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카마] 러브레터(2018)-(2) 



돌이켜 생각해보면 후타쿠치를 짝사랑했던 고등학교 시절, 난 모든 상황을 뒤로 하고 감정을 앞세울 정도로 후타쿠치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저 얼굴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조금이라도 오랫동안 보고 싶다든가 같이 있고 싶다든가 바랐을 뿐이었다. 가벼운 감정이라 생각했기에 그에 휩쓸리지 않으려 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해야 할까? 녀석은 늘 하루가 멀다 하고 여자 친구가 바뀌었고 그 모습을 보며 이 감정은 절대 내뱉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어찌 보면 사춘기 고교생으로서는 당연했던 것 같다. 남자를 좋아한다니, 고백하는 것 자체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그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괜히 마음을 들켜서 긁어 부스럼 만드느니 하루라도 빨리 후타쿠치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마주치지 않으면, 졸업하면, 떠올리지 않으면 분명 얼마 안 가 감정이 퇴색되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렸다가 , 그 땐 그랬었지하고 가볍게 회상할 정도로 별 거 아닌 일이 되겠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감정인 줄로 알았다.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질질 끌고만 있을 감정인 줄 알고 있었다면, 그 때 어떻게든 했었을 텐데. 지금까지도 그 일만이 못내 후회로 남았다.

 

 

평소엔 밥을 먹는 건지 수다를 떠는 건지 모를 정도로 입을 다문 적이 없던 마코토가 숟가락을 입에 물기만 한 채 카마사키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았다. 몇 숟갈 먹지도 않았는지 거의 다 먹어가는 카마사키의 그릇에 비해 마코토의 그릇에는 아직도 음식이 한가득 남아 있었다. 그런 마코토의 시선을 무시하다 카마사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마코토는 꾹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요즘 자주 멍 때리네? 생각도 많아 보이고 너답지 않게 일에 집중도 못하고 말이야.”

별로. 평소랑 똑같은데?”

아니야. 저번에 감기 걸렸을 때부터 좀 이상해진 것 같아. 무슨 일 생겼어? 아니면 또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냐?”

아무 일도 없다니까. 그냥 봄이라 나른해졌나 보지.”

스스로 말해 놓고도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봄을 탄다니, 이제껏 계절을 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코토 역시 카마사키를 수상쩍은 사람을 보는 것처럼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 뭐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나조차 요즘 무슨 이유로 기분이 싱숭생숭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딱히 아무 일도 없었는데.

다 먹었냐? 나 먼저 가버린다.”

매정하게 그러지 말고 기다려 줘라, . 너 때문에 난 목구멍에 밥도 안 들어가는데! 하여간 너는 머릿속에 일 생각밖에 없지?”

네 생각이 없는 건 확실해.”

자식이 형님한테 말하는 것 하고는.”

지랄한다고 비웃어주니 마코토가 삐진 척 오리처럼 입술을 삐죽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코토가 은근히 자신을 챙겨준다는 걸 알기에 카마사키는 빨리 먹으라고 야단치며 마코토를 채근했다. 그러는 사이 식당으로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들어오면서 조용했던 식당이 떠들썩해졌다. 비교적 캐주얼한 차림의 마코토와 카마사키와는 달리 셔츠와 정장 바지를 차려 입은 그들은 S-PLANT 직원들이었다. 그들 중 몇 명과 이미 안면을 튼 마코토는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세요, 카마사키 씨.”

아는 사람이 없어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던 카마사키에게 후타쿠치가 착한 후배 모드를 장착한 채 다가왔다. 직장에서는 나름 성격을 죽이고 다니는지 평소보다 살가운 목소리가 낯설기 그지없었다.

뭐야. 야스시 너 아는 사람도 있었어?”

고등학교 배구부 후배야. 후타쿠치 켄지.”

안녕하세요.”

. 난 미즈하라 마코토야. 야스시랑은 동기지. 이 녀석 친구는 몇 번 보긴 했어도 후배는 처음 보네? 별로 친하진 않았나봐?”

글쎄요. 그럼 점심 맛있게 드세요.”

후타쿠치는 마코토의 질문에 애매한 대답을 하고는 깔끔하게 말을 끊었다. 일행이 있는 테이블로 돌아가는 후타쿠치를 쳐다보며 마코토는 무안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너 후배라는 자식, 꽤 건방지다? 피식 웃으며 빈정거리는 마코토를 보며 사람 눈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후배인 척 내숭을 떨었지만 본성을 숨기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마코토는 한 눈에 후타쿠치의 성질을 눈치 챘다.

