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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11.07 [아카보쿠] 올가미
  3. 2016.11.07 [우시이와] 하나하키 병
  4. 2016.11.07 [오이이와] 하나하키 병
  5. 2016.11.07 [마츠이와] 호출

[후타카마] 마음의 소리

2016. 11. 11. 00:36 from

[후타카마] 마음의 소리

 

알파오메가AU

 

 

 

 

-너무 힘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카마사키 선배?

 

 

카마사키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가쁘게 움직이느라 벅찬 숨이 터져 나왔다. 후배의 건방진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카마사키는 구석에 놓인 드링크를 집었다. 꼴깍, 선배의 목울대가 연신 오르내리는 것을 후타쿠치는 빤히 쳐다보았다.

 

 

쿨럭, 쿨럭.

 

 

급하게 들이마시다 사례가 걸렸는지 카마사키가 기침을 했고, 후타쿠치는 그런 선배의 등을 토닥여줄 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제 앞에 서 있는 선배의 곳곳에 시선을 두었다. 다른 사람보다 더위를 타는 카마사키는 그만큼 땀도 많이 났다. 시합을 할 때도 수시로 땀을 닦아줘야 할 만큼이었다. 3세트까지 진행된 연습게임은 치열하게 접전을 벌인 끝에 가까스로 2세트를 따낼 수 있었다. 연습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그 상대방이 꽤 실력 있는 학교였고, 무엇보다 3학년의 의지가 대단했다. 꼭 이 시합을 이기겠다는 결심이 표정에 표정과 몸짓에 드러났다.

 

 

선배들은 필사적이었다. 첫 인터하이이며, 마지막으로 전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그들은 평소보다 연습량을 늘리고 후배들을 다그쳤다. 고작 부활동에 이렇게까지 시간을 들이는 선배들의 모습에 몇몇 후배들은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납득하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 1, 2년 동안 몇 차례 기회가 있는 그들과는 달리 3학년은 이번 인터하이를 끝으로 부활동을 그만둔다.

 

 

후타쿠치는 그런 3학년의 심리를 알았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했다. 숱한 시합을 겪으며 승리에 집착하고, 패배에 좌절하는 엿 같은 기분을 후타쿠치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눈앞의 카마사키 선배만큼 절실하게 매달려본 적은 없다. 떠오른 공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떨어지려는 순간을 후타쿠치는 끝까지 열을 다해 쫓지 않았다. 등 뒤엔 그들의 팀원이 있고, 공이 바닥을 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의 포지션에 충실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카마사키 선배는 다르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떠오른 공인 것처럼 열을 다했다. 바보처럼 공을 줍고, 공을 때리고, 공에 맞섰다. 바보 아니야, 그냥 연습게임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지 않나, 후타쿠치는 마음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오메가주제에 알파들의 판에 끼니까 그렇지.

 

 

후타쿠치는 거친 숨소리와 땀냄새, 그리고 옅게 풍기는 오메가 특유의 향기를 맡았다. 열성 오메가라고 했나. 카마사키는 베타에 가까울 정도로 오메가의 성질이 약하다고 들었다. 그뿐 아니라 일반적인 오메가의 외형을 두고 본다면, 어느 누구도 그를 오메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80이 훌쩍 넘는 키,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팔과 다리의 근육과 길고 곧게 뻗은 손가락. 몸의 어디를 만져도 탄탄하게 감겨올 법한 피부는 퍽 보기 좋았지만 그것도 알파의 관점에서 볼 때다. 알파의 밑에 깔리는 오메가가 이렇게 크고, 단단할 필요가 없었다. 하다못해 베타였다면 오메가 특유의 외형과 성질에 빗대어 하나, 하나 손가락질 받지 않았을 것이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가 공공연히 남자 오메가이기 때문에 차별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겠지, 누구도 저 사람을 오메가로서 품어주지 않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형편없는 오메가. 그게 카마사키의 위치였다.

 

 

-필사적으로 해서 이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거다.

 

 

그러나 카마사키는 누구의 앞에서도 당당했다. 팀의 구성원의 대다수가 알파와 베타인 가운데, 매니저를 제외하고 오메가는 카마사키 뿐이었다. 알파와 오메가, 그리고 베타가 공존하는 무리에는 누가 정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지는 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알파의 힘에 굴복하지 않았고 베타의 앞에서 오히려 등을 피고 다녔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곧게 뻗은 등허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바보 같아.

 

 

-, 너는 이해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말이야.

