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보쿠] 올가미

2016. 11. 7. 17:59 from

[아카보쿠] 올가미

 

 

 

아카아시는 최근 보쿠토 선배가 신경쓰인다. 원래도 텐션이 쉽게 오르락 내리락하는 선배이기에 다른 선수들보다 관심이 필요한 상대이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보쿠토 선배에게 눈길이 간다.


"헤이헤이헤이-! 완전 깔끔하게 들어갔어! 봤어, 아카아시?!"

"네, 보쿠토 선배."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등에 팔을 두르고 떠들썩하게 말을 걸더니 칭찬 받아 기쁜듯 어깨를 들썩였다. 덩달아 아카아시의 어깨에 보쿠토의 어깨가 닿는다. 아카아시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보쿠토와의 거리를 좁혔다. 땀에 젖은,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거리다.


연습이 끝난 뒤, 자율연습을 남겨둔 때 갑자기 2학년 중 한 명이 보쿠토에게 다가갔다. 주전은 아니지만 꽤나 열심히 하는 부원이라서 연습을 같이 하려나 했다.


"저, 죄송한데 보쿠토 선배. 같은 반 여자애한테 부탁받아서요..."

"우왓? 고마워! 아, 고맙다고 전해줘!"


후배는 자기가 건네는 선물도 아닌데 인사를 받자 쑥스러워하며 연습 열심히 하세요! 하며 돌아갔다. 보쿠토는 후배가 건넨(정확히는 후배의 반 친구가 준) 작은 종이봉투를 흔들거렸다. 아카아시와 눈이 마주치자 싱글벙글 웃으며 아카아시!하며 다가온다.


"이것봐! 나 선물 받았어, 짱이지!"

"...네. 그런데 오늘은 연습 안하시나봐요?"

"앗! 아냐, 지금부터 할거야. 이거 두고..."


보쿠토는 종이봉투를 둘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손에서 봉투를 가져갔다. 벽 가까이에 놓인 물병들 사이에 봉투를 툭하고 내려놓았다.


"됐죠? 가요, 보쿠토 선배."

"응! 토스 마구마구 올려줘, 아카아시!"


네, 하고 대답한 아카아시는 흘끗 바닥에 놓인 보쿠토의 종이봉투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여자애가 준 선물이라, 아카아시는 왠지 보쿠토가 여자들에게 저런 선물을 받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면 얼마나 안다고 선물을 주는거지? 보쿠토 선배가 부담스러워 할텐데.


아카아시는 사실, 보쿠토 선배가 선물을 받는걸 굉장히 자랑스러워 하고 기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괜히 기분이 나빴다. 보쿠토 선배는 누가 주는지도 모르면서 왜 받는거지.


그리고 아카아시는 왜 자신이 이렇게 기분이 나쁘고, 최근들어 보쿠토 선배에게 평소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이유를 알아냈다. 모든 연습이 끝난 뒤, 부원들이 일찍이 돌아간 탈의실에서였다. 주장과 부주장이기에 체육관과 탈의실 문을 잠가야 했기에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대부분 가장 늦게까지 학교에 남았다. 물론 모든 정리와 문단속 등 총괄적인 관리는 부주장인 아카아시의 몫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보쿠토가 앗, 하며 아카아시를 돌아봤다.


"종이봉투 놓고 온 것 같아!"


그 작은 종이봉투를 체육관에 놓고 온 것이다. 아카아시는 옷 다 갈아입고 같이 가죠, 라고 말하며 옷을 마저 갈아 입었다. 손이 빠른 아카아시와 달리 보쿠토는 준비에 시간이 더 필요했다. 옷을 갈아입는건 느리지 않지만 벗어놓은 옷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기에 사물함과 가방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카아시는 땀에 젖어 차갑게 식은 보쿠토의 옷을 들어 대충 접었다. 어짜피 가서 빨 옷이다.


"종이봉투에 뭐 들어있을까나?"


기대된다는 어투의 말이 거슬렸다. 뭐가 되었던 그게 중요합니까? 라는 말이 입에 맴돌았다. 


"헉! 혹시..."

"예?"


바지를 갈아입다 말고 보쿠토는 눈을 동그랗게 뜬채 아카아시를 바라봤다. 