맞아. 학교 다닐 때도 성격이 저래서 선배들한테 툭하면 건방지다고 야단맞았었지.”

운동부라고 했었지? 그럼 꽤 험했겠네.”

그렇지는, 않았어. 운동부라고 다 그런 분위기는 아니니까.”

우리 학교는 꽤 심했는데. 선배한테 한 번이라도 눈에 잘못 들면 그 날 부로 부내 왕따는 기본이었던 모양이더라고. 은근히 주전 자리는 넘겨주지도 않고 순 잡일만 떠넘기고 그랬다고 하더라.”

, 학교마다 다른 거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마코토는 그런가보다 납득했다. 사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다테공고도 원래부터 분위기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카마사키의 한 학년 위에까지는 마코토가 말했던 것과 같은 수준의 이지메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대부분 가볍게 시비를 걸거나 핑계거리를 대가며 사소하게 괴롭히는 수준이었지만 그들이 3학년일 때는 그 수준이 절정에 이르렀다. 표적은 당연히 만만한 1학년, 그 중에서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후타쿠치였다.

그 때의 후타쿠치는 단순히 운이 나빴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가뜩이나 철벽은 무슨 울타리도 되지 않는다며 조롱과 비아냥에 시달렸던 3학년은 누가 되었든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 상대가 필요했던 거고, 입부했을 때부터 특유의 말투와 가벼운 행동으로 오해받기 쉬웠던 후타쿠치가 잘못 걸렸던 것뿐이었다. 이런저런 괴롭힘에 시달렸던 후타쿠치는 몇 번인가 화를 참지 못하고 부내 싸움이 일으킬 뻔도, 퇴부하겠다며 난리를 치기도 했다. 아마 카마사키를 비롯한 2학년들이 기를 써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후타쿠치는 애저녁에 배구를 그만뒀을 거다.

3학년이 졸업한 뒤에도 여전히 후타쿠치를 은근히 질시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이지메를 꾀하지는 못했다. 그 때 즈음엔 후타쿠치도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며 이를 간 것도 이유였지만, 애초에 집단이 아닌 개인이 상대가 되면 그건 이지메가 아니라 그냥 싸움이었다. 말과 행동이 가벼워서 그렇지 후타쿠치는 본래 끈질긴 성격이고, 그런 점에서 한 번 시비가 붙은 상대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게다가 당한 것의 곱절로 갚아주는 바람에 더 이상 후타쿠치를 건드는 사람이 없어졌지.

무슨 생각을 하는데 그런 표정이야?”

내가 뭘.”

기분 좋아 보이잖아. 아까는 세상 다 산 늙은이 같은 얼굴이었던 주제에.”

밥 다 먹었냐? 나 먼저 간다.”

, 진짜! 넌 대체 기다려줄 줄을 몰라! , 기다려. ! 야스시! 같이 가자고!”

예전엔 후타쿠치를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아서 기억의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한 번 떠올리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생각날까봐 두려웠다. 사그라졌던 마음에 다시 불씨가 타오를 까봐 무서웠다. 하지만 이젠 조금이나마 괜찮은 모양이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봐도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회사가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그런지 후타쿠치와 얼굴을 마주치게 되는 일은 은근히 자주 있었다.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거나, 점심시간에 같은 식당에 가서 마주치거나, 아주 가끔 화장실에서 마주치거나 등등. 그럴 때마다 후타쿠치는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선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걸어왔다. 마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종업원 같은 미소는 거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지만 그에 섭섭하다거나 싫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몇 년 만에 만난 선후배 사이이니 지나치게 친한 척하는 것보다는물론 후타쿠치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편하다고 생각했고 다행이라 여겼다. 애초에 후타쿠치와 재회하게 된 것이 달갑지도 않았고.

뭐야. 카마사키 씨 여기 살아요?”

그래서 주말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맨션 복도에서 후타쿠치가 예전처럼 말을 걸어온 게 좀처럼 현실 같지 않았다. 후타쿠치는 운동복을 입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카마사키의 옆집 문을 열고 있었다. 변함없이 툭툭 거리는 말투와 시큰둥한 표정과 부활동 때 질리도록 봤던 운동복 차림에 마치 고등학생 때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체 네가 왜 거기 있는 거냐?