 

 

카마사키는 끝까지 후타쿠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스쳐 지나가며 후타쿠치의 어깨를 독려하듯 움켜쥐었다. 마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후타쿠치가 안쓰럽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스치듯 코 끝에 닿은 향기가 싫지 않았기에 후타쿠치는 부러 발끝을 찼다. 오메가 주제에 저렇게 꼿꼿한 태도를 하면 건드리고 싶다. 꼿꼿한 그 자세가, 단단하게 서 있는 나무 같은 그 모양을 부러트리고 싶은 것이다. 후타쿠치의 시선이 카마사키의 등에서 떠나질 않았다.

 

 

 

후타쿠치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카마사키는 원수라도 만난 것 마냥 사나운 후배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 잘못 한거 있나.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1년 후배인 후타쿠치는 한마디로 자신과 정반대이다. 우성 알파이며, 딱히 죽어라 노력하지 않아도 타고난 운동 신경의 소유자이고, 알아서 주위에서 사람이 몰리는 주인공과 같은 사람이었다. 처음 배구부에 들어 왔을 때부터 좀 재수 없었지. 선배들한테 툭툭 가볍게 말을 던지는 것이나 필사적으로 연습하는 사람을 마치 가엷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카마사키는 입 밖으로 꺼내본 적 없지만 정말 재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후타쿠치가 들어오고 나서 1, 카마사키는 몇 번이나 욱하는 속을 달래야 했다. 본래 성실하고 책임감이 넘치는 성격인 카마사키는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에게 언제나 강하게 의견을 내세우는 편이었다. 그러나 형질의 본능이 그를 막아섰다. 후타쿠치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그건 카마사키 자신이 보통의 오메가들과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였다. 왠만해선 후타쿠치를 상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본능이 말해주었다.

 

 

그러나 카마사키의 바람과는 달리 후타쿠치는 배구부의 어떤 사람들보다 카마사키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틱틱대며 시비를 거는 것은 보통이고, 멀쩡하게 연습하는 카마사키의 옆에 다가와서 자세가 별로고 팔의 위치가 이상하고 트집을 잡았다. 카마사키는 처음부터 그런 후타쿠치의 행동을 무시하려고 했다. 그러냐, 그렇구나. 유도리있게 넘어가려는 카마사키의 인내심은 매일같이 그의 성질을 건드리는 후타쿠치의 공격에 결국 허물어졌다. 너나 잘해! 처음으로 폭발하듯 외친 말에 후타쿠치는 먹잇감을 발견한 족제비처럼 웃었다. 성질 나쁜 웃음에 카마사키는 등 뒤로 오소소 돋아오는 소름을 애써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카마사키가 당당하게 나서도, 강하게 체력을 길러도 그깟 알파의 페로몬 조금에 카마사키가 쌓아온 모든 노력이 바스라진다. 차곡차곡 쌓은 모래성이 밀려들어오는 파도에 순식간에 허물어지듯이 허무해진다. 우성 알파의 페로몬을 처음으로 경험한 그 때, 카마사키는 처음으로 자신이 열성 오메가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열성인 자신조차 페로몬에 휩싸일 정도라면 우성 오메가는 일찍이 정신을 놓고도 남았을 것이다.

 

 

카마사키는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타쿠치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들어서 유독 자신을 걸고넘어지는지. 아직까지 뒤통수가 따갑다. 카마사키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후타쿠치의 시선을 모른 척 하는 것뿐이었다.

 

 

 

 

 

-, 잠깐만.

 

 

앞서 걸어가던 모니와가 멈췄다.

 

 

-왜 그래?

-부실 문 잠갔지? 나 핸드폰 놓고 왔나 본데.

-같이 가줄까?

 

 

모니와가 가방을 뒤져 부실 열쇠를 건넸다. 아니야, 먼저 들어가라! 카마사키는 모니와를 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핸드폰을 딱히 가방에서 꺼낸 적이 없는데. 아마 옷을 갈아입다가 락커나 바닥에 떨어트렸나 싶어 카마사키는 걸음을 서둘렀다. 인터하이를 앞두고 모두 최대한 늦게까지 남아 연습을 했기에 시간이 벌써 9시가 넘었다. 딱히 이 시간까지 학교에 남아있을 사람이 없기에 학교 안은 어둡고 적막했다. , 가볍게 소름이 돋아 몸이 떨려왔다. 걸음을 서두른 덕분에 금방 부실에 도착했다. 빨리 찾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카마사키는 부실 불을 키지도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충 락커를 확인하면 바로 핸드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대중으로 더듬어 확인해 본 락커 안에는 핸드폰이 없었다. 어라... 카마사키는 몇 차례 더 확인해보다가 바닥에 떨어졌나 싶어 자세를 낮췄다. 없어, 없는데...

 

 

철컥, 그리고 문이 잠겼다.

 

 

-... 무슨?

