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카마] 러브레터(2013)

 

 

 

평소와 달리 학교는 부산스러웠다. 한 곳에서는 우는 소리가 들리고, 다른 한 곳에서는 웃는 소리가 났다.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였지만 어떤 선생님도, 학생들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은 모두가 복잡한 마음으로 떠나는 사람을 배웅하는, 졸업식이다.

교정에 활짝 핀 봄꽃을 배경으로 졸업장을 든 졸업생들이 너도 나도 모여들었다. 친하고 말고를 막론하고 그냥 아는 사이면 다들 마구잡이로 사진을 찍어댔다. 몇몇 졸업생들은 붉어진 눈시울을 창피해하며 카메라를 피해 달아났다. 3년 전 봄에 시작되었던 그들의 고교 생활은 여전한 봄꽃과 함께 끝을 맺었다.

다 모였어? 안 온 사람 있나 확인해 봐.”

정문에 모인 사람들을 확인하며 모니와가 말했다. 3학년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후배들과 마지막으로 사진을 남겨두려던 것이다. 모니와의 말에 1학년 중 하나가 소리쳤다.

카마사키 선배가 없어요!”

누가 전화 좀 해 봐. 자식이 어딜 쏘다니는 거야.”

사사야가 코를 킁킁대며 후배에게 눈짓했다. 교정에 내리는 꽃비로 화분 알레르기가 있는 사사야는 졸업식 전부터 기침을 참지 못했다. 일초라도 빨리 꽃무더기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전화 꺼져 있는데요, 핸드폰을 손에 쥔 후배 하나가 말했다. 졸업식 때 벨이 울릴까봐 선생님들이 핸드폰을 꺼두라고 했었는데 그 때 끈 모양이었다. 말한 선생님도 듣는 학생들이 끌 거라고 생각 안했을 텐데, 곧이곧대로 끈 사람이 있었나보다. 하여간 이상한 데서 착실하단 말이야. 후타쿠치는 한숨을 내쉬며 모여 있는 후배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일단 있어 봐. 내가 가서 찾아보고 올 게.”

빨리. 나 더 이상 못 참겠다.”

사사야는 그 틈을 못 참고 기침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대체 어딜 간 거야, 이 사람은. 체육관과 부실을 돌아보며 후타쿠치가 중얼거렸다. 애초에 문을 잠근 사람이 자신이니 있을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일단 와 봤지만 역시나 카마사키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졸업한다고 감상에 젖어서 교내를 떠돌아다니는 게 틀림없다. 발걸음을 재촉해 교사 안으로 들어가 카마사키가 있을 법한 곳을 찾아 다녔다. 죄다 허탕을 치고 마지막으로 3학년 반으로 가자 예상대로 카마사키가 빈 교실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이 별로 남지 않은 교내는 멀리서 들리는 왁자지껄한 소리와는 달리 죽은 듯이 조용했다. 빈 교실에 카마사키 씨는 졸업장이 든 까맣고 둥근 통을 겨드랑이에 꽂고는 한 손에 든 무언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무언가는 편지봉투였다.

뭐해요?”

우왁, , . 후타쿠치?”

난데없는 말소리에 카마사키가 화들짝 놀라면서 순간 졸업장이 떨어졌다. 졸업장을 줍고 후타쿠치를 향해 돌아보던 카마사키는 한 손에 든 편지봉투와 후타쿠치를 의식하고는 다급하게 손을 뒤로 숨겼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에요? 뭔데 숨기고 그래요. 더 궁금해지게.”

,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긴, 한번 봐 봐요.”

후타쿠치가 교실 안으로 성큼성큼 다가가자 카마사키가 슬슬 뒷걸음쳤다. 두 사람의 거리가 두, 세 걸음밖에 안 남았을 때는 기어코 졸업장을 쥐고 있는 손을 내밀어 후타쿠치를 밀어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숨기니까 더 수상하잖아. 후타쿠치는 고개를 기울여 카마사키 씨가 뒤로 숨긴 편지봉투를 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카마사키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방해했다. 몇 번 실랑이 끝에 후타쿠치는 체념했다는 듯이 두 팔을 올려 항복 선언을 했다.

알겠어요, 안 볼게요. 그보다 다들 기다리니까 얼른 내려가죠? 카마사키 씨 때문에 사사야 선배 기침하다 죽을 지경이라고요.”

, 미안. 잠깐 들른다는 게.”

카마사키가 후타쿠치를 지나쳐 교실을 빠져 나갔다. 그 뒤에서 걷던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바지 뒷주머니에 사정없이 집어넣어진 편지봉투를 발견했다. 한 번, 카마사키의 눈치를 보고 다시 한 번, 주머니를 보고 후타쿠치는 재빠르게 편지봉투를 낚아챘다. 앞에서 빠르게 걷던 카마사키가 아차, 싶은 얼굴로 뒤를 돌았다. 뒤늦게 주머니를 더듬어 봤지만 편지봉투는 이미 후타쿠치의 손에 쥐여 있었다.

