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카마] 후일담
[후타카마] 카마사키가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이야기의 짧은 에필로그~
아침이 밝은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던 중 초인종이 시끄럽게 울렸다. 나름대로 걱정했는지 사사야가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아직까지 쓰라린 탓에 비척비척 걸어 문을 열자 녀석은 제일 먼저 카마사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았다. 얼굴은 초췌하긴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별 상처는 없었다.
“살아 있네.”
“응.”
“헉, 목소리가 왜 그러냐?”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사사야의 시선을 무시하고 카마사키는 침대로 기어올랐다. 몸살이 오려는지 하루 종일 피곤하고 잠이 왔다. 축 늘어져 아무것도 아니라고 중얼거리는 카마사키를 보며 사사야는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진즉에 취소하라니까 말을 안 듣더니 가차 없이 차였나 싶었다. 그래도 어디 다치진 않아서 다행이군.
“야, 괜찮아?”
“응…. 몸살기운이 있어서, 기껏 와줬는데 미안.”
“약은 먹었냐?”
귀가 막힌 듯 사사야의 말이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끝으로 카마사키는 다시 기절하듯 잠들었다. 야, 카마사키. 자냐? 사사야는 고개를 내밀어 잠든 카마사키의 얼굴을 보다 대충 바닥에 앉았다. 아무래도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 죽이라도 해주고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불쌍한 놈. 아직까지 어떤 센티넬하고 각인도 못하고 임시 가이드로 전전하는 카마사키가 안타까웠던 그였다. 이제야 짝을 찾나 싶었더니, 반했다는 남자는 개망나니고. 어지간히 일이 안 풀리는 녀석이었다.
사사야는 냉장고를 열어 달걀 한 알을 꺼내고 쌀을 찾았다. 몇 번 집에 놀러온 적이 있기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 수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꽤 크게 충격을 받았는지 얼굴 꼴이 말이 아니었기에 카마사키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쌀을 씻고 물에 잠시 불리기 위해 기다리는데 초인종이 눌렸다. 띵동 띵동 여러 번 울리는 것에, 거 참 인내심 없는 사람이네 싶어 사사야는 절로 인상이 쓰였다. 카마사키가 초인종 소리에 불편한 듯 뒤척이는 것에 얼른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헉?!”
개새끼가 서 있었다. 정정, 후타쿠치가 있었다. 사사야는 깜짝 놀라 문고리를 잡은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굳었다. 반면 후타쿠치는 사사야를 보고 잔뜩 표정을 구기며 멋대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뭐야. 당신 누구야?”
“네, 네? 저요?”
후타쿠치는 기분이 나빴다. 주변에 물고 물어 카마사키의 집 주소를 알아내서 찾아와 집까지 찾아왔을 때까지는 기분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었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분이 고양되어 있었다. 처음이었으니까 아직 아파하려나, 자신답지 않게 가이드의 걱정을 하며 초인종을 누르고 카마사키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처음 보는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후타쿠치를 알고 있는지 돌처럼 굳는 것이다. 분명 카마사키라고 적혀있는 집에서 낯선 남자가 나온 것이다.
“그럼 누구한테 말했다고 생각해요?”
“저, 저는 사, 사사야 타케히토라고….”
사사야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니 볼록한 침대가 바로 보였다. 폭 감싸인 이불 끝자락에 노란 머리카락이 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데 이 남자는 대체 누군지 싶어 후타쿠치가 고개를 돌려 멍청하게 굳어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이 남자랑 무슨 관계야.”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개 같은 센티넬의 눈빛에 사사야는 옴짝달싹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안 그래도 험악한 눈빛이 가라앉으려고 하자 그, 그냥 치, 친구인데요! 하고 얼른 대답했다. 그냥 조금 아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걸 그랬나, 친구라고 같이 죽이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사사야는 후타쿠치의 시선을 피하며 생각했다. 미안하다 카마사키.
“볼 일 없으면 나가.”
“에, 예?”
후타쿠치가 카마사키가 잠든 침대의 끄트머리에 앉았다. 멍하니 서 있던 사사야는 그런 후타쿠치를 보다가 가방을 챙겼다. 뭐지, 이상하게 위험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후타쿠치가 무섭게 시선을 던지는 것에 사사야가 망설이다 말했다.
“저, 저기.”
“뭐야.”
“카, 카마사키가 지금 몸살이라, 그러니까 아픈데요.”