 

 

불을 켜지 않아 어둑한 부실이지만, 창문 너머 달빛에 어느 정도 사물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부실 문이 있을 위치에 누군가 서 있었다. 카마사키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아주 가끔, 학교에 도둑이 든 적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운동부 부실에 도둑이 훔쳐갈 만한 것도 없을 텐데, 하고 카마사키가 의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던 중, 냄새가 났다.

 

 

-.

 

 

오메가라면 피할 수 없는 냄새. 알파의 페로몬이 짙게 풍겼다. 카마사키는 한 번도 이렇게 숨이 막힐 정도의 페로몬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지며 무릎이 꺾였다. 손이 달달 떨렸고 시선이 흔들렸다. 탈력감을 이기려 카마사키가 팔 다리를 휘저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알파의 페로몬을 직격으로 맡은 오메가에게 자신의 몸을 통제할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 ..., 무슨...

 

 

호흡이 달렸다. 색색거리며 숨을 내쉬는 카마사키에게 검은 인영이 다가왔다. 조용한 걸음걸이에 카마사키는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지도 눈치 채지 못했다. 누군가 머리를 세차게 뒤흔든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도 모를 만큼 페로몬에 발정하는 카마사키의 얼굴에 손이 닿았다. 조심스레 턱을 감싸오는 조심스러운 손길에도 카마사키는 발끝이 찌릿했다. 아아,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이미 단어를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직접 닿은 알파의 손에서부터 점차 쾌락이 피었다. 멍한 정신에 카마사키는 깨달았다. 몽정을 할 때도 젖어본 적이 없었던, 비부가 젖었다.

 

 

-하아, , , 누구?

 

 

어둑한 사위에 카마사키의 팔이 허우적거렸다. 깊은 심해에 빠진 사람처럼 애처로운 몸짓이었다. 후타쿠치는 가볍게 그의 손목을 쥐었다. 언제나 단단하게 느껴졌던 벽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때리고 부숴도 금조차 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벽이 사실은 작은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벽이었던 것 같다. 후타쿠치는 열에 들떠 뜨거운 숨을 내뱉는 카마사키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당신은 오메가지. 알파의 페로몬에 헐떡거리며 발정하는 오메가.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숨이 닿아올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알아보고 있는 것일까. 그저 알파의 페로몬에 취해 나에게 매달리는 것인가. 카마사키가 부르르 몸을 떨며 후타쿠치에게 다가왔다. 땀에 젖은 이마가 목에 닿았다. 평소보다 들뜬 숨소리가 적막한 부실 안을 채워 후타쿠치의 귀에 흘러 들어왔다.

 

 

후타쿠치는 항상 카마사키를 어떻게든 하고 싶었다. 모른 척 하는 것이 뻔히 드러나는 얼굴을 억지로 돌리고 싶었고, 어색하게 굳은 입가를 만지고 싶었다. 나를 의식하는 것이 뻔한데, 왜 나를 보지 않는 것인지.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왜 저 사람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인지, 후타쿠치는 항상 이해할 수 없었다. 카마사키 선배, 카마사키 상, 카마사키, 야스시, 당신.

 

 

살려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쳐버릴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살려줘.

 

 

후타쿠치는 정신없이 매달려오는 카마사키의 몸을 껴안았다. 땀이 배인 목가가 촉촉했다. 언제나 카마사키가 자신을 스쳐 지나갈 때에야 희미하게 맡을 수 있던 카마사키의 페로몬 냄새가 났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목에 코를 갖다 대고 한껏 숨을 들이 마시고, 내쉬었다. 가장 진하게 채취를 맡을 수 있는 곳에서야 카마사키의 페로몬을 온전히 맡을 수 있었다. 쾌감을 자극하는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지지만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카마사키 선배의 페로몬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카마사키는 달랐다. 카마사키가 지금 매달리는 상대는 굳이 자신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페로몬에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나를 봐. 그저 페로몬 때문에, 한 사람의 알파로서의 나를 보지 마.

후타쿠치 켄지인 나를 봐.

 

 

오메가 주제에. 후타쿠치는 매달리는 카마사키를 탓하면서도 손길을 거두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보는데 왜 당신은 나를 보지 않나. 빌어먹을 페로몬. 후타쿠치는 처음으로 자신의 형질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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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05500 :

[아카보쿠] 올가미

2016. 11. 7. 17:59 from

[아카보쿠] 올가미

 

 

 

아카아시는 최근 보쿠토 선배가 신경쓰인다. 원래도 텐션이 쉽게 오르락 내리락하는 선배이기에 다른 선수들보다 관심이 필요한 상대이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보쿠토 선배에게 눈길이 간다.


"헤이헤이헤이-! 완전 깔끔하게 들어갔어! 봤어, 아카아시?!"