, 이 자식이! 얼른 이리 내 놔!”

그러니까 대체 이게 뭔데요? 그런 반응 하니까 더 궁금해지잖아요. 이거 혹시 러브레터?”

닥쳐. 그만해. 내 놔.”

키는 엇비슷해도 후타쿠치가 팔다리가 유독 긴 편이었기에 아등바등하는 카마사키의 손에 편지봉투는 닿을 듯 닿지 않았다. 팔꿈치로 카마사키를 이리저리 밀어대며 후타쿠치는 한 손으로 편지봉투를 앞뒤로 살폈다. 하얀 봉투는 두께가 느껴지는 걸 보니 안에 편지가 있긴 한 모양이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후타쿠치가 손가락 끝으로 봉투를 뜯어내려는 찰나, 보다 못한 카마사키가 후타쿠치의 어깨를 쥐고 편지봉투를 쥔 손목을 쳐냈다. 짧은 둔통과 함께 편지봉투가 손에서 빠져 나갔다.

, 진짜! 아프잖아요! 선배가 후배한테 이래도 되요?”

손목을 쥐며 투덜거리는 후타쿠치의 등을 카마사키가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 하는 경쾌한 소리와 윽, 하는 신음소리가 났다. 그런 후타쿠치를 안중에도 안 두고 카마사키는 씩씩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편지봉투를 줍고 걸음을 옮겼다.

적당히 해라, . 그러게 내가 그만 하랬지.”

내가 뭘 어쨌다고요. 그냥 궁금해서 한 번 본거지.”

…….”

그거 카마사키 씨한테 온 거죠? , 대체 어떤 여자가 카마사키 씨한테 편지를 썼을까. 눈이 삔 거 아냐, 그 여자? 하하하, ! , 그만 때려요!”

앞서 가던 카마사키는 그대로 돌아서 불같이 화난 표정으로 후타쿠치의 등을 마구 때렸다. , 퍽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리다 마지막으로 후타쿠치의 정강이를 한 대 차는 걸로 마무리했다.

오늘이 졸업이라 봐 준 줄 알아. 이제 네 얼굴 볼 일 없어져서 속이 다 시원하다!”

얼굴 볼 일이 왜 없어요. 설마 우리 인터하이 때 응원하러 안 오려고요? 안 그렇게 봤는데 사람 참 냉정하시네.”

다른 애들은 봐도 넌 안 봐!”

하하하, 카마사키의 반응에 후타쿠치가 큰 소리로 웃어댔다. 허리까지 부여잡아 가며 웃는 후타쿠치를 뒤로 하고 카마사키가 입을 꾹 다물며 성큼성큼 교사를 빠져 나왔다. 상대하면 할수록 후타쿠치의 손 안에서 놀아나는 기분이 들 뿐이라는 걸 요 2년간 뼈저리게 깨달아왔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나오자 저 멀리 정문에서 배구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보였다. 루돌프처럼 코가 새빨개진 사사야가 카마사키를 발견하고 씩씩거렸다. 임마, 카마사키! 빨리 안 뛰어 오냐! 사사야의 말에 카마사키가 뛰려는 찰나, 후타쿠치의 말이 카마사키의 발을 잡았다.

보러 오세요.”

?”

후타쿠치의 얼굴에는 아직 웃음의 잔상이 남아있어 언뜻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도 후타쿠치는 웃고 있었다. 놀라 되묻는 카마사키를 향해 후타쿠치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잘난 얼굴 카마사키 씨 인생에서 언제 또 볼지 모르잖아요.”

졸업한다니까 이제껏 하고 싶었던 말은 다 하려는 구나. 카마사키는 어이가 없어서 순간 말이 안 나왔다. 잠시 기대했던 자신이 바보였다. 무게도 내용도 없는 실없는 말장난에 카마사키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이 자식은 가벼워도 너무 가벼워. 헛웃음을 짓는 카마사키를 향해 후타쿠치는 잘난 척하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금 맘껏 잘난 얼굴 감상하라는 듯. 그런 후타쿠치를 향해 카마사키가 투덜거렸다.

다신 네 얼굴 볼 일 없을 거다.”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다. 카마사키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그건 카마사키의 100% 진심이었다. 졸업식을 끝으로, 카마사키는 후타쿠치를 다시 볼 일 없을 사람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말을 장난으로 여겼는지 서운해 하는 척했다. 카라멜 색의 눈동자를 마지막으로 한 번 보고, 카마사키는 정문으로 달려갔다. 고교 마지막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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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0055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