"혹시 러브레터라던가..."

"...에... 러브레터..."

"나 고백받는거야??! 아카아시! 나 고백받아?"

"...그걸 저한테 묻는겁니까?"


듣기에 따라 차갑게 느껴지는 말투였지만, 보쿠토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워낙에 눈치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와 별개로 아카아시의 냉정한 어조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오히려 아카아시는 스스로의 발언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보쿠토 선배에게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 살짝 돌아본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뒷통수를 바라보다, 보쿠토의 목이 살짝 발그래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슬쩍 올라간 광대를 보아하니 분명 웃고 있는게 분명했다.


"고백받으면 어쩌시려고요?"

"에? 그야... 잘 모르겠는데."

"...... 모르겠다고요?"


보쿠토는 바닥에 앉아 레그슬리브를 벗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흠, 생각해본 적 없는데 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조금 기대에 들떠있는 것 같다고,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귀여운 애라면 사귈 수 있겠지?"

"헤에, 귀여운 애라면?"

"응! 한번도 사귀어본 적 없는데, 한번쯤은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어!"


보쿠토는 드러난 종아리와 허벅지를 마사지하면서 실실 웃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벗어놓은 레그슬리브를 돌돌 말아 보쿠토의 가방에 넣고 바지를 벗으려는 보쿠토의 종아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보쿠토가 고개를 들자 아카아시는 마사지 해드리겠다며 종아리를 주물렀다. 보기보다 손이 작은 보쿠토와는 다르게 아카아시의 손은 꽤 컸다. 배구부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크기의 손은 쭉쭉 뻗은 학의 다리와 같이 섬세하고 가늘었다. 그러나 꾹꾹 종아리를 주무르자 드러나는 손등의 혈관은 남성임을 보여주어, 그 간극이 컸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보다가 자신의 손을 펼쳐 보았다. 아카아시와는 이미지가 다른 손이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종아리를 마사지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카아시가 무릎 뒤의 파인 곳을 둥글게 누르고 돌리자 보쿠토는 다리를 움찔거렸다.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만져진 적이 없는 곳은, 원래도 예민했지만 아카아시의 손에 더 예민함을 느껴버렸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손을 밀려고 했지만 아카아시는 왜 그러냐는 눈빛으로 보쿠토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보쿠토 선배."

"응. 아카아시 이제 괜찮아, 그만해."


아카아시는 대답 대신 보쿠토의 허벅지로 손을 올렸다. 쓸어올리듯 이어지는 손길에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당황스럽게 쳐다 봤지만 아카아시는 조용히 허벅지를 주물거렸다. 아카아시, 이상하니까 이제 그만...


보쿠토가 다리를 뒤척였지만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다리에 놓인 손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힘을 주어 보쿠토의 다리를 자기 쪽으로 이끌었다. 아카아시가 다리를 마사지해주느라 보쿠토의 다리 사이에 있었기에 어쩐지 모양새가 이상했다. 보쿠토의 허벅지는 아카아시의 팔에 둘려진 채 아카아시의 허리깨에 있고, 자세가 무너져 똑바로 앉을 수가 없었다.


"아카아시, 비켜."


보쿠토는 다리에 힘을 주어 아카아시의 손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불편한 자세때문에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까부터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아카아시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끙끙대는 보쿠토의 모습은 아카아시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아무리 보쿠토가 챙김을 받는 존재라고는 해도 아카아시와 보쿠토 사이에는 선배와 후배, 3학년과 2학년, 1살 차이라는 나이 차가 있었다. 아카아시가 어떻게도 좁힐 수 없던 그 차이가 왠지 지금 좁혀진 것 같았다.


사실 아카아시는 아까부터 왠지 자신 앞에 있는 선배가 못마땅했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애를 상대로 사귀는 상상따위를 하다니, 괘씸하다. 작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해 배구부에 들어온 뒤, 그리고 보쿠토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자신이 곁에 있었다. 언제나 자신을 귀찮게 했던 이 선배가 이제와서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려고 한다니 참을 수 없었다. 아카아시는 무엇에 기분 나쁜지도 모르고 보쿠토에 날을 세웠다.