"네, 보쿠토 선배."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등에 팔을 두르고 떠들썩하게 말을 걸더니 칭찬 받아 기쁜듯 어깨를 들썩였다. 덩달아 아카아시의 어깨에 보쿠토의 어깨가 닿는다. 아카아시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보쿠토와의 거리를 좁혔다. 땀에 젖은,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리다.


연습이 끝난 뒤, 자율연습을 남겨둔 때 갑자기 2학년 중 한 명이 보쿠토에게 다가갔다. 주전은 아니지만 꽤나 열심히 하는 부원이라서 연습을 같이 하려나 했다.


"저, 죄송한데 보쿠토 선배. 같은 반 여자애한테 부탁받아서요..."

"우왓? 고마워! 아, 고맙다고 전해줘!"


후배는 자기가 건네는 선물도 아닌데 인사를 받자 쑥스러워하며 연습 열심히 하세요! 하며 돌아갔다. 보쿠토는 후배가 건넨(정확히는 후배의 반 친구가 준) 작은 종이봉투를 흔들거렸다. 아카아시와 눈이 마주치자 싱글벙글 웃으며 아카아시!하며 다가온다.


"이것봐! 나 선물 받았어, 짱이지!"

"...네. 그런데 오늘은 연습 안하시나봐요?"

"앗! 아냐, 지금부터 할거야. 이거 두고..."


보쿠토는 종이봉투를 둘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손에서 봉투를 가져갔다. 벽 가까이에 놓인 물병들 사이에 봉투를 툭하고 내려놓았다.


"됐죠? 가요, 보쿠토 선배."

"응! 토스 마구마구 올려줘, 아카아시!"


네, 하고 대답한 아카아시는 흘끗 바닥에 놓인 보쿠토의 종이봉투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여자애가 준 선물이라, 아카아시는 왠지 보쿠토가 여자들에게 저런 선물을 받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면 얼마나 안다고 선물을 주는거지? 보쿠토 선배가 부담스러워 할텐데.


아카아시는 사실, 보쿠토 선배가 선물을 받는걸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고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괜히 기분이 나빴다. 보쿠토 선배는 누가 주는지도 모르면서 왜 받는거지.


그리고 아카아시는 왜 자신이 이렇게 기분이 나쁘고, 최근들어 보쿠토 선배에게 평소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이유를 알아냈다. 모든 연습이 끝난 뒤, 부원들이 일찍이 돌아간 탈의실에서였다. 주장과 부주장이기에 체육관과 탈의실 문을 잠가야 했기에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대부분 가장 늦게까지 학교에 남았다. 물론 모든 정리와 문단속 등 총괄적인 관리는 부주장인 아카아시의 몫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보쿠토가 앗, 하며 아카아시를 돌아봤다.


"종이봉투 놓고 온 것 같아!"


그 작은 종이봉투를 체육관에 놓고 온 것이다. 아카아시는 옷 다 갈아입고 같이 가죠, 라고 말하며 옷을 마저 갈아 입었다. 손이 빠른 아카아시와 달리 보쿠토는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옷을 갈아입는건 느리지 않지만 벗어놓은 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기에 사물함과 가방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카아시는 땀에 젖어 차갑게 식은 보쿠토의 옷을 들어 대충 접었다. 어짜피 가서 빨 옷이다.


"종이봉투에 뭐 들어있을까나?"


기대된다는 어투의 말이 거슬렸다. 뭐가 되었던 그게 중요합니까? 라는 말이 입에 맴돌았다. 


"헉! 혹시..."

"예?"


바지를 갈아입다 말고 보쿠토는 눈을 동그랗게 뜬채 아카아시를 바라봤다. 


"혹시 러브레터라던가..."

"...에... 러브레터..."

"나 고백받는거야??! 아카아시! 나 고백받아?"

"...그걸 저한테 묻는겁니까?"


듣기에 따라 차갑게 느껴지는 말투였지만, 보쿠토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워낙에 눈치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와 별개로 아카아시의 냉정한 어조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오히려 아카아시는 스스로의 발언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보쿠토 선배에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살짝 돌아본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뒷통수를 바라보다, 보쿠토의 목이 살짝 발그래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슬쩍 올라간 광대를 보아하니 분명 웃고 있는게 분명했다.


"고백받으면 어쩌시려고요?"

"에? 그야... 잘 모르겠는데."

"...... 모르겠다고요?"


보쿠토는 바닥에 앉아 레그슬리브를 벗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조금 기대에 들떠있는 것 같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귀여운 애라면 사귈 수 있겠지?"

"헤에, 귀여운 애라면?"