저번 주에 여기로 이사 왔거든요. 설마 우리 옆집인 거예요?”

……그런가 보네.”

회사는 맞은편에, 집은 옆집. 이거 거의 몰래 카메라 수준 아닌가.”

413, 414. 몇 년 만에 만난 후배가 옆집에 이사 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필이면 그냥 같은 맨션도 아니고 옆집이라니.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집 문과 자신의 집 문을 번갈아 보았다. 허탈하다. 걸어서 세 걸음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말문이 막힌 카마사키에게 다가간 후타쿠치는 반쯤 열린 문 너머로 카마사키의 집 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들어가 봐도 되요?”

, . 그러든지 말든지.”

후타쿠치의 땀 냄새가 섞인 체향이 지척에서 맡아졌다. 카마사키가 숨을 멈추고 한 발자국 뒷걸음을 쳤다. 들어가라고 몸을 비켜준 걸로 알았는지 후타쿠치가 그럼, 하고 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버리려 했던 쓰레기봉투를 현관에 내려놓은 뒤, 카마사키는 멈췄던 숨을 뱉어냈다. 좋지 않다.

좋지 않았다. 이건 마치, 그 때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좋지 않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 집이랑 구조가 똑같네요. 여기서 산지는 얼마나 됐어요?”

. 3, 4년 되었나. 커피 마실래?”

그러든지요. 주든 말든 상관없다는 대답에 어쩌라는 거냐고 따져들 뻔했다. 회사 건물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태도에 그제야 후타쿠치가 원래 이런 녀석이었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 동시에 멀어졌다 생각했던 거리감이 순식간에 확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낯설었던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다.

취직한 지는 그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나?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잖아요.”

그렇지. 예전에 살던 집은 너무 오래돼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더라고. 돈 모이자마자 바로 근처로 이사 온 거야.”

그래도 여긴 방음이 너무 안 좋아요. 옆집에서 뭐 하는지 다 들려서 짜증나 죽겠어요.”

그것 빼곤 살 만 하잖아. 여기, 커피.”

후타쿠치는 잔을 받아들였지만 마실 생각이 없는지 바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안 주는 것보다는 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챙겨 줬더니 괜한 일을 했다. 후타쿠치가 할 일없이 방 안을 둘러보는 동안 어지럽게 늘여진 잡동사니들과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이불을 정리했다. 원래 평소에 정리정돈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토요일 오전이라 그런지 집안이 더 엉망이었다.

보통 평일인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빨래 말고는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가 토요일 오후부터 슬슬 밀린 집안일을 하곤 하는데 그런 사정을 모르는 남이 보기엔 자신을 구제할 길이 없는 게으름뱅이로 볼 게 뻔했다. 그만큼 방 안은 카오스와 같았다. 누구에게든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이었지만 하필이면 후타쿠치한테 보이다니 창피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나마나 놀림거리가 될 게 뻔했다. 그리고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예상대로 방 안을 둘러보며 기분 나쁘게 큭큭거렸다.

카마사키 씨는 많이 변했네요. 예전엔 이 정도까지 더럽게 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설마 아직까지도 혼자 방도 못 치우는 거예요?”

알아서 잘 치우거든! 이건, 그러니까, 청소는 원래 토요일 점심때부터 몰아서 치워서 그런 거라고. 나름의 계획이 있단 말이다. 그리고 평소엔 이렇게까지 더럽게 어지럽혀 있지도 않아.”

몰아서. 그럼 평일에는?”

평일은 일이 바빠. 청소할 틈이 없다고.”

무슨 말을 해도 이 상황에선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조금 정리한다고 해서 깨끗해질 상태가 아닌지라 대충 치우다 관두었다. 어차피 가장 최악의 모습을 보였고 비웃음까지 당했는데 지금 어떻게 해 봤자.

후타쿠치 근처에 앉아 조용히 커피를 홀짝거리는데 후타쿠치가 빤히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주말이라 안경을 쓰지 않아 그런지 후타쿠치의 갈색 눈동자는 평소보다 투명하게 빛났다. 왜인지 눈빛이 차가워 보였다. 그렇게 보인 게 착각이 아니었던지 후타쿠치는 은근히 가시 돋친 말을 내뱉었다.

의외로 가차 없네요, 카마사키 씨는.”

?”