이 바보같이 단순한 선배는 진짜로 그 알지도 못하는, 선물조차 남에게 떠미는 여자와 사귈 수도 있다. 그만큼 생각이 얕고 앞일따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해보자는 사람이다. 그 결과가 나중에 어떻게 되던,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그렇게 내버려두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보쿠토 선배."

"응, 아카아시. 이제 비키라니까...?"


보쿠토는 눈 앞의 후배가 낯설다. 은근하게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길이 자꾸 신경쓰이고 얼른 아카아시가 손을 떼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런 보쿠토의 희망사항과는 반대로 아카아시의 손은 허벅지를 타고 올라와 짧게 밀려 올라간 바지 안으로 슬쩍 침범해왔다. 아카아시! 보쿠토가 놀라 양 손으로 아카아시의 어깨를 밀었다.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에, 그게 그런 의미가 되는건가...? 그보다 아카아시 손..."


아카아시는 허리에 둘러져 있던 보쿠토의 허벅지를 확 잡아 당겼다.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던 보쿠토는 꼼짝할 새 없이 바닥에 누워졌고, 아카아시가 그 위를 짓누르듯 덮쳐왔다. 보쿠토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채 느리게 다가오는 아카아시의 얼굴을 멍하니 보다가 아카아시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다. 그러나 보쿠토의 손보다 더 빨리 아카아시의 입술이 보쿠토의 입술에 닿았다. 부드러워, 보쿠토는 자신이 남자인 후배와 입을 맞추고 있다는 것보다 그 감촉의 부드러움에 놀랐다. 뒤이어 놀라 아카아시를 부르려고 했지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아카아시의 입술이 더욱 깊이 닿아왔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아랫 입술을 빨다, 혀를 내밀어 보쿠토의 입안을 침범했다. 멍하니 벌어진 보쿠토의 입술 사이로 아카아시의 혀가 보쿠토의 것과 맞닿았다. 보쿠토는 멍하니 아카아시의 혀가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원래부터 제 영역인 양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입 안 이곳 저곳에 영역표시하듯 닿아왔고, 깊어지는 키스에 보쿠토는 끙끙거리며 숨에 벅차했다.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아카아시가 숨쉬어요, 선배 하고 속삭였고 다시 입을 맞춰왔다.


 부드럽고, 미끌거리는데. 보쿠토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지 기분 좋아. 자신의 입 안을 배회하는 아카아시의 혀가 입천장의 여린 부분을 비벼올 때마다, 더이상 깊게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들어올 때마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쾌감이 느껴졌다. 간질거리고, 기분 좋아. 보쿠토는 눈을 감고 자신이 누구와 키스하고 있는건지에 대해 생각을 접고 아카아시의 목에 손을 둘렀다.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에 키스하며, 진짜 이 선배 어쩌면 좋으냐는 생각을 했다. 보쿠토가 자기에게 매달린다는 사실이 좋으면서도, 이렇게 쉽게 키스를 허락하는거냐는 괘씸함이 아카아시를 괴롭게 했다.


"하, 하아... 아, 아카아시."


보쿠토는 벅차오르는 숨을 감당하지 못하고 헉헉거렸다.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이 자신과의 키스로 문란하게 젖어있다. 아카아시는 아래가 묵직해져옴을 느꼈다.


"보쿠토 선배. 여자친구는 아니지만 제가 할게요."

"하아, 응...? 뭐를..."

"뭐가 되었던간에 이제부터 저와 사귀어요."

"응...? 아카아시가 나랑?"

"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여자랑 사귈 바에야 저랑 사귀자고요."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시선이 떨렸다. 내가 아카아시랑? 아카아시가 나랑 사귄다고?


"왜?"

"그야, 제가 싫으니까요."


그러니까 왜 싫으냐는 보쿠토의 물음은 아카아시에게 막혔다. 두 번째 키스는 아까와는 달리 느긋하게 다가왔다. 보쿠토는 자신과 눈을 맞추며 다가오는 아카아시의 눈을 보며, 진짜로 아카아시와 키스를 했고, 다시 하려는 것을 실감했다. 한 학년 아래의 남자 후배와 키스를 하는 것이다. 입술이 맞닿았지만 아카아시는 눈을 감지 않았다. 보쿠토 역시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아카아시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짧게 입술을 머금는 베이비키스가 간지러웠지만 어쩐지 좋은 느낌이었다. 보쿠토는 눈을 감았다.