"응! 한번도 사귀어본 적 없는데, 한번쯤은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보쿠토는 드러난 종아리와 허벅지를 마사지하면서 실실 웃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벗어놓은 레그슬리브를 돌돌 말아 보쿠토의 가방에 넣고 바지를 벗으려는 보쿠토의 종아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보쿠토가 고개를 들자 아카아시는 마사지 해드리겠다며 종아리를 주물렀다. 보기보다 손이 작은 보쿠토와는 다르게 아카아시의 손은 꽤 컸다. 배구부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크기의 손은 쭉쭉 뻗은 학의 다리와 같이 섬세하고 가늘었다. 그러나 꾹꾹 종아리를 주무르자 드러나는 손등의 혈관은 남성임을 보여주어, 그 간극이 컸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펼쳐 보았다. 아카아시와는 이미지가 다른 손이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종아리를 마사지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카아시가 무릎 뒤의 파인 곳을 둥글게 누르고 돌리자 보쿠토는 다리를 움찔거렸다.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만져진 적이 없는 곳은, 원래도 예민했지만 아카아시의 손에 더 예민함을 느껴버렸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밀려고 했지만 아카아시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보쿠토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보쿠토 선배."

"응. 아카아시 이제 괜찮아, 그만해."


아카아시는 대답 대신 보쿠토의 허벅지로 손을 올렸다. 쓸어올리듯 이어지는 손길에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당황스럽게 쳐다 봤지만 아카아시는 조용히 허벅지를 주물거렸다. 아카아시, 이상하니까 이제 그만...


보쿠토가 다리를 뒤척였지만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다리에 놓인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힘을 주어 보쿠토의 다리를 자기 쪽으로 이끌었다. 아카아시가 다리를 마사지해주느라 보쿠토의 다리 사이에 있었기에 어쩐지 모양새가 이상했다. 보쿠토의 허벅지는 아카아시의 팔에 둘려진 채 아카아시의 허리깨에 있고, 자세가 무너져 똑바로 앉을 수가 없었다.


"아카아시, 비켜."


보쿠토는 다리에 힘을 주어 아카아시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불편한 자세때문에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아카아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끙끙대는 보쿠토의 모습은 아카아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쿠토가 챙김을 받는 존재라고는 해도 아카아시와 보쿠토 사이에는 선배와 후배, 3학년과 2학년, 1살 차이라는 나이 차가 있었다. 아카아시가 어떻게도 좁힐 수 없던 그 차이가 왠지 지금 좁혀진 것 같았다.


사실 아카아시는 아까부터 왠지 자신 앞에 있는 선배가 못마땅했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애를 상대로 사귀는 상상따위를 하다니, 괘씸하다. 작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해 배구부에 들어온 뒤, 그리고 보쿠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자신이 곁에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귀찮게 했던 이 선배가 이제와서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려고 한다니 참을 수 없었다. 아카아시는 무엇에 기분 나쁜지도 모르고 보쿠토에 날을 세웠다.


이 바보같이 단순한 선배는 진짜로 그 알지도 못하는, 선물조차 남에게 떠미는 여자와 사귈 수도 있다. 그만큼 생각이 얕고 앞일따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해보자는 사람이다. 그 결과가 나중에 어떻게 되던,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보쿠토 선배."

"응, 아카아시. 이제 비키라니까...?"


보쿠토는 눈 앞의 후배가 낯설다. 은근하게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길이 자꾸 신경쓰이고 얼른 아카아시가 손을 떼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런 보쿠토의 희망사항과는 반대로 아카아시의 손은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짧게 밀려 올라간 바지 안으로 슬쩍 침범해왔다. 아카아시! 보쿠토가 놀라 양 손으로 아카아시의 어깨를 밀었다.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에, 그게 그런 의미가 되는건가...? 그보다 아카아시 손..."


아카아시는 허리에 둘러져 있던 보쿠토의 허벅지를 확 잡아 당겼다.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던 보쿠토는 꼼짝할 새 없이 바닥에 누워졌고, 아카아시가 그 위를 짓누르듯 덮쳐왔다. 보쿠토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채 느리게 다가오는 아카아시의 얼굴을 멍하니 보다가 아카아시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보쿠토의 손보다 더 빨리 아카아시의 입술이 보쿠토의 입술에 닿았다. 부드러워, 보쿠토는 자신이 남자인 후배와 입을 맞추고 있다는 것보다 그 감촉의 부드러움에 놀랐다. 뒤이어 놀라 아카아시를 부르려고 했지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카아시의 입술이 더욱 깊이 닿아왔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아랫 입술을 빨다, 혀를 내밀어 보쿠토의 입안을 침범했다. 멍하니 벌어진 보쿠토의 입술 사이로 아카아시의 혀가 보쿠토의 것과 맞닿았다. 보쿠토는 멍하니 아카아시의 혀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원래부터 제 영역인 양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입 안 이곳 저곳에 영역표시하듯 닿아왔고, 깊어지는 키스에 보쿠토는 끙끙거리며 숨에 벅차했다.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아카아시가 숨쉬어요, 선배 하고 속삭였고 다시 입을 맞춰왔다.