냉정하다고 해야 할지. 정이 없다고 해야 할지.”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어떻게 졸업하고 한 번도 안 왔어요? 카마사키 씨 빼고는 다들 연습할 때나 시합 때 한 번쯤은 보러 왔었는데.”

…….”

심지어 그 3학년들도 몇 번 왔었다고요, 인터하이 때.”

왜 그랬냐는 듯 따지는 말에 카마사키는 마주쳤던 시선을 피해버렸다. 솔직하게 대답하지 못할 바에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유에서였던 간에, 선배로서 매정한 짓을 한 것은 틀림없었다. 미안하다며 단답형으로 사과하는 카마사키를 후타쿠치는 나무라듯 쳐다보다 팩하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제 와서 쩨쩨하게 뭐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좀 궁금하더라고요. 그렇게 부활동에 열 올리던 사람이 왜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걸까 하고.”

…….”

싫으면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 때도 지금도 크게 신경 안 쓰니까.”

미안.”

말은 그렇게 해놓고 궁금하긴 했는지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사과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알고 싶긴 하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는 게 녀석답다. 뭐든 크게 아쉬워하는 일이 없고, 사람에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카마사키가 알기로 녀석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후타쿠치는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주의라 뭐든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고방식이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무례하다곤 할 수 없었지만 먼저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할 필요를 못 느끼는 녀석이었다.

그런 이기적인 녀석이지만 오랜만에 보는 카마사키의 모습이 신기한지 마치 여름방학 관찰 숙제를 하는 초등학생마냥 카마사키를 관찰했다. 저번에 후타쿠치와 재회했을 때, 카마사키가 녀석의 변한 부분을 찾았던 것처럼 후타쿠치도 카마사키에게서 뭐가 변했는지를 찾는 눈치였다. 새삼스러울 만하지. 이제 알고 지냈던 시간보다 연락하지 않았던 시간이 더 오래 되었으니까.

몇 년 만에 보는 거죠?”

“2013년 봄에 졸업했으니까 딱 5년 만이네.”

확실히 오랜만이긴 하네요.”

그렇지.”

카마사키 씨는, 정말 많이 변했네요. 예전과 전혀 다른 느낌.”

그래?”

근데 변해도 중간이 없이 변했네요. 예전엔 고릴라 같았는데 지금은 곰 같아요. 근육들은 다 어디 갔데요? 이제 나이도 있는데 벌써부터 관리 안하면 나중에 배 나온다고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거든? 확실히 예전만 못하지만 아직 근육 남아 있어.”

아저씨가 따로 없어요.”

너랑 나랑 고작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는 거 알고는 있는 거냐? 그리고 이 나이에 무슨 아저씨냐.”

후타쿠치는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한껏 비웃음을 지었다. 고작 한 살 어린 것 가지고 유세 떠는 꼴이 같잖았다. 하여간 사람 신경 건드리는 데 타고난 녀석이다. 카마사키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가라앉히려 남아있던 커피를 모두 원샷했다. 사실 나이가지고 아저씨라 놀린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후타쿠치에 비해 형편없는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 분명 졸업하고 일에 치여 사느라 운동을 안 한 지 오래되긴 했다. 반면 녀석은 꾸준히 운동을 하는지하긴 아까도 운동복 차림이었으니, 모델마냥 몸이 좋았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키도 덩치도 커져 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땐 내가 조금 컸었는데. 몰려오는 자괴감에 다 비운 잔을 들고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후타쿠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갈게요. 앞으로 신세 좀 많이 질 테니까 미리 잘 부탁해요.”

미리 사양한다.”

성격하고는. 그럼 월요일에 봐요.”

이러니까 같은 회사 다니는 것 같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사이로 후타쿠치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확실히 월요일에 보자는 인사는 묘하다. ‘나중에 봐요’, ‘또 봐요와 같은 막연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그 날 꼭 보자고 약속한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는 그냥 우연히 마주치는 정도지만.

왠지 귀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괜히 귓가를 긁적였다. 슬슬 청소를 시작할까하고 방 안을 둘러보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거절할 것이지 사람 참 귀찮게 하는 자식이라니까. 카마사키는 기껏 내린 커피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며 싱크대에 커피를 흘려보냈다. 훅 퍼지는 커피 냄새를 맡으며 카마사키는 또 귓가를 긁적였다. 간질간질한 기분은 그 후로도 한동안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8025자)

Posted by 005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