보쿠토가 기분이 좋아 아카아시와의 키스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아카아시는 여전히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최근 들어 보쿠토 선배에게 관심이 갔던 것은 맞지만, 보쿠토에게 키스할 거라고는 스스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순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보쿠토 선배와 입을 맞추자마자, 가슴이 쿵쿵거리며 두근거렸다. 이미 키스를 하고 있는데도 더, 조금 더 키스를 하고 싶어진다. 눈을 감은 보쿠토의 얼굴을 보며 아카아시는 이 선배가 다른 사람과 키스를 한다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 여자애와도 이런 식으로 키스한다면 자신은 그런 보쿠토 선배를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왜, 같은 남자인 보쿠토 선배가 다른 사람과 키스하는 것이 싫으냐면, 그러니까 왜 선배가 여자친구를 사귀는게 못마땅하냐면,


아카아시는 입을 뗐다. 완전히 키스에 취해 눈을 감고 있던 보쿠토가 눈을 뜬다. 평소와는 달리 성적인 흥분으로 발갛게 물들인 볼, 풀어진 시선, 타액에 적셔진 입술과 그 사이로 붉은 혀가 보인다. 쿵쿵거리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보쿠토 선배에게 들릴까 아카아시는 두려웠다. 단순히 키스를 해서 가슴이 이렇게 뛰는 것일까?


“아카아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아카아시를 똑바로 바라보는 보쿠토 선배의 모습에 아카아시는 깨달았다. 이 성가신 선배가 자꾸 신경 쓰였던 이유를 알아 차렸다. 내가 당신을 보는 것만큼, 내가 당신을 신경 쓰는 것만큼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애의 선물에 웃지 말고, 나를 보고 웃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당신이 좋으니까.


이 단순한 남자를 뺏길까 두려웠던 거다. 누구에게 고백을 받으면 깊이 생각도 안하고 받아들일 것만 같아서 조바심이 일었던 거다.


아카아시는 자신을 바라보는 보쿠토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저 쾌락을 느껴서 자신에게 기대오는 것도 좋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보쿠토 선배가 나에게 기대올 수 있다면, 아직은 참을 수 있다.


아카아시는 전보다 더 깊이 보쿠토에게 키스했다. 눈을 감은 아카아시를 보다, 보쿠토도 눈을 감고 아카아시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슬쩍 감겨오는 보쿠토의 혀를 느끼며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곁에 있기만 하면 된다. 서서히, 내가 없으면 무엇도 못하게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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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이와] 하나하키 병

2016. 11. 7. 17:44 from

<하나하키병;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경우>


 


 


어느 주말 저녁, 이와이즈미는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우시지마다, 라고 말하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말이 안나왔다. 전화기 너머로 상대가 이와이즈미를 자꾸 불렀다.


"크, 큼. 뭐냐 우시지마.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한거야?"


아니 그보다, 나 우시지마랑 전화할만한 일이 있나? 이와이즈미는 곰곰히 생각했지만 좀처럼 알수 없었다. 혼란스러워 하는 이와이즈미와는 달리 전화기 너머 우시지마의 목소리가 너무 평온하다.


"지금 좀 봤으면 좋, 겠다. 이와이즈미."
"뭐? 난데없이 왜..."


이와이즈미의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나 우시지마는 계속 큼, 크흡 거리며 기침을 참아내는 듯한 소리만 내며 자기 할 말만 이어갔다.


"큼! 지, 금 집 앞이니까 나와라."


그리고 우시지마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아니 그보다 집 앞이라니 뭐라는거지.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 닫힌 커튼을 살짝 젖혔다. 집 앞 가로등에 거대한 인영이 서 있다. 주먹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하는 남자는 우시지마 와카토시다.

무서워... 쟤 뭔데 우리집 아는거냐?! 나 나가도 되는건가?