 부드럽고, 미끌거리는데. 보쿠토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지 기분 좋아. 자신의 입 안을 배회하는 아카아시의 혀가 입천장의 여린 부분을 비벼올 때마다, 더이상 깊게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들어올 때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간질거리고, 기분 좋아. 보쿠토는 눈을 감고 자신이 누구와 키스하고 있는건지에 대해 생각을 접고 아카아시의 목에 손을 둘렀다.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에 키스하며, 진짜 이 선배 어쩌면 좋으냐는 생각을 했다. 보쿠토가 자기에게 매달린다는 사실이 좋으면서도, 이렇게 쉽게 키스를 허락하는거냐는 괘씸함이 아카아시를 괴롭게 했다.


"하, 하아... 아, 아카아시."


보쿠토는 벅차오르는 숨을 감당하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이 자신과의 키스로 문란하게 젖어있다. 아카아시는 아래가 묵직해져옴을 느꼈다.


"보쿠토 선배.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제가 할게요."

"하아, 응...? 뭐를..."

"뭐가 되었던간에 이제부터 저와 사귀어요."

"응...? 아카아시가 나랑?"

"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여자랑 사귈 바에야 저랑 사귀자고요."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시선이 떨렸다. 내가 아카아시랑? 아카아시가 나랑 사귄다고?


"왜?"

"그야, 제가 싫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싫으냐는 보쿠토의 물음은 아카아시에게 막혔다. 두 번째 키스는 아까와는 달리 느긋하게 다가왔다. 보쿠토는 자신과 눈을 맞추며 다가오는 아카아시의 눈을 보며, 진짜로 아카아시와 키스를 했고, 다시 하려는 것을 실감했다. 한 학년 아래의 남자 후배와 키스를 하는 것이다. 입술이 맞닿았지만 아카아시는 눈을 감지 않았다. 보쿠토 역시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아카아시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짧게 입술을 머금는 베이비키스가 간지러웠지만 어쩐지 좋은 느낌이었다. 보쿠토는 눈을 감았다.


보쿠토가 기분이 좋아 아카아시와의 키스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아카아시는 여전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최근 들어 보쿠토 선배에게 관심이 갔던 것은 맞지만, 보쿠토에게 키스할 거라고는 스스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순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보쿠토 선배와 입을 맞추자마자, 가슴이 쿵쿵거리며 두근거렸다. 이미 키스를 하고 있는데도 더, 조금 더 키스를 하고 싶어진다. 눈을 감은 보쿠토의 얼굴을 보며 아카아시는 이 선배가 다른 사람과 키스를 한다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 여자애와도 이런 식으로 키스한다면 자신은 그런 보쿠토 선배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같은 남자인 보쿠토 선배가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것이 싫으냐면, 그러니까 왜 선배가 여자친구를 사귀는게 못마땅하냐면,


아카아시는 입을 뗐다. 완전히 키스에 취해 눈을 감고 있던 보쿠토가 눈을 뜬다. 평소와는 달리 성적인 흥분으로 발갛게 물들인 볼, 풀어진 시선, 타액에 적셔진 입술과 그 사이로 붉은 혀가 보인다.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보쿠토 선배에게 들릴까 아카아시는 두려웠다. 단순히 키스를 해서 가슴이 이렇게 뛰는 것일까?


“아카아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아카아시를 똑바로 바라보는 보쿠토 선배의 모습에 아카아시는 깨달았다. 이 성가신 선배가 자꾸 신경 쓰였던 이유를 알아 차렸다. 내가 당신을 보는 것만큼, 내가 당신을 신경 쓰는 것만큼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애의 선물에 웃지 말고, 나를 보고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이 좋으니까.


이 단순한 남자를 뺏길까 두려웠던 거다. 누구에게 고백을 받으면 깊이 생각도 안하고 받아들일 것만 같아서 조바심이 일었던 거다.


아카아시는 자신을 바라보는 보쿠토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저 쾌락을 느껴서 자신에게 기대오는 것도 좋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보쿠토 선배가 나에게 기대올 수 있다면, 아직은 참을 수 있다.


아카아시는 전보다 더 깊이 보쿠토에게 키스했다. 눈을 감은 아카아시를 보다, 보쿠토도 눈을 감고 아카아시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슬쩍 감겨오는 보쿠토의 혀를 느끼며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곁에 있기만 하면 된다. 서서히, 내가 없으면 무엇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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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이와] 하나하키 병

2016. 11. 7. 17:44 from

<하나하키병;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경우>


 


 


어느 주말 저녁, 이와이즈미는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우시지마다, 라고 말하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말이 안나왔다. 전화기 너머로 상대가 이와이즈미를 자꾸 불렀다.


