사납게 부어 있다는 주제에. 누가 후타쿠치의 저런 얼굴을 본 적이 있을까. 남의 앞에서 항상 거만한 태도를 유지하고, 사람들의 우위에 서서 한 치의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는 알파가 평범한 베타의 앞에서 질질 짜다니.

 

후타쿠치가 눈을 덮은 카마사키의 손을 슬쩍 치우더니 실눈을 뜨고 카마사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낄낄거리더니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바보 같은 얼굴.”

,”

그렇게 내가 좋아요?”

 

그러는 너도 그러고 있으니 정말 못생겼다. 너야말로 그렇게 내가 좋으냐고 묻는 대신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뒷목을 끌어 젖은 얼굴을 품에 안았다. 어린아이처럼 순순히 끌려온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꼭 붙잡아왔다. 그리고는 카마사키에게 나를 빨리 대답하라고 웅얼거렸다. 카마사키가 뜸을 들이며 대답해주지 않자 등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면서 재촉했다.

 

좋아한다고 귓가에 작게 말해주자 후타쿠치가 그제야 흥, 하고 코웃음 쳤다. 그게 마치 나도, 라고 대답하는 것 같아 카마사키는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서로에게 서로가 서툰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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