그러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우시지마는 어딘가 아픈지 고개를 숙인채 계속 기침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언제나 꼿꼿한 자세또한 구부정하게 등을 굽히고 가로등에 몸을 기대고 있다. 매번 결승전에서 만나, 패배만을 안겨주는 상대이기에 좋은 감정은 없지만 일면식 있는 사람이 쓰러질것 같다는게 문제였다. 어째서 자신의 집 앞에서 저러고 있는건지 도통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이와이즈미는 후드짚업을 대충 껴입었다.


"저기...."

"으. 이와, 크흠 큼."

우... 우시지마? 어디 아프냐?"


커다란 등치의 우시지마는 가로등에 기대어, 노랗게 빛나는 불빛 아래 있었다. 게다가 고개를 숙이고 양 손으로 입가를 가린채인데다 그림자가 져 있어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기침을 억지로 막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들썩거렸다.


"야... 아니, 기침을 억지로 막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해...."

"윽... 크, 아니, 괜찮,"


가까이 다가서자 까만 그림자에 드리워진 우시지마의 얼굴이 드러났다. 필사적으로 입을 누르고 있었다. 시합 때조차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 엉망진창 일그러져 빨갛게 변해있었다. 눈썹 사이로 땀방울이 흐르기까지 했다.


이와이즈미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우시지마의 손목을 붙잡고 입을 억누르고 있는 손을 떼려고 했다. 이와이즈미가 손을 붙잡고 어이, 하고 말함과 동시에 우시지마의 꽉 다물렸던 눈이 떠졌다. 깜빡거리며 시선이 이와이즈미의 얼굴로 향했고, 우시지마의 두 눈이 커졌다. 우시지마의 속눈썹이 파들거리는게 보였다.


"야, 괜찮냐? 손 떼봐.......뗀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우시지마의 손을 내렸다. 얼마나 힘을 주어서 입을 막았던건지 입가에 빨갛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이와이즈미는 빨간 꽃잎을 보았다. 이와이즈미는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우시지마의 치아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작은 꽃잎을 뗐다.


"꽃잎?"

"......으."

"...꽃이라도 먹었어?"

"우, 욱!"


멍하니 빨간 꽃잎을 보던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빨갛고 작은 꽃들이 퍼부어졌다. 욱, 욱 거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꽃의 수가 많아졌다.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져 내리는 꽃에 이와이즈미가 당황스럽게 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로 투둑, 툭 하고 꽃들이 쌓였다.


"커헉, 헉... 헉! 이, 이와이즈미...!"

"어... 우시지마...?"

"꽃, 크흠. 먹은것이 아니다."


우시지마는 꽃을 토해내느라 숨을 쉬지도 못했는지 호흡이 거칠얼다. 추위에 하얗게 스러지는 숨에 꽃냄새가 풍겼다.


"그건, 보면... 그런 것 같네..."

"이와이즈미."

"어...? 응?"

"좋아한다, 이와이즈미. 너를 좋아하기 때문에 꽃이 터져나왔다."


우시지마는 놀라서 눈이 커다래지는 이와이즈미를 시선에 담았다. 따듯한 집에 있다가 급하게 나온 탓에 제대로 옷을 갖춰 입지 못한 이와이즈미의 귓가며 코, 볼이 추위로 색을 달리하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두르고 있던 머플러를 빼내어 이와이즈미의 목에 감쌌다.


"저기, 벌칙이라던가 그런거지?"


이와이즈미는 목에 둘러진 머플러를 엉거주춤 감싸다가 우시지마에게 물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똑바로 직시해오는 우시지마의 눈에 어느 하나 장난끼가 보이지 않았다.


"엇,"


우시지마는 머플러를 양 손로 잡고 고개를 숙였다. 차가워진 이와이즈미의 왼쪽 볼에 입을 맞췄다. 쪽, 어린아이가 하는 뽀뽀처럼 장난스런 소리가 났다.


"장난이 아니다. 이와이즈미를 좋아한다."

"....어어?? 그, 그러냐?!"

"오이카와보다 더 잘해줄 수 있다. 사귀자."

"아니, 오이카와가 여기서 왜 나오냐?"


이와이즈미의 말에 우시지마가 피식 웃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 4년의 시간동안 본 적이 없던 웃는 얼굴이었다.


"오이카와랑 상관없다면 더 좋은 일이다."

"어... 어어? 뭐가..."

"사귀자, 이와이즈미."