"크, 큼. 뭐냐 우시지마.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한거야?"


아니 그보다, 나 우시지마랑 전화할만한 일이 있나? 이와이즈미는 곰곰히 생각했지만 좀처럼 알수 없었다. 혼란스러워 하는 이와이즈미와는 달리 전화기 너머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너무 평온하다.


"지금 좀 봤으면 좋, 겠다. 이와이즈미."
"뭐? 난데없이 왜..."


이와이즈미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우시지마는 계속 큼, 크흡 거리며 기침을 참아내는 듯한 소리만 내며 자기 할 말만 이어갔다.


"큼! 지, 금 집 앞이니까 나와라."


그리고 우시지마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아니 그보다 집 앞이라니 뭐라는거지.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 닫힌 커튼을 살짝 젖혔다. 집 앞 가로등에 거대한 인영이 서 있다.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하는 남자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다.

무서워... 쟤 뭔데 우리집 아는거냐?! 나 나가도 되는건가?


그러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시지마는 어딘가 아픈지 고개를 숙인채 계속 기침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언제나 꼿꼿한 자세또한 구부정하게 등을 굽히고 가로등에 몸을 기대고 있다. 매번 결승전에서 만나, 패배만을 안겨주는 상대이기에 좋은 감정은 없지만 일면식 있는 사람이 쓰러질것 같다는게 문제였다. 어째서 자신의 집 앞에서 저러고 있는건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와이즈미는 후드짚업을 대충 껴입었다.


"저기...."

"으. 이와, 크흠 큼."

우... 우시지마? 어디 아프냐?"


커다란 등치의 우시지마는 가로등에 기대어, 노랗게 빛나는 불빛 아래 있었다. 게다가 고개를 숙이고 양 손으로 입가를 가린채인데다 그림자가 져 있어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기침을 억지로 막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들썩거렸다.


"야... 아니, 기침을 억지로 막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

"윽... 크, 아니, 괜찮,"


가까이 다가서자 까만 그림자에 드리워진 우시지마의 얼굴이 드러났다. 필사적으로 입을 누르고 있었다. 시합 때조차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 엉망진창 일그러져 빨갛게 변해있었다. 눈썹 사이로 땀방울이 흐르기까지 했다.


이와이즈미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우시지마의 손목을 붙잡고 입을 억누르고 있는 손을 떼려고 했다. 이와이즈미가 손을 붙잡고 어이, 하고 말함과 동시에 우시지마의 꽉 다물렸던 눈이 떠졌다. 깜빡거리며 시선이 이와이즈미의 얼굴로 향했고, 우시지마의 두 눈이 커졌다. 우시지마의 속눈썹이 파들거리는게 보였다.


"야, 괜찮냐? 손 떼봐.......뗀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우시지마의 손을 내렸다. 얼마나 힘을 주어서 입을 막았던건지 입가에 빨갛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이와이즈미는 빨간 꽃잎을 보았다. 이와이즈미는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우시지마의 치아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작은 꽃잎을 뗐다.


"꽃잎?"

"......으."

"...꽃이라도 먹었어?"

"우, 욱!"


멍하니 빨간 꽃잎을 보던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빨갛고 작은 꽃들이 퍼부어졌다. 욱, 욱 거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꽃의 수가 많아졌다.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내리는 꽃에 이와이즈미가 당황스럽게 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로 투둑, 툭 하고 꽃들이 쌓였다.


"커헉, 헉... 헉! 이, 이와이즈미...!"

"어... 우시지마...?"

"꽃, 크흠. 먹은것이 아니다."


우시지마는 꽃을 토해내느라 숨을 쉬지도 못했는지 호흡이 거칠얼다. 추위에 하얗게 스러지는 숨에 꽃냄새가 풍겼다.


"그건, 보면... 그런 것 같네..."

"이와이즈미."

"어...? 응?"

"좋아한다, 이와이즈미.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꽃이 터져나왔다."


우시지마는 놀라서 눈이 커다래지는 이와이즈미를 시선에 담았다. 따듯한 집에 있다가 급하게 나온 탓에 제대로 옷을 갖춰 입지 못한 이와이즈미의 귓가며 코, 볼이 추위로 색을 달리하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빼내어 이와이즈미의 목에 감쌌다.


"저기, 벌칙이라던가 그런거지?"


이와이즈미는 목에 둘러진 머플러를 엉거주춤 감싸다가 우시지마에게 물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똑바로 직시해오는 우시지마의 눈에 어느 하나 장난끼가 보이지 않았다.


"엇,"


우시지마는 머플러를 양 손로 잡고 고개를 숙였다. 차가워진 이와이즈미의 왼쪽 볼에 입을 맞췄다. 쪽, 어린아이가 하는 뽀뽀처럼 장난스런 소리가 났다.


"장난이 아니다. 이와이즈미를 좋아한다."

"....어어?? 그, 그러냐?!"

"오이카와보다 더 잘해줄 수 있다. 사귀자."

"아니, 오이카와가 여기서 왜 나오냐?"


이와이즈미의 말에 우시지마가 피식 웃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 4년의 시간동안 본 적이 없던 웃는 얼굴이었다.


"오이카와랑 상관없다면 더 좋은 일이다."

"어... 어어? 뭐가..."

"사귀자, 이와이즈미."


우시지마는 전화를 끊었을 때처럼, 이와이즈미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발을 돌렸다. 그 전에 이와이즈미의 목에 대충 둘러진 머플러를 서툴게 여며주었다.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우시지마의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졌다.


이와이즈미는 아까 꽃이 쏟아질 때 맡았던 꽃향기를 느꼈다. 머플러에 빨간 꽃잎들이 묻어있었다. 하아, 이와이즈미의 한숨이 하얗게 하늘로 사라져갔다.



(265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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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이와] 하나하키 병

2016. 11. 7. 17:42 from

<하나하키병; 오이카와 토오루의 경우>




"웩-."


이와이즈미는 눈 앞에 떨어지는 노란 꽃을 당황스럽게 보았다. 투두둑, 하고 꽃들이 바닥에 쌓인다. 그리고 제 앞에 고개를 숙이고 구역질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본다. 이와이즈미 자신보다 키가 크기에 좀처럼 내려다본 적이 없어 무방비하게 드러난 뒷통수가 낯설다.


"컥, 크윽. 으윽..."


몇 번을 더 꽃을 토해 낸 뒤에야 구역질이 멈췄다. 그러나 몸 속 깊은 속에서부터 억지로 비집고 올라오는 꽃들에, 오이카와는 연신 기침을 하며 괴로워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친구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아, 악! 아파, 이와쨩!"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을 막으며 굽힌 등을 바로 세웠다. 순식간에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병이 든 사람같았다. 이와이즈미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꽃을 토하는 병이라는게 생각보다 더 괴로운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 진짜 힘들어. 이와쨩은 하나하키병 안 걸린거 행운인줄 알아... 오이카와상 엄청나게 힘들어서 기절할 뻔 했어."


"괜찮냐? 진짜 힘들어 보이네."


"전혀 괜찮지 않아! 진짜 진짜 진짜 힘들어 죽을 지경이야. 그러니까 오이카와상 좀 업어줘, 이와쨩."


이와이즈미는 평소처럼 오이카와를 타박하려고 하다 그만뒀다. 꽃을 토하고 난 뒤의 오이카와의 얼굴은 빈 말로도 좋게 봐줄 수 없을 만큼 퀭했다. 이대로 가면 집으로 가는 길에 쓰러질 것 같았다.


"업혀."


"에? 에에? 진짜 업어주는 거야?!"


"힘들다며. 버스정류장까진 업어줄 수 있으니까."


"그치만..."


자기가 업어달라고 해놓고 오이카와는 답지 않게 망설였다. 귀신처럼 창백한 주제에 뭘 그러고 서 있는지. 빨리 업히라니까? 이와이즈미가 참지 못하고 소리치자 그제야 마지못하듯 앉아 있는 이와이즈미의 몸에 기대온다.


"그치만 이와쨩 키가 작은데 오이카와상 업을 수 있을까... 가다가 고꾸라지는거 아닐까 걱정되는걸?"


오이카와를 업고 일어나려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내팽개쳤다. 오이카와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을 굴렀다.


"야, 말 똑바로 안하면 두고 간다."


"아, 알았어! 아니 이와쨩도 참 농담인거 알면서."


오이카와는 제 엉덩이를 매만지며 다시 이와이즈미에게 몸을 기대왔다. 확실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보다 5센치정도 작고, 체구도 큰 편은 아니지만 힘은 오이카와보다 더 세다. 오이카와쯤은 들 수 있다.


"이와쨩 멋있어.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듬직한데!"


"너보단 확실히 내가 낫지."


"그래도 나보다 먼저 결혼해버리면 안돼? 절대로 안돼?"


난 절대로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 없으니까. 이와쨩도 나 말고 다른 사람따위 생각도 하지 마.

오이카와는 말하면 이와이즈미에게 한 대 맞을만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


이와쨩 결혼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웩."


"아, 왜 또! 야, 야 오이카와 괜찮냐? 왜 또 꽃을 토하는거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대꾸할 힘도 없었다. 이와쨩 절대로 결혼하면 안된다고... 입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꽃이 되어 떨어졌다.





(145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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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이와] 호출

2016. 11. 7.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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