사사야의 말에 후타쿠치가 잠든 카마사키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확실히 체온이 올랐다는 것이 느껴졌다. 약은 먹었냐는 후타쿠치의 말에 사사야는 안 먹은 것 같다고 조심히 말했다. 지난 섹스의 여파 때문인지, 감기에 걸려서인지 확실히 카마사키는 아파보였다. 어딘가 불편한 마음에 후타쿠치는 사사야를 내쫓았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나가면서 사사야는 두 사람의 관계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최악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들어온 바에 의하면 후타쿠치는 누가 아프다고 봐줄 남자도 아니고, 몸살에 걸렸다고 약은 먹었냐며 물어볼 사람도 아니었다. 하물며 후타쿠치는 카마사키의 목을 만진 뒤에도 손을 빼지 않고 카마사키의 얼굴을 만지작댔었다. 사사야는 걸음을 옮기며 꼭 나중에 카마사키를 추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사야가 떠난 뒤, 후타쿠치는 방안을 둘러보며 약을 찾았다. 처음 왔으니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무턱대고 방을 뒤졌다. 한참 뒤에야 신발장 근처에 있는 수납장에서 감기약을 발견했다. 딱 하나 남은 감기약과 물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고 카마사키를 일으켰다. 묵직하니 기대오는 카마사키의 몸이 아까보다 뜨거웠다. 아파서 정신없이 자는 카마사키의 입을 벌리고 약을 넣었다. 잔을 기울여 입에 물을 흘려주었지만 그대로 다시 흐르는 바람에 후타쿠치는 입으로 물을 머금고 카마사키의 입에 직접 흘러주었다. 턱을 들어 올린 덕에 카마사키의 목울대가 본능적으로 움직여 약을 삼킬 수 있었다. 후타쿠치는 물이 묻은 카마사키의 턱을 닦아주고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
만나자마자 한 판 하려고 했는데. 빌빌대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섹스가 필요할 만큼 급하지 않다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했다. 땀을 흘리며 끙끙대는 카마사키를 보다 후타쿠치는 적당히 작은 수건을 적셔 카마사키의 이마에 올려주었다. 내가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던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여기서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싶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아프다는 말에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 분명했다. 이 남자가 무엇이 다르기에,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떠나기가 아쉬운지 모를 일이었다. 후타쿠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분에 카마사키의 옆에 누었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딱 질색이었다. 이유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이라고 후타쿠치는 가볍게 결론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몸을 뒤척거리던 카마사키가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 사이즈가 별로 작지 않아서 잠을 잘 때 불편하게 느낀 적이 없는데 뭔가에 끼인 것처럼 답답했다. 불을 키지도 않았는데 바로 보이는 천장이 뚜렷하게 보였다. 멍하니 깜빡이며 몇 시지, 생각하는데 숨소리가 들렸다. 타인의 숨소리였다.
“헉.”
고개를 돌린 카마사키는 후타쿠치를 발견하고 기절할 듯이 놀라 몸이 굳었다. 분명히 아침에 사사야가 왔던 것 같은데 후타쿠치가 있다. 게다가 카마사키가 누운 침대의 빈자리에 비집고 옆으로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진짜 제멋대로인 남자였다. 그제 처음 본 사람 집에서 태평하게 잠을 자는 후타쿠치의 행동은 카마사키의 상식선에 멀찍이 벗어났다.
카마사키는 후타쿠치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금방이라도 눈을 번쩍 뜰 것 같아 이불을 걷는 데에도 몇 분이 걸렸다. 잠에서 깨자마자 닥친 위험에 카마사키의 손에 땀이 찼다. 여전히 잠든 후타쿠치를 내려다보며 카마사키는 이 상황에서 뭘 어째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애써 일어나긴 했지만 벽과 후타쿠치에 가로막힌 상태에서 침대를 벗어나긴 힘들어보였다. 그렇다고 그 옆에 다시 누워 잠드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후타쿠치를 일부러 깨우는 것도 무서웠다.
“어떡하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후타쿠치를 힐끔거리며 바라보기를 몇 번, 잠든 모습에 또 홀려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잠든 얼굴을 구경했다. 바깥쪽으로 몸을 돌려 잠들었기에 제대로 보이는 곳은 귀와 턱 주변뿐이었다. 귀는 별로 크지 않은데 귓불이 동그래서 귀여웠다. 귓불은 누구나 동그랗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모양은 삐죽한데 귓불만 동그란 것이 카마사키의 눈에는 그리 느껴졌다. 둥근 귓불에서 이어지는 턱 선도 예뻤다. 적당히 날카로운 선이 뚜렷하게 도드라져 한번쯤 손을 대 만지고 싶을 정도였다. 카마사키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기울이고 후타쿠치의 얼굴을 구경했다. 잘생겼다. 잘생겨서 반한 거야.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의 얼굴 곳곳을 보다 깨달았다. 이렇게 잘생겼으니 자신이 첫 눈에 반한 거라고, 어이없지만 그랬다.
이제 다시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얼굴 볼 일이 없을 것이다. 후타쿠치가 계속 잠에서 깨지 않기를 바라며 카마사키는 머리에 후타쿠치의 얼굴을 새기듯 보았다. 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만지고 싶었다. 닿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벅차올랐다. 얼굴에 반했다고는 하지만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사람이었고, 뒷모습이라도 발견할 때면 그 날 하루 종일 기분이 고양됐었다. 정말로 좋았다. 어떻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누군가 왜 그렇게 좋으냐 물으면, 이제는 굳이 이유를 헤아려 말하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그냥, 개 같은 녀석이라고 불리는 남자지만 그런 제멋대로인 행동도, 세상모르게 잠든 이 얼굴도, 그냥 다 좋았다.
“다 봤습니까?”
후타쿠치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진작 깨있었다는 듯 목소리가 잠기지 않고 깨끗했다. 처음부터 그냥 눈만 감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아니, 부족한데.”
카마사키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말하고 나서야 뒤늦게 후회했다. 카마사키의 대담한 대답에 후타쿠치는 피식 웃었다. 얼굴 뚫어질 것 같은데요, 카마사키 씨. 후타쿠치가 일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카마사키는 굽혔던 허리를 바로 했다. 조금만 더 보고 싶었는데. 기운이 빠져 침대 헤드에 기댔다. 후타쿠치는 그 옆에 자신도 기대앉았다. 후타쿠치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으나 그는 말없이 카마사키를 관찰할 뿐이었다.
“왜 왔어, 요?”
“…뭐, 그냥.”
카마사키는 말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정말로 그냥 왔나.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남자이니 기분 내키는 대로 찾아왔을 수도 있다. 와서 뭘 하려고? 그때 그, 생각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거친 섹스가 생각났다.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설마 그 목적으로 찾아온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무지 후타쿠치가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아니, 딱 하나가 남아 있다.
“아.”
“? 뭐에요.”
“저기, 나한테 보복… 이라던가 하려고 온, 거?”
카마사키는 후타쿠치에게 존댓말을 써야 할지, 반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둘 다 그만뒀다. 친하지 않으니 존댓말을 써야 했지만 이미 그제 말을 놨고, 하지만 계속 반말로 하기엔 조금 불편했다. 그런 카마사키를 눈치 챘는지 나이 많으니까 말 놓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7살이니 그게 자연스러웠다.
“벌 받고 싶어요? 별로 그러려고 온 건 아닌데 원한다면 그래줄 수도 있고.”
“아, 아니. 아니라면 됐어.”
“나도 잘 모르겠는데요. 왜 왔는지.”
후타쿠치의 말에 카마사키는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왜 왔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후타쿠치의 얼굴을 봐도 그 또한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에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면 후타쿠치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카마사키의 얼굴을 보며 그 밤이 다시 생각났다. 울며 버둥거리는 몸짓이라던가, 움찔거리며 조여 오던 내벽의 감각, 덫에 걸린 듯 파드득거리며 들썩이던 등허리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아한다고 부르짖으며 매달려오던 것이 떠올랐다.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날 좋아한다고 말해 봐요.”
카마사키의 눈이 흔들렸다.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확인받고자 하는 후타쿠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제는 정신이 없어서 몇 번이고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멀쩡한 정신으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말하기엔 목구멍이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뻐끔거리며 입을 달싹이는 카마사키를 후타쿠치는 기다렸다.
“듣고 싶어요.”
“조…,”
다시 한 번, 저 남자가 좋아한다고 말을 해주길 바랐다.
“조, 좋아해.”
카마사키는 끝내 시선을 돌리고 꺼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짧게 친 머리 때문에 빨갛게 달아오른 귓가가 고스란히 보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연신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자신이 시키는 대로 마음을 고백하는 남자가 보고 싶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후타쿠치는 기분이 좋아졌다. 한 번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에 카마사키는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좋아해,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후타쿠치가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