우시지마는 전화를 끊었을 때처럼, 이와이즈미의 대답을 듣지 않고 발을 돌렸다. 그 전에 이와이즈미의 목에 대충 둘러진 머플러를 서툴게 여며주었다.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우시지마의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졌다.


이와이즈미는 아까 꽃이 쏟아질 때 맡았던 꽃향기를 느꼈다. 머플러에 빨간 꽃잎들이 묻어있었다. 하아, 이와이즈미의 한숨이 하얗게 하늘로 사라져갔다.



(2653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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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이와] 하나하키 병

2016. 11. 7. 17:42 from

<하나하키병; 오이카와 토오루의 경우>




"웩-."


이와이즈미는 눈 앞에 떨어지는 노란 꽃을 당황스럽게 보았다. 투두둑, 하고 꽃들이 바닥에 쌓인다. 그리고 제 앞에 고개를 숙이고 구역질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본다. 이와이즈미 자신보다 키가 크기에 좀처럼 내려다본 적이 없어 무방비하게 드러난 뒷통수가 낯설다.


"컥, 크윽. 으윽..."


몇 번을 더 꽃을 토해 낸 뒤에야 구역질이 멈췄다. 그러나 몸 속 깊은 속에서부터 억지로 비집고 올라오는 꽃들에, 오이카와는 연신 기침을 하며 괴로워했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친구의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아, 악! 아파, 이와쨩!"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손을 막으며 굽힌 등을 바로 세웠다. 순식간에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오이카와의 얼굴이 병이 든 사람같았다. 이와이즈미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꽃을 토하는 병이라는게 생각보다 더 괴로운 것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아, 진짜 힘들어. 이와쨩은 하나하키병 안 걸린거 행운인줄 알아... 오이카와상 엄청나게 힘들어서 기절할 뻔 했어."


"괜찮냐? 진짜 힘들어 보이네."


"전혀 괜찮지 않아! 진짜 진짜 진짜 힘들어 죽을 지경이야. 그러니까 오이카와상 좀 업어줘, 이와쨩."


이와이즈미는 평소처럼 오이카와를 타박하려고 하다 그만뒀다. 꽃을 토하고 난 뒤의 오이카와의 얼굴은 빈 말로도 좋게 봐줄 수 없을 만큼 퀭했다. 이대로 가면 집으로 가는 길에 쓰러질 것 같았다.


"업혀."


"에? 에에? 진짜 업어주는 거야?!"


"힘들다며. 버스정류장까진 업어줄 수 있으니까."


"그치만..."


자기가 업어달라고 해놓고 오이카와는 답지 않게 망설였다. 귀신처럼 창백한 주제에 뭘 그러고 서 있는지. 빨리 업히라니까? 이와이즈미가 참지 못하고 소리치자 그제야 마지못하듯 앉아 있는 이와이즈미의 몸에 기대온다.


"그치만 이와쨩 키가 작은데 오이카와상 업을 수 있을까... 가다가 고꾸라지는거 아닐까 걱정되는걸?"


오이카와를 업고 일어나려던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내팽개쳤다. 오이카와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을 굴렀다.


"야, 말 똑바로 안하면 두고 간다."


"아, 알았어! 아니 이와쨩도 참 농담인거 알면서."


오이카와는 제 엉덩이를 매만지며 다시 이와이즈미에게 몸을 기대왔다. 확실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보다 5센치정도 작고, 체구도 큰 편은 아니지만 힘은 오이카와보다 더 세다. 오이카와쯤은 들 수 있다.


"이와쨩 멋있어.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듬직한데!"


"너보단 확실히 내가 낫지."


"그래도 나보다 먼저 결혼해버리면 안돼? 절대로 안돼?"


난 절대로 다른 사람이랑 결혼할 생각 없으니까. 이와쨩도 나 말고 다른 사람따위 생각도 하지 마.

오이카와는 말하면 이와이즈미에게 한 대 맞을만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


이와쨩 결혼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테니까.


"웩."


"아, 왜 또! 야, 야 오이카와 괜찮냐? 왜 또 꽃을 토하는거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대꾸할 힘도 없었다. 이와쨩 절대로 결혼하면 안된다고... 입밖으로 내지 못한 말이 꽃